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이 정당하게 소유하고 있는 일반명사 도메인이나 기업 도메인 등을 외국기업들에 빼앗기는 ‘역스쿼팅’ 피해가 심각하다. 도메인 네임은 대부분 일반 명사들이어서 타사의 상표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도 소송을 외국어로 현지에서 진행해야 한다는 불편함을 악용, 거액이 소요되는 막무가내식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이같은 소송은 10여건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해 3월 국내 도메인 업체인 G사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10만대 1 이상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sex.biz’를 당첨받은 정모씨의 경우다. 정씨는 이 도메인을 따내면서 독일의 한 회사로부터 200만유로(약 28억원)의 판매제의를 받는 등 다양한 제안을 받았지만, 자신이 직접 사업을 할 계획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도메인 분쟁조정기관인 전미중재원(NAF)이 미국에서 ‘sex’라는 상표를 소유한 미국인 마커스 쉐이트씨에게 정씨가 상표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도메인을 양도하라는 판결이 내려왔다.
이에 정씨는 “‘sex’라는 단어가 일반명사로 특정 회사의 상표로 보호 받지 못한다”며 국내 법원에 도메인사용금지 및 이전청구권 부존재확인 청구소송을 냈고, 지난해 11월 승소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원의 판결은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미국인 마커스 쉐이트씨는‘.biz’도메인 등록 주관업체인 미국의 뉴레벨사가 있는 버지니아주 법원에 상표권 침해에 따른 도메인 분쟁소송을 내 미국법원의 판결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될 처지에 놓였다.
현지에서 미국법에 따라 재판을 받은 정씨는 그러나 언어장벽 및 법률 지식의 한계에 부딪치면서 변호사비용 등에 1억원 정도를 쏟아부어야 했다. 결국 더 많은 재판비용이 들어갈 것을 우려해 마커스 쉐이트씨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며 울며 겨자 먹기 식의 합의를 통해 소송을 마무리 지었다.
도메인 분쟁의 경우 1차적으로는 국제도메인관리기구인 ICANN이 정한 도메인분쟁조정정책(UDRP)에 따라 ICANN으로부터 권한을 이임 받은 전미중재원(NAF) 등의 중재기관에 의해 판결을 받게 된다. 이에 승복하지 못하는 경우 최종적으로는 도메인등록주관사(레지스트리)가 있는 지역의 관할 법원의 판결에 따르게 된다.
하지만 ICANN이 정한 도메인분쟁 중재기관은 대부분 미국과 유럽에 있고 아시아에서는 홍콩과 베이징에 위치해 있다. 레지스트리 역시 대부분 미국회사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의 법원에서 외국의 법에 따라 외국의 언어로 분쟁소송을 치뤄야 한다.
따라서 언어문제나 법률적인 지식이 없는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은 들어보지도 못한 외국회사가 상표권을 주장하며 도메인분쟁소송을 하면 항변 한번 못해보고 도메인을 빼앗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게 업계의 설명이다. 설령 도메인을 지키려고 하더라도 외국인 변호사를 구하는 등 최소한 수천만원 이상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가비아의 도메인사업부 허주용 차장은 “역스쿼팅에 속수 무책인 것은 인터넷 체계 자체를 만든 미국과 유럽 등에 비해 소외된 국가의 비애”라며 “억울한 역스쿼팅에 대한 대처방안에 대해 상담 및 지원을 하는 정부차원의 대응체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국인터넷정보센터(원장 송관호)는 ‘닷컴(.com)’과 ‘닷넷(.net)’ 등 국제 도메인의 분쟁을 국내에서도 처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ICANN이 특정 국가를 위해 국제도메인 분쟁 조정을 허용한 선례가 없어 귀추가 주목된다.
<조장은기자 je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