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나노시스가 개발한 초 고감도 바이오칩(supersensitive biochips)(上), 나노시스가 개발 중인 나노 태양전지에 사용되는 나노 솔라 셀스 온칩(Nano solar cells on chips)(下).
1990년대 말 기술을 말하는 대부분의 기업은 ‘닷컴(.com)’이란 용어에 열광했었다. 그러나 이제 닷컴은 어느새 ‘닷컴 버블’로 사라지고 너도 나도 기업명에서 닷컴을 지우는 움직임까지 일어났다. 한때 닷컴에 열광했던 기업들이 이제 관심을 가진 분야는 어디일까. 그 답은 바로 ‘나노기술(NT)’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정보기술기업인 HP·IBM·GE는 물론 수많은 기업들이 나노기술 혁신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닷컴에 대한 관심이 모두 나노로 옮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W. 패커드 드레이퍼 피셔 쥬벳슨(Draper Fisher Jurvetson) 심사역은 최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나노텍2004에서 “나노가 벤처캐피털업계의 새로운 골드러시 분야로 떠올랐다”며 “주식거래자들이 나노산업을 틀림없이 성공할(surefire) 시장으로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의 움직임보다 한 발 먼저 움직이는 자금이 나노로 몰리고 있는 현상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NT 산업의 중심 미국=나노기술에 관한 각종 정보를 공급하는 CMP 시엔티피카의 통계에 따르면 총 450여개의 전세계 나노기술 관련 기업 중 225개인 절반 이상이 미국에 있다. 120여개 유럽 기업 가운데 절반 이상이 독일에 있으며 아시아 나노 기술 관련 기업의 절반이 일본에 있다. 이런 통계에서 보듯 세계 나노기술 관련 민간 기업은 미국계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년 증가하는 미국 정부의 나노기술 연구비 증액은 연구는 물론 산업계에 NT산업을 육성하는 든든한 인프라가 되고 있다. 미 정부 연구 지원비의 약 70%는 대학에서의 기초 연구비로 배분된다. 나머지 30%는 기초 연구에서 약간의 응용 연구를 진행하는 정부 연구소에 지원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은 매우 적은 액수의 연구비만을 지원받게 된다. 하지만 원천기술·응용기술·상업화 기술의 차이가 작은 NT분야에서 대학과 연구소들의 연구는 미국 산업계로 바로 이전되는 파급효과를 낳고 있다.
미국 민간 기업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와 더불어 우수한 인력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타지역 기업보다 우수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또 99년부터 시작된 벤처캐피탈의 적극적인 투자에 힘입어 기업 수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최근 나노시스(Nanosys)·나노옵토(NanoOpto) 등 벤처기업은 물론 IBM·HP·인텔 등이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품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현재 전반적인 단계는 주로 제품에 응용하기 위한 기반 기술에 연구에 집중하는 편이며 자동차·기계장비·항공·에너지·의약·부품 분야 응용에 기대를 걸고 있다.
◇전자 기업들의 새로운 전기 마련=IBM·HP·인텔 등 대부분의 전자 분야 주요 기업들은 나노기술을 연구해야 한다는 전략적인 압력을 느끼면서 관련 기술력을 확보하는데 총력전을 펴고 있다. 인텔·IBM·모토롤라 등의 반도체 기업들은 진보된 나노 기술을 이용해 기존의 반도체 선 폭을 줄이고 더 빠르고 작은 차세대 반도체를 개발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나노기술 연구의 선두 기업인 IBM은 이미 1990년 니켈 표면상에 제논(Xe) 원자를 한번에 하나씩 이동시켜 5나노미터 높이의 I-B-M이라는 글자를 새기면서 나노 산업의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이후 IBM은 자기 디스크 드라이브의 기능을 크게 향상시키는 픽시 먼지(Pixie Dust)를 개발했다. 픽시 먼지란 동화 피터팬에 나오는 팅커벨의 요정가루에서 나온 말로 불과 원자 3개 정도의 두께다. 이 개발로 IBM은 픽시 먼지 하나만으로 연간 수십억달러의 시장을 형성했다.
러드 트롬프 IBM 나노 연구부장은 “IBM은 거의 모든 전자 분야에서 나노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유기반도체, 100㎚ 이하의 미세식각공정(Lithography), 단 분자 트랜지스터, 탄소 나노튜브 트랜지스터 등 전분야”라고 소개했다.
