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굴뚝 업체라는 인식 때문에 레인콤은 국내 투자업체들로부터 외면받는 등 어려움이 적지 않았지만 직원들의 경영자에 대한 신뢰와 성실성 덕분에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다. 창업 초기 회사 근처 식당 회식 자리에서 보낸 직원들과의 즐거운 한때.(가운데가 필자)
2000년 봄. 레인콤이 설립된 지 1년만에 우리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최신 기술을 접목해 엔지니어링 서비스 회사로 탄탄하게 자리잡겠다고 시작한 우리의 구상이 처음부터 잘못돼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당시만 해도 MP3플레이어 시장에 직접 뛰어들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주요 수익원(캐시카우)을 만들기 위해 저명한 반도체 회사의 도움을 받아 수익모델을 만드는 기반을 구축했다. 솔루션을 새로 디자인해 세트를 만들어 가전 제품 중심으로 VCD·DVD 등에 들어가는 솔루션을 팔고 로열티를 받는 식이었다. 당초 예상과는 달리 서비스 제공 보다는 관련 부품 판매가 오히려 주요 수익원이 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그러면서 열심히 사람을 끌어 모으는 일을 계속했다. 분야별 최고 전문가를 끌어들이기 위해 개별적으로 영입작업을 벌였다. 하지만 당시 젊고 우수한 인재들에게 가능성만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지만 고맙게도 친분이 있던 직원들이 적지 않게 나의 뜻을 따라줬다.
그러는 사이 새롭게 구상하게 된 사업분야가 MP3플레이어 솔루션 분야다. 플래시메모리 반도체를 저장매체로 이용하는 플래시메모리 타입은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판단해 이보다는 고난도 기술을 요하는 CD 타입 솔루션 개발에 착수했다.
하지만 곧 어려움에 봉착했다. 당시 국내에는 이미 130여개의 MP3플레이어 제조업체가 난립해 있었다. 회로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이들 업체에게 프로그램 키트까지 팔았지만 4∼5개 업체를 제외하곤 우리가 제공하는 소프트웨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설사 솔루션을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CD메커니즘과 소프트웨어간의 매칭 작업도 해줘야 했고 결국 우리가 제품 양산까지 책임져야 하는 꼴이 됐다. 기술 제공과 양산 지원까지 다 해 주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수수료는 턱없이 낮았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우리가 제품화를 하자는 의견들이 나왔지만 수십억원에 달하는 자금조달과 성공 여부를 생각하면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적은 수수료나마 만족하고 안전하게 갈 것인가 아니면 회사의 운명을 건 도박을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의 날을 보내던 어느날 이래환 이사(현 기술담당 부사장) 에게 “훌륭한 제품만 만들어 주라. 돈은 내가 마련해 보마”"라고 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걱정 마세요 어차피 빈 손으로 시작한 거 망하면 다시 시작하지요.”
마침 국내에선 닷컴 바람이 한창 불 때였다. 인터넷 포털이나 반도체칩 사업이 아니면 벤처 취급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를 굴뚝산업으로 취급하고 투자에 인색했던 국내 벤처 캐피탈은 끝내 우리의 기대를 저버렸다. 대신 외국의 투자자쪽으로 눈을 돌리고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홍콩 AV컨셉사의 소육관 회장에게 부탁했다. 사업 내용을 설명하고 친구로서가 아니라 사업적 관점에서 판단해 달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AV컨셉사에서 유치한 자금이 560만달러. 그보다도 AV사의 공장을 이용하고 모든 부품의 구매자금을 AV측에서 맡아 주기로 한 것이 큰 힘이 됐다. 2000년 5월의 일이었다. 그리고 본격 양산체제에 들어갔다.
“인간 양덕준에 대한 신뢰 못지 않게 그가 하려는 사업전망이 밝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훗날 소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투자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