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사업확장을 막아왔던 출자총액제한 제도가 대폭 완화된다. 정부는 지난 25일 경제장관 간담회를 열고 출자총액제한 예외를 대폭 완화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 ‘고용 창출형 창업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의 이번 정책방안은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확장을 막기 위해 마련한 출자총액제한집단이 오히려 대기업의 신규 산업 투자를 막고 고용창출을 방해할 수 있다는 비판에 따른 조치로 대기업의 신산업 진출이 대거 확대될 전망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란= 대규모 기업집단에 속하는 기업이 순자산액의 25%를 초과해 계열사에 출자할 수 없도록 한 제도다. 업종 다각화에 따른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확장을 막기 위해 자산규모 5조원이상인 그룹에 한해 순자산의 25%를 초과해 계열사에 출자할 수 없도록 한 제도로 지난 1997년 폐지됐다가 2002년 4월부터 다시 시행됐다.
이 제도는 그동안 대기업의 과다한 확장을 막는 데는 기여했으나 기업 퇴출과 적대적 인수합병을 어렵게 한다는 이유로 1997년 폐지됐다가 이후 적대적 인수합병이 한 건도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대기업들의 계열사에 대한 내부지분율이 증가하는 등 부작용이 일어남에 따라 부활했다.
◇출자총액제한제도 문제는 없나= 이 제도는 도입된 이후 존립 및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산업연구원은 출자총액제한제도가 사전적·획일적 규제의 성격을 띠고 있어 규제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많고 예외인정 조항의 확대 등으로 인해 그 실효성이 높지 않다고 밝혔다. 반면 내외부의 실질적인 감시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폐지했을 경우에는 대주주의 전횡과 경제력의 집중이 심화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향후의 정책방향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직접적인 규제방식보다는 집단소송제의 도입 등 시장규율에 의한 사전적·사후적 감시시스템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지적이었다.
비효율적인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시장규율에 의한 사전적·사후적 감시시스템의 정착과 함께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정부의 출자총액제한제도 완화방안= 이번 경제장관 간담회에서 발표된 정책방안으로 대기업들은 앞으로 신기술을 이용한 첨단산업에 마음놓고 진출할 수 있게 됐다. 출자총액제한의 예외로 ‘10대 차세대 신성장동력산업’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예외로 인정받았던 정보통신·생명공학·대체에너지·환경산업에 6∼7개 첨단업종이 추가됐다. 지난해에 선정된 10대 차세대 신성장동력산업인 디스플레이, 지능형 로봇, 미래형 자동차, 차세대 반도체, 차세대 전지, 디지털TV·방송, 차세대 이동통신, 지능형 홈네트워크, 디지털콘텐츠·소프트웨어 솔루션, 바이오 신약 등이 새로 포함된다.
또한 출자총액제한 예외 인정을 받기 위한 매출액 요건도 대폭 완화됐다. 신기술을 이용해 생산한 제품이 최근 1년간 매출액이 전체 매출액의 50%를 넘어야 예외로 인정받았지만, 앞으로는 30%로 낮아지고, 창업한 회사에 대해서는 매출액 요건을 1∼2년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출자총액제한제도는 기본적으로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에 따라가되 이 제도가 기업의 실질적인 투자활동에 제약이 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수도권규제의 합리적 개선-수도권과 지방의 상생방안 마련
정부는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을 도모하는 개선방안 마련에 본격 나섰다.
정부는 올 6월까지 수도권 규제 완화를 위한 로드맵을 완성키로 하고 현재 관계부처 간 긴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관계자는 29일 “오는 6월까지 참여정부의 수도권 발전방안 로드맵을 만들기로 하고 현재 수도권관리전문위원회가 이를 추진하고 있다”며 “위원회에서는 지방활성화를 통한 수도권의 과밀화문제 해결과 수도권 규제개선 두 가지 방안을 통시에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 중앙부처 및 공기업 이전으로 수도권의 과밀화 문제를 우선 해결하고 수도권의 규제개선작업을 진행하는 소위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을 모색한다는 구상이다. 실제로 수도권의 과밀화는 수도권 발전계획마련에 있어 가장 시급한 해결과제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전체인구 중 수도권 인구 비율은 70년 28%(920만명)에서 2002년 말에는 무려 47.2%(2288만명)로 급증했다. 또 2020년에는 전체인구 50% 이상이 수도권에 거주할 전망이다.
따라서 수도권과 지방이 상생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권한과 재원을 지방에 이양하고 지역특성과 혁신능력을 감안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중심으로 재정경제부.산업자원부.환경부.건설교통부 등 수도권 규제와 관련된 관계부처가 모두 참여하는 수도권관리전문위원회를 가동하고 있다.
특히 산자부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수도권관리전문위원회에서 수도권 규제 개선 논의하는 한편 국가균형발전정책과 연계해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발전방안 및 규제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현재 산업기술대학교의 노성호 교수에게 용역을 실시하고 있으며 현재 개선방안 마무리 작업을 진행 중이다.
