“참말로 다 죽은거라요. 할인점에 백화점이 곳곳에 들어섰지 거기다 대구시는 대구유통단지에 전자관이라고 맹글어서 상가를 두 쪼가리 내놨지. 상인연합회 출범은 한목소리를 내지 않고는 더 이상 경쟁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최후의 발악입니더.”
지난주 대구 교동시장 상인연합회 수석총무이자 교동TV가전협회 이명철 부회장(42·텔렉코리아 대표)은 찾아간 기자에게 막걸리 잔을 권하며 구구절절 매장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지난달 28일 출범한 대구 교동시장 상인연합회는 1200여 개 회원업소 중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TV, 가전, 컴퓨터, 전기 관련 업소가 ‘생존의 귀로’에서 택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었다.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던 상인들이 이번 연합회 결성에는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도 뭉칠 수 밖에 없는 절박함 때문이다.
이처럼 대구 교동전자상가는 우리 곁에 찾아온 봄이 무색할 만큼 냉랭한 한기가 느껴진다. 대구 교동전자상가는 지난 70년과 80년대를 거쳐오며 전기전자 업소들이 모여들었고, 90년대에는 컴퓨터 도매상가가 합세해 명실상부 전자전문 재래시장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러다 90년 후반에 들어 복합전자상가와 할인점, 백화점 전자매장이 인근에 들어서고, 온라인 쇼핑몰이 급부상하면서 교동 재래전자상가가 위기를 맞고 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대구지하철 사고로 인한 지하철 중앙로역 폐쇄는 교동시장에 직격탄으로 작용했다.
잘나가던 지난 10년 전에 비해 매장은 3분의 1로 줄었고, IMF 때보다 매장 매출은 4분의 1로 뚝 떨어졌다. 시내에 위치, 유동인구는 많지만 정작 물건을 살 고객은 별로 없다는 게 상인들을 하소연이다.
교동시장에서 24년간 가전매장을 운영해온 교동전자 대표 이재근씨(42·상인연합회 총무)는 “요즘엔 하루 판매 수량이 2건∼5건에 불과하다”며 “이나마 마진도 거의 없이 팔다 보니 남는 장사를 해본 지가 까마득하다”며 지난 일주일간의 판매장부를 펼쳐보였다.
1969년에 설립, 교동시장과 역사를 같이한 대구은행 교동지점에도 교동시장의 침체 여파가 미치고 있다. 교동시장 상인들의 금고역할을 해온 대구은행 교동지점의 현재 수신고는 700억원으로 이는 지난 5∼6년 전과 같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김연구 대구은행 교동시장 지점장은 “아무리 어려워도 다른 지점의 경우 수신고가 점차 상승하고 있는데 교동시장은 지난 몇년간 변동이 없다”며 “대구은행은 이번에 사랑통장 수익금의 일부를 기금으로 조성해 교동시장 살리기에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 출범한 교동시장 상인연합회는 앞으로 주차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별도의 주차공간을 확보하는 한편, 상인들의 대고객 응대 마인드를 제고하기 위해 회원 친절교육을 지속적으로 펴기로 했다.
또 재래시장의 단점인 시장 주변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도로를 점유하고 있는 매장물건을 매장 안으로 물려 고객 쇼핑 동선을 확보하고, 주변 쓰레기 줍기 등 깨끗한 환경을 만드는데 노력하기로 했다. 더불어 가격정찰제를 유도, 합리적인 가격을 통해 고객들이 믿고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기로 했다.
이와 관련 대구시 중구청에서도 최근 교동시장을 가전과 컴퓨터, 귀금속, 의류 등으로 특화한 혼수전문시장 특구지정을 추진중이어서 교동시장 살리기에 힘을 싣고 있다.
상인연합회의 이 같은 노력으로 교동시장이 컴퓨터와 전자 전문상가로서 전국에서 명성을 날리던 10여년 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대구=정재훈기자 jh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