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 한글인터넷](3)세종대왕기념사업회 `서체 정보화`

‘세종대왕은 이미 오늘날의 정보화 시대를 내다보고 거기에 가장 알맞고 뛰어난 성능을 갖춘 한글을 만들었다’

올해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 반포한 지 559돌이 되는 해이다. ‘과학실용 정신’, ‘자주정신’, ‘민주·민본정신’이라는 훈민정음의 창제 정신 중에서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라는 과학정신은 창조정신과도 맞닿아 있는 한글의 본질이다.

하지만 세계 어느 언어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우리말 한글은 아직 인터넷에서는 그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회장 박종국)는 오프라인에서 전개해온 한글 연구 및 올바른 우리말 사용 운동을 온라인으로 계승시킴으로써 이같은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한글 관련 대표 단체이다.

◇디지털로 옮기기=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영화진흥위원회와 담을 맞대고 있는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산하 한국글꼴개발원에서는 요즘 우리 나라 유명 현대 서예가 5인의 서체를 디지털로 옮기는 작업이 한창이다. 우리 한글의 미를 살린 서체를 PC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으로 지난해 11월부터 오는 9월까지 추진되는 새로운 시도이다.

지난 56년 510돌 한글날에 예술계 및 교육계, 28개 문화 단체 대표들의 발의로 창립된 이 사업회는 이처럼 한글과 온라인을 연계하는 정보화 사업을 차근차근 확대하면서 대중과 한글의 접점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정신을 이어받아 지속적인 한글 문헌 연구와 바른 우리말 사용을 위한 캠페인, 행사 등을 추진해왔으며 정보 기술의 발전과 함께 한글의 과학화, 정보화 작업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

이미 70년대부터 일찌감치 타자기 글자체를 연구했으며 88년부터는 글꼴개발연구원을 설치, 정보화 사회의 기록 문화를 이끌어 갈 실용적이면서 아름다운 글꼴을 다수 탄생시켰다. 매년 봄, 가을에 전국 초·중·고등학교 학생 평균 3500∼4000여명이 참여해 열리는 글짓기 대회는 우리말 우리글 바로쓰기 운동의 확산에 톡톡히 기여하고 있다.

정보통신의 발전에 따른 한글의 발전상을 짚어보고 인터넷의 한글 오남용 폐해를 개선하기 위한 순화 운동도 꾸준히 전개했다.

지난 92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미래의 한글전-한글의 과학화·정보화’ 전시회는 타자기 및 컴퓨터와 한글 관계, 미래의 한글 정보화 현황 등을 한 눈에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2002년에는 ‘통신언어 다시보기 전’을 열어 ‘외계어’로 불릴 정도로 갈수록 난해해지는 통신 언어의 실태와 개선 방안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현재 세종대왕기념사업회는 전국 대학의 국어 관련 연구자 400∼500여 회원이 주축이 돼 운영되고 있다.

◇한글, 인터넷을 통해 온 세계로= 세종대왕기념사업회는 최근 정보통신 기술 발전과 인터넷의 확산으로 도래한 우리말의 위기를 한글의 세계화로 전화위복시키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한글이 8000만 명이 사용하는 세계 12위권 언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업회에 따르면 남·북한 7000만을 포함해 북미 190만, 일본 70만, 독립국가연합 46만, 유럽 7만 등 한글 사용자는 전세계 곳곳에 포진해 있다.

인터넷을 매개로 한글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작업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한글은 컴퓨터 두벌식 자판 52개를 사용해 전세계 언어를 소리나는 대로 표기할 수 있는 유일한 음소문자다. 세상의 온갖 언어와 소리를 자유롭게 적을 수 있다. 정보화에 매우 적합한 문자 조합 구조를 지니고 있어 생성과 활용의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점도 입증받은 사실이다.

이같은 이유 때문에 국어정보학회는 ‘국제음성한글기호’(International Phonetic Hangeul, IPH)를 확정하고 한글을 국제음성기호로 보급키로 결정한 바 있다. IPH는 현행 한글 날자와 옛날자를 기본으로 조직적이고 과학적으로 만들어져 외국인들도 습득하기 쉽다.

앞으로는 전세계 3000여개의 언어가 소멸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는 가운데 문자가 없는 곳에 한글을 보급하자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인터넷 주권 회복 나서야=한글 인터넷 주소 운동은 이같은 한글의 실용성과 우수성을 기반으로 전 국민의 정보 접근 기회를 확대하고 국가 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하는 첫걸음이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도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올해부터 이 운동에 적극 동참할 계획이다.

