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오는 2008년께로 예상되는 정부의 60개 연구소 분화 정책에 대응해 자체적인 기능 재정립을 모색하는 등 ‘남에게 매 맞기보다는 알아서 정리하는’ 방향으로 자구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최근 정부출연연구기관에 따르면 정부가 출연연의 기능을 미래핵심연구소로 설정, 조직 전체를 재정립하기 위한 출연연 발전 추진단(가칭) 구성을 준비중인 가운데 출연연도 자체 로드맵 만들기에 들어갔다.
◇항우연=가장 고민이 많은 기관은 항공우주연구원이다. 항우연은 최근 자체 개발한 단발 비행기 ‘반디호’로 남·북극 횡단에 나섰으나 잇따른 고장으로 곤혹스런 처지에 놓였다. 게다가 올해 말로 예정되어 있던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 2호의 발사마저 이스라엘에 발주한 1m급 고해상도 카메라의 개발이 지연되면서 국가 중장기 우주개발 계획마저 차질을 빚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점도 우려감을 더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항우연은 오는 2015년까지 수립돼 있는 국가 중장기 우주개발계획의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인식 아래 내부적으로 세부 지침을 마련하는 등 전반적으로 새로운 틀을 짜기 위한 용역 발주를 준비 중이다.
◇원자력연·표준연=원자력연구소의 경우는 최근 전국 지역별 공청회를 통해 국가 차원의 원자력 발전에 관한 로드맵을 그리고 있다.
조만간 정리될 이 로드맵을 바탕으로 원자력연의 미션을 새로 구상한다는 복안이다. 이에 따르면 원자력 연구소는 오는 2030년까지 약 19조원의 원자력 연구개발비를 투자, 2050년까지 원자력 산업 국내총생산(GDP) 400조원 규모를 창출한다는 비전을 세워 놓았다.
원자력연은 과학기술부가 기능을 개편하더라도 원자력과 항공우주 분야는 과기부 산하에 그대로 남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 때문에 원자력연구소는 상급 부처의 이동이 예상되는 여타의 출연연보다는 우려가 덜 한 편이다.
표준과학연구원은 현재 중장기 발전계획 용역을 마친 상황이다. 이달 중순께 내부 공청회를 거쳐 최종 결과를 4월 발표할 예정이다. 생명공학연구원도 오는 4월 말까지는 로드맵 용역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지난해 말 신성장 동력단 조직 체계화로 이미 한차례 홍역을 치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경우는 정부의 출연연 분화 정책에 대해 다소 느긋한 분위기다.
현재 운용되고 있는 시스템이 정부의 정책과 유사한 프로젝트 매니저(PM)기반의 신성장 동력단 체제를 갖추고 있는데다 동력단별 규모가 패키지 형태로 200여명이 넘기 때문. 따라서 정부가 추진하는 연구소별 50∼100여명 단위로 세분화하는 일은 얼토당토 않다는 분위기 속에 느긋해 하고 있다.
◇기타 출연연=에너지연이나 화학연, 기초과학지원연 등도 다소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고 판단은 하고 있지만 나름대로 대안 찾기에 애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연연의 한 기관장은 “출연연이 그동안 정부예산을 많이 가져다 쓰고도 실적이 없다는 지적을 들어온 것은 사실”이라며 “출연연을 분화시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면 당연히 그래야 하겠지만 자칫 제2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져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STEPI가 발표한 출연연 기능 재정립 로드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