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 소추라는 초유의 사태를 지켜보는 산업계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대기업들은 비상연락망 가동과 사업계획 재검토, 해외지사망 점검 등으로 바쁜 휴일을 보냈다. 또 다국적기업들도 한국법인 및 지사를 통해 한국의 동향을 시시각각 보고받으면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각 그룹사들, 비상체제 가동-업무차질 없도록 독려=삼성그룹은 긴박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비상연락망을 통해 연락하라는 지침을 내렸으며 특히 반도체나 액정표시장치(LCD) 투자 등 대형 프로젝트가 차질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사업계획을 점검하고 해외 수출망이 정상적으로 가동되도록 해당부서의 업무진행에 최선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LG전자도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된 지난 12일 긴급 임원회의를 가진 뒤 해외 각 법인과 지사망에 “대통령 탄핵 등 국내상황에 관계없이 본연의 임무에 전념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상계관세 등 기업 외적인 환경에 대한 의존도가 큰 하이닉스반도체도 이번 사태가 미칠 파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이 회사 방민호 홍보팀장은 “상계관세 문제는 이미 WTO 등에서 절차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고 정부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2분기 연속 흑자를 보이고 있는 하이닉스의 경영 전반에는 거의 영향이 없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들 역시 대통령의 직무정지 사태를 지켜보면서 경기침체에 대한 간접적인 영향은 우려하고 있으나 직접적인 영향은 매우 적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특히 반도체업계는 해당산업이 기업대기업(B2B)간 업무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영향이 몇 단계를 거쳐야 온다는 점에서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다.
◇외국계 기업들 ‘정상’=도레이새한·동우화인켐 등 일본계 기업들도 경영 환경이나 투자 진행에 당장 변화가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도레이새한은 “테러 발생 등의 경우에는 일본으로부터 행동 지침이 내려오지만 이번 경우에는 별다른 지시가 없다”며 “고위 임원들도 해외 출장 등 평시 업무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우화인켐도 이번 탄핵 사태로 사업적 결정에 변동이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한국에서 진행중인 투자도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회사 라인호 이사는 일본 언론이 탄핵 문제와 북한 문제 등을 결부시켜 한국에 대한 네거티브 캠페인을 벌이는 사태 등이 우려된다며 “무엇보다 사태가 장기화되고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후유증 조기 해결에 ‘촉각’=대기업들은 이번 탄핵정국에 대해 그다지 크게 동요하지는 않는 모습이지만, 이 사태가 가져올 후유증에 대해서는 매우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가전업계의 경우 당장의 마케팅 계획이나 신제품 출시 계획 등은 그대로 진행할 방침이다. 하지만 혼란국면이 장기화할 경우 가뜩이나 침체된 내수경기를 더욱 위축시켜 빈사 상태에 이르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해를 넘기며 지리하게 끌어왔던 디지털TV 전송방식 논쟁도 최근 들어 매듭 조짐을 보였으나 이번 사태로 인해 지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디지털TV 내수 시장에도 다시 찬바람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세트 업체뿐만 아니라 부품 업체들도 혼란의 장기화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 ASIC업체인 다윈텍의 김광식 사장은 “국정 혼란이 장기화될 경우 외국 구매자들이 국내 제조업체들을 대상으로 엄격한 납기 준수를 요구하고 구매처를 중국 등으로 다변화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 반도체 업체들에 불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상장·등록된 업체들과 올해 상장·등록을 준비중인 업체들은 거래소 및 코스닥 시장의 주가 하락으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코스닥 등록심사를 위해 대기중인 한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주가 하락으로 인해 공모가 산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TI코리아 대표이자 전 외국기업협회장인 손영석 사장은 “기업들의 정상적인 활동 등을 위해 이미 엎질러진 물에 대한 자잘못을 가리기보다는 일을 빨리 마무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디지털산업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