산자부 강남훈 과장은 “선지방, 후수도권, 그리고 선계획, 후규제개선이라는 큰 틀 안에서 개선방안작업을 논의하고 있으며 수도권의 인구·환경·경제 등에 대해 경쟁력을 키우는 장기적인 계획이 나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재경부는 수도권은 과밀억제권역 환경보전권역 성장관리권역 등으로 나눠져 각종 규제를 받고 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차별이 시정되지 않는 등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 부분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재경부는 경제 운용 방향에 수도권 공장 난립을 막기 위해 공장총량제와 산업단지공급제도를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오는 4월 본격 개통되는 고속철도도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을 모색하는 방안의 큰 역할을 할 전망이다. 고속도로가 산업화.도시화와 수도권 불균형적 발전의 촉매였다면, 반나절 생활권을 추구하는 고속철도는 그 반대로 지방화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고속철도로 인해 지방도시가 고르게 발전하면서 수도권에 집중된 산업이나 경제력은 국제업무, 금융 등 핵심기능만 남기고 지방으로 분산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고-전국경제인연합회 이규황 전무
기업의 투자가 우려할 정도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연평균 18%대의 투자증가율이 외환위기 이후 3%대로 축소됐고 설비투자도 8년째 답보를 보이고 있다. 그나마 설비투자도 삼성전자, LG필립스LCD 등 제조업과 일부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투자내용도 시설 유지보수가 주류이고 신사업투자는 축소돼 성장기반이 점차 잠식되고 있다. 고용도 마찬가지로 연간 40∼50만개씩 증가하던 추세가 작년에는 3%의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3만개가 감소하는 등 고용없는 성장이 고착화될 우려가 크다.
투자부진의 원인으로 외환위기 이후 경제력 집중억제를 위해 도입됐던 정책성 규제인 소위 덩어리 규제와 정책불확실성의 증대 등을 들 수 있다. 약 18만명의 고용효과와 10년간 9조원의 생산유발효과가 있는 위성DMB사업의 표류나, 2010년까지 73조원의 투자효과가 있는 삼성전자와 쌍용차공장증설이 정부부처간 충돌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리더쉽 부재로 1년간 표류하다가 투자시점을 실기한 사례 등이 대표적인 투자저해 사례이다.
그런데 이렇듯 기업 입장에서는 신규투자는커녕 기존 투자도 투자시기를 놓칠까 봐 불안스러워하고 있는데 이런 결과를 초래한 원인 중 하나인 출자총액, 수도권입지, 노사부문 등의 덩어리 규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여러 가지 정책목표를 이유로 개혁을 미루고 있어 기업들의 규제개혁에 대한 체감도가 떨어진다는데 투자부진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특히, 경제력 집중을 억제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출자총액규제로 인해 해당기업은 신규사업진출을 위한 투자와 구조조정, 외국기업과의 합작투자 등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SK사태에서 보듯이 외국자본과의 역차별로 적대적 M&A에 따른 경영권 방어 곤란도 출자총액규제의 문제점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시장개혁로드맵에 따라 출자총액규제의 현행틀을 유지할 방침인데, △증권관련집단소송법이나 사외이사제도 확대 △내부회계관리제도 확대 등 경영투명성 관련제도가 정착되고 있어 투자촉진을 위해서라도 출자규제를 조기에 폐지하는 것이 타당하다.
다음으로 계속 논쟁이 되고있는 수도권입지규제도 문제이다. 수도권의 물류, 인적자원, 기존 집적지의 투자이익 등을 바라는 기업들의 수요를 외면한 채 수요없는 공급에 불과한 지방이전만 촉구하고 있어 기업들의 신규투자포기 속출과 해외이전 가속화에 따른 제조공동화문제가 심각하다. 그나마 국내기업과의 역차별논란을 낳고 있는 수도권내 외투기업의 공장신증설도 이미 작년말 허용기한 만료로 인해 신규 외자유치도 곤란한 실정이다. 그러므로 지식기반산업과 첨단업종 위주로 국내 산업이 고도화될수 있도록 획일적인 수도권총량규제를 완화하여 투기가 아닌 건전한 기업투자를 정부가 사안별로 허용할 수 있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아울러 지방의 경우 지역별로 특화된 제조 또는 서비스산업의 집적지형성을 병행 추진하여 기업들의 수요를 창출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투자활성화를 위한 노사관계의 선진화도 시급하다. 이를 위해 해고제한조건의 완화나 근로자파견제도의 규제완화, 쟁의행위기간 중 대체근로자 채용 허용 등의 규제완화가 필요하다.
투자부진 상황을 감안하여 최근 재경부는 신산업분야의 예외인정 확대와 분사형 창업투자에 대한 예외인정 부활을 골자로 하는 출자총액규제의 개선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 정도 개선으로는 규제개혁효과가 미진하며, 궁극적으로는 출자총액제한 자체를 없애고 이와 함께 제도적인 면에서 수도권투자규제와 노동시장 유연화 등도 같이 이뤄져야 투자활성화의 속도가 붙을 것이다. khlee@fki.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