우선 5월에 열리는 ‘제29회 한글 글짓기 대회’에서 넷피아의 한글인터넷주소 등록 운동을 홍보하는데 힘을 쏟는다는 것. 차재경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기획관리국장은 “한글 인터넷 주소 확산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점에서 기업과 뜻이 맞았다”며 “글짓기 대회에 전국 초·중·고교 학생이 대거 참여하는 만큼 학생들에게 한글 인터넷 주소의 편리함을 직접 알리는데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글 인터넷 주소 확산을 민간 기업과 단체가 발벗고 나서는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도 필수불가결해졌다. 그동안 이 사업회가 추진해온 고전 문헌 국역 사업 등에는 교육부와 문화관광부 등 관계부처의 예산 지원이 이루어졌으나 인터넷과 한글을 연계하는 각종 사업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미비했다.

차 국장은 “예산도 부족하지만 한글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부각시키려는 노력도 보다 강화돼야 할 것”이라며 “한글날 국경일 제정 추진 운동 등도 이같은 맥락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이경우차장(팀장), 조인혜기자, 이진호기자, 김유경기자, 조장은기자, 윤건일 기자

 

◆인터뷰-종국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한글 인터넷 주소 갖기 운동에 본격 나설 계획입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인터넷에서 한글을 살리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 나라를 지키는 일이라는 신념을 갖고 구체적인 추진 방안을 구상 중입니다”

지난 91년부터 13년째 세종대왕기념사업회를 이끌어온 박종국 회장은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한글의 과학화를 실현하려는 집념이 남다르다. 우리말 우리글을 바로 쓰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한글 글짓기 대회’가 올해로 29회를 맞이했으며 아름다운 글꼴 만들기에 기여하는 ‘한글글꼴공모전’도 12회를 넘어서는 등 한 번 시작한 사업은 꾸준히 성과를 도출하는 고집스러움을 인터넷 한글사랑으로 이어갈 생각이다.

박 회장은 “날로 발전하는 정보화 사회에서 PC는 물론 첨단 정보기기에서 가장 활용하기 적합한 문자가 바로 한글”이라며 “훈민정음 해례본만 봐도 한글은 새소리, 개짖는 소리까지 기록할 수 있는 등 매우 과학적인 조합 원리를 적용해 활용 범위를 극대화할 수 있다”며 한글의 우수성을 극찬했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의 한글 과학화·정보화 사업에 대해 박 회장은 “이미 70년대에 타자기 글자체 연구에 착수했을 만큼 사업회는 한글의 과학화에 일찌감치 나섰다”며 “2002년에는 왜곡된 인터넷 언어를 분석, 전시함으로써 오용되는 우리말을 순화하려는 특별전을 개최해 호응을 얻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올해부터는 인터넷을 활용한 사업회 홍보에도 적극 나서는 한편 고전 문헌과 서예 글씨체 등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에도 보다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박 회장은 “그동안 신경쓰지 못했던 사업회 누리집(홈페이지)을 대폭 개편해 한글의 뛰어남과 사업회의 활동을 대내외적으로 적극 알리겠다”며 “유명 서예가의 글씨체를 글꼴로 활용할 수 있는 연구도 진행중”이라고 귀띔했다.

한글 인터넷 주소 운동에 대해 박 회장은 “한글 주소를 문패로 달아야 한다는 공감대는 누구나 갖고 있는 듯한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 번 습관이 들면 쉽게 바꾸지 못하는 장점이자 단점을 지니고 있다”며 “한글이 세계적으로 인터넷에서는 아직까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지만 일단 한 번 써보면 한글 주소의 편리함과 친근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출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

◆미니캠페인­

 인터넷 접속과 관련해 누구나 자주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가 ‘다운로드(Download)’, ‘업로드(Upload)’이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각종 자료나 동영상 등을 자신의 컴퓨터에 담거나 반대로 올릴 때 누구나 습관적으로 쓰는 말이지만 각각 ‘내려받기’, ‘올리기 또는 올려주기’로 바꿔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다운로드’라는 용어는 인터넷 초창기부터 널리 회자됐지만 ‘다운받다’ 등 영어와 우리말이 혼용돼 쓰이면서 왜곡된 만큼 자연스럽고 의미를 명확히 전달해주는 ‘내려받기’라는 용어를 보다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