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레인콤 양덕준 사장(4)

세계시장 진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기대했던 소닉블루와의 결별이 확정되자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난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닉사는 2001년 당시 레인콤 전체 매출의 75%를 차지했던 절대적인 고객이었다. 이렇듯 안정적인 매출처를 무 자르듯 자를 수 없다는 견해도 회사 내부에서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더 이상 신뢰를 주지 못하는 소닉사와의 결별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이제 우리에게 닥친 최대 과제는 혼자의 힘으로 베스트바이(Best Buy)에 어떻게 진출하느냐는 것. 베스트바이는 미국에만 500개 이상의 양판점을 갖고 있고 미국내 디지털 가전의 46%가 유통되는 매머드급 규모다. 즉 베스트바이를 얻게 되면 미국시장의 반을 얻는다는 결론이다.

 우리의 마음은 바빠졌다. 베스트바이를 접촉할 수 있는 채널들을 수소문하고 부탁에 부탁을 거듭했지만 이들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가까스로 담당자와 만났지만 반응은 시큰둥했다. 어렵게 대면에 성공해도 창고에서 대충 5분 만나주는 것이 고작. 이름없는 브랜드를 가진 서러움을 몸으로 실감해야 했다.

 “한국이란 작은 나라에서 설립된지도 얼마 안 되는 회사인데다 생면부지의 신생 브랜드를 어떻게 믿겠나?” “품질은 어떻게 믿고 생산능력은 되는지, 그리고 적기에 납품할 수 있는 물류체제는 갖추고 있는지, 한가지라도 제대로 증명할 수 있는가. 그 비싼 전시대를 어떻게 할애하느냐?”

 전시대 공간당 일정액 이상의 매출을 올려야 하는 베스트바이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논리였다. 그동안 소닉블루의 리오 브랜드에 의존해왔던 우리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우리의 국가 브랜드와 회사 브랜드 모두 얼마나 취약한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영향력 있는 로비스트를 고용해 끈질기게 접촉하고 설득했지만 베스트바이는 요지부동이었고 속절없이 세월만 흘렀다.

 그나마 소닉블루와의 계약 잔량이 상당량 남아있어 2002년 당시 3월까지는 매출을 유지했지만 그 잔량마저 소진되자 긴박감이 들기 시작했다. 다행히 국내 판매와 러시아 및 동구권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미국에서도 아마존 등 온라인에서 판매량 1위를 달렸지만 소닉블루를 통해 베스트바이에 납품하던 물량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규모였다.

 내부에서는 유명 브랜드의 새로운 ODM선을 확보하자는 의견과 소닉블루도 곤란한 상황일 테니 다시 협상해 보자는 의견도 나왔다. 위기감 때문이었다. 소닉블루와의 결별 소식이 퍼지며 여러 회사에서 ODM 공급 제의를 해오던 상황이었지만 단호히 거부했다.

 여기에서 다시 선회하면 내년에도 같은 상황이 벌어질 터이고 결국 ‘아이리버’란 브랜드는 서서히 소멸해 갈 것이니 힘들어도 우리 브랜드로 밀고 나가자고 다짐했던 것이다. 그때 기회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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