HP는 서로 마주 걸쳐진 전선들 사이에 불과 몇 개 분자 두께의 유기물질 층을 넣은 ‘분자 전자 소자(Molecular Electronics)’ 구조를 만들어 냈다. 전선들을 가로 질러 가해진 전류는 유기 물질 층의 저항 변화를 일으키고 이 변화는 데이터로 표현된다는 이론이다. HP는 DNA 분자를 써서 데이터를 처리하는 분자 컴퓨팅(Molecular Computing)과 다른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HP는 이 프로젝트에 총 2570만달러를 투입하고 있다.
◇신생 기업들의 도전=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의 나노 벤처기업 나노시스(Nanosys)는 전세계 반도체 및 전자기업들로부터 공동 기술 개발에 관한 러브콜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 회사는 나노와이어와 바이오칩은 물론 인텔, 마쓰시타 등 세계적인 기업과 제휴해 반도체칩에서 나노태양전지까지 개발하고 있다. 인텔은 나노시스의 실리콘과 기타물질로부터 초소형 구조물을 제조하는 ‘나노와이어’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트랜지스터 개발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나노시스는 일본 마쓰시타전기산업과 함께 전기를 발생하는 지붕 타일이라 불리는 나노 태양전지 개발에 협력해 오는 2006년부터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회사가 개발한 나노태양전지는 60∼100㎚ 길이의 나노봉을 만든 후 이 나노봉이 태양광선을 흡수해 전자 형태로 전도(電導)하게 하는 것이다. 이 회사는 미세한 나노로드로 코팅된 박막물질이 에너지 손실 없이 태양광선을 전기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을 규명했다.
찰스 리버 하버드대 화학과 교수(나노시스 공동 창립자)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토머스 제퍼슨의 말에는 동감하지만 탄소 나노 튜브는 모두 평등하지 않다”며 나노 기술의 다양성을 설명했다.
나노시스 외에도 나노칩을 개발한 코비오와 센서용 나노튜브기술을 보유한 나노믹스, 메모리 칩용 나노튜브를 선보인 난테로, 초집적 메모리시스템용 미세전자를 연구하고 있는 제타코어 등 신생 나노벤처기업들이 세계 나노 산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인터뷰-데이비드 텐넌하우스 인텔 기술부문 부사장
“양방향컴퓨팅(인터랙티브컴퓨팅) 시대를 지나 이제 프로액티브컴퓨팅 시대가 열립니다.”
데이비드 텐넌하우스 인텔 기술부문 부사장은 최근 보스턴에서 열린 ‘나노텍2004’에서 나노기술을 이용한 차세대 반도체 기술과 강력한 계산 능력이 프로액티브 컴퓨팅 시대를 이끌 것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정보 단말기와 네트워크의 발달로 사람들이 수많은 기기를 관리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프로액티브컴퓨팅을 통해 사람이 이들을 통제·관리하는 감독의 역할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노기술이 바로 프로액티브컴퓨팅 시대를 열 핵심 기술이라고 단언했다.
“컴퓨터는 입력을 받아 결과를 내보내는 차원에서 과거 학습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다음번 결과에 영향을 주는 프로액티브한 시스템으로 진화됩니다.”
데이비드 부사장은 프로액티브 컴퓨터 환경을 구현하는 데는 나노기술을 바탕으로 한 센서 네트워크 구축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강조했다. 인텔의 나노기술은 센서와 컴퓨팅, 통신기술을 통합한 센서 네트워크를 통해 컴퓨터 산업에서 통신·생명공학·헬스케어로 이어지는 인프라 기술로 자리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인텔은 컴퓨터와 통신 시장을 넘어 헬스케어 시장에 큰 가능성을 점치고 있습니다. 나노기술을 이용해 집안 곳곳에 센서 네트워크를 설치하는 프로액티브 헬스 시대를 열 것입니다.”
인텔은 기억력이 떨어지는 노인들에게 화장실 이용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동지침을 주거나 이상한 움직임을 즉각 포착토록 해 치매 현상 등 이상징후를 조기에 발견하는 컴퓨팅 환경을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인텔은 또 미세전자기계공학(MEMS)을 이용해 DNA와 단백질을 정밀관찰하고 세포 특성을 현장에서 곧바로 칩 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개인 의료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나노기술은 더욱 심화된 정보기술(IT) 산업과 경제로 가는 열쇠입니다.”
그는 “나노기술이 ‘무어의 법칙’을 새로운 영역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며 오는 2021년에 탄소 나노튜브를 이용한 트랜지스터가 상용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스턴(미국)=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
<자료협조: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나노정보분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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