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레인콤 양덕준 사장(3)

 사진 설명: 레인콤의 진가는 해외에서 더욱 빛난다. 지난해 미국시장(플래시메모리 기준) 점유율은 20% 안팎을 기록하면서 업계 1위에 올랐다. 사진은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 위치한 미국 판매법인 아이리버아메리카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인 모습.

 고민의 날을 보내며 여러 방법을 찾던 중 소닉에 대한 채권을 담보로 팩토링을 하는 방법이 있겠다고 생각하고 미국에서 소위 채권 전문회사를 수소문해 소개받았다. 미국으로 날라간 때는 소닉과의 신제품 계약 바로 하루 전. 도착하자마자 바로 미팅에 들어가 채권액의 80%까지 가능하다는 답변을 얻었다.

 그 다음날 소닉사와 회담을 시작하며 협상이 결렬돼도 80%는 건질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불평등 조항마다 우리는 우리의 주장을 강력하게 밀고 나갔다.

 많은 조항을 뜯어고쳤지만 가장 큰 성과는 소닉사가 일정량 이상을 팔지 못할 경우 우리 브랜드로 병행 판매할 수도 있다는 것과 여신 총금액에 대한 상한선을 400만달러로 제한해 그 이상이 넘으면 역시 우리 브랜드로 판매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 다시 밀월에서 껄끄러운 동반자로서 재출발을 하게 됐다. 그 해 우리의 매출은 400억원을 넘는 경이로운 성장을 보였다.

 드디어 2001년말 세번째 모델이면서 세계 최초의 슬림형 CDMP3플레이어인 ‘스림X’를 출시하면서 다시 갈등이 불거졌다. 이 제품에 대해 소닉사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현재의 제품도 잘 팔리고 있는데 신제품을 출시하면 현제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많이 안 팔려도 좋다. 이제야 아이리버 브랜드를 상륙시킬 기회가 왔다!`고.

 그리고 12월에는 국내에 먼저 ‘Sorry Sony’(미안해 소니)라는 도발적인 광고 카피를 출시해 선풍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이에 힘을 얻어 소닉에도 `당신들이 수용하지 않으므로 계약서에 따라 우리 브랜드로 판매하겠다`고 정식 통보를 했다.

 소닉에선 1월 CES 전시회에서 다시 협상하자고 통보가 왔고 2002년 1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다시 대면한 양사는 팽팽하게 대립했다.소닉으로서는 아이리버 브랜드의 미국시장 진출에 위기감을 느끼던 터라 이를 저지하기 위해 처음부터 우리의 계약 위반이라며 압박했다.이에 질세라 우리도 조목조목 반박해 나갔다.

 명분이 없어진 소닉사는 갑자기 우리 제품의 GUI(액정 디스플레이에 정보 표시 방법)가 자신들의 지적 자산이니 아이리버가 독자 브랜드로 판매할 경우 지적자산 침해로 제소하겠다며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이래환 부사장이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며 “이 GUI를 개발한 것은 소닉사가 아니라 바로 우리다. 정 그렇다면 우리 브랜드용 GUI는 따로 만들어 팔겠다”며 엄포를 놨다.

 순간 냉냉한 기류가 흘렀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오늘 이 자리에 온 것은 양사가 서로 더 잘되기 위한 합의점을 찾으러 온 것인데 그 동안의 대화로 봐서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을 것 같다.” 이로써 일년간의 소닉과의 애증은 끝이 났다.

 돌이켜 보면 그 때 이부사장이 돌발적으로 화를 낸 것과 내가 조용히 결별 선언을 한 것은 참으로 환상적인 콤비플레이였다는 생각이 든다.그리고 우리에게는 또 다른 시름이 닥쳐왔다. ‘자, 이제 소닉과는 결별이고 우리 힘으로 아이리버를 미국 시장에 올려야 한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

ceo@reignc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