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 한글인터넷](4)한글문화연대

사진;`2002년 통신용어 바로쓰기 운동`의 일환으로 마련했던 버스광고 문구.

`정보화 시대에 영어는 필수’라고 한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세계인이 가까워지고 이들과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영어가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는 뜻일 게다. 또 인터넷이란 정보의 바다에서 진주를 찾기 위해선 영어를 잘해야 하고 좀 더 수준 높게 영어를 알아야 한다는 얘기가 자주 들린다.

‘영어 공영어화론’도 나오고 있는 요즘 당연한 소리처럼 들리는 이 말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 쉽게 이해될까. 세계화 시대를 역행하는 소리라는 핀잔이 적지 않을 것이다. 또 ‘남들도 다하는데 나만’이란 생각에서라도 영어 공부에 매진할 것이다. 그러나 한글문화연대는 `정보화 시대 영어는 필수`라는 말에 의문을 던진다.

◇영어를 더 잘해야 하는 시대?=우리 말글을 가꾸는 단체인 한글문화연대는 외국어 중 특히 영어 침투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영어는 경제 논리에 따라 그 영향력을 확대시켜 현재 한글과 주객이 전도되는 것은 아닌 지 착각을 일으킬 정도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정보통신 기술이 접목되면서 그 파급 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영어의 지배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이들 대부분이 영어로 되어 있어 예전보다 영어를 더 잘해야 할 것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인터넷 시대라고 해서 영어를 갑자기 잘해야 되게 된 건 아니라는 게 한글문화연대의 주장이다. 영어는 이전 굴뚝 산업시대 때부터 잘해야 하는 것일 뿐 인터넷, 정보화 시대가 도래해 생겨난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이 신문, 잡지 시절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고 이 정보들은 영어로 된 것이 많아 이를 알지 못하면 손해볼 가능성이 그만큼 큰 것인데 영어가 더 필요해진 게 아닐까.

한글문화연대 측은 이에 대해 “꼭 보아야 할 인터넷 영어 정보는 전문 지식에 관한 것이고 이를 보아야 할 사람은 어차피 그 정도의 영어 실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실력이 안되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인터넷 영어 정보가 어떤 게 있을까. 그 정도 영어를 읽을 수 없는 사람은 신문, 잡지 시절에도 영어 정보를 습득할 수 없었다. 인터넷 시대이기 때문에 영어를 더 잘해야 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고 강조한다.

◇누가 얼마나 영어를 알아야 하나=모든 사람이 영어를 잘해 영어 정보를 보다 많이 습득할 수 있다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지, 또 그럴 필요성이 있는 지 따져야 한다고 한글문화연대측은 지적한다.

김영명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영어를 잘해야 할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생산 활동 인구의 약 10∼20% 정도이고 이가운데서 정말로 잘해야 할 사람, 잘 해야 국가발전에 이바지하고 못하면 그르칠 사람은 약 5%”라고 말한다. 이들 외 대다수 사람들은 영어를 못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실생활에서 영어가 얼마나 필요한 지 모두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에게 길 안내를 해주고 명소를 소개하기 위해 그 많은 시간과 비용을 영어 교육에 투입해야 하는 것은 너무 낭비이지 않습니까?”

 국민들이 영어를 하지 못한다고 해서 부끄럽게 여길 필요가 없다는게 김대표의 주장이다. 그는 또 “영어를 못해 관광 수입이 줄어든다”는 주장은 한마디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영어가 전 세계 사이트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인터넷 상에서 발표되는 세계 과학논문의 90% 이상이 영어로 작성되고 있는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한글문화연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번역, 통역 프로그램의 개발에 있다고 강조한다. 한글문화연대는 이같은 프로그램 개발이 최근의 영어 열풍과 공용어론을 잠재울 수 있는 근본적인 기술 혁명으로 여기고 있다. 사람 보다 정교할 수는 없겠지만 대학 1학년 수준까지 번역, 통역이 가능한 프로그램은 사람이 하는 것보다 유용성의 폭이 더 큰 것으로 믿고 있다.

◇한글문화연대의 우리말 가꾸기=그러나 한글문화연대가 번역, 통역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은 아니다. 스러져 가는 한글을 반영하듯 한글문화연대 뿐 아니라 국내 한글 관련 단체들이 자본과 인력이 부족하다. 때문에 겉보기에는 미약하지만 조용하고 실천적인 정보화 시대 우리말 가꾸기에 나서고 있다.

먼저 한글문화연대는 공문이나 알림글에 영문 주소인 ‘http://www.urimal.org’ 대신 ‘한글문화연대’라는 한글인터넷주소를 사용했다. 시행 초기 낯선 누리집(홈페이지) 주소로 방문이 적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현재는 오히려 호응이 크다. 그리고 자체 누리집에 한글전용원칙을 적용했다. 예를 들면 ‘커뮤니티’는 ‘동아리’, ‘contact’는 ‘연락하기’, ‘new’는 ‘새글’ 등으로 우리 말과 글을 적고 있다.

한글문화연대가 정보화 시대에 무엇보다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젊은 세대가 한글운동에 동참하도록 유도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 한글문화연대는 자체 누리집을 통해 네티즌들과 우리말 가꾸기를 공유하고 있다. ‘언어 감시단’을 운영해 회원들이 우리 말글 훼손, 오용 사례를 찾아 ‘입원’시키면 한글문화연대에서 ‘치료’하고 바로 잡은 일들은 ‘퇴원’ 시키고 있다. 또 교수를 포함한 자원봉사자들이 우리 말글에 대한 네티즌들의 궁금점을 해소하는 ‘숙제 도우미’도 운영하고 있다.

한글문화연대 홍종연 운영위원은 “인터넷이 영어 침투와 한글 훼손에 일조했듯이 우리도 이를 잘 활용하면 보다 빠르고 쉽게 한글전용원칙을 전파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글문화연대의 폭넓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한글인터넷과 관련한 여러 활동에 동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특별취재팀>

 

 <특별취재팀> 이경우차장(팀장) kwlee@etnews.co.kr,

  조인혜기자ihcho@etnews.co.kr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

  조장은기자 jecho@etnews.co.kr

  윤건일 기자benyun@etnews.co.kr

 

◆인터뷰-김영명 한글문화연대 대표

 < “문제는 영어입니다. 인터넷 시대를 맞아 영어의 세계적인 지배력은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지만 이는 반대로 세계의 소수언어가 멸종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을 뜻하지요. 이 소수언어 중에는 한국어도 있습니다”

 한글문화연대 김영명 대표의 말은 짧고 명쾌했다. 또 분명하고 강했다. 김대표는 바로 결론을 이끌어냈다.

 “더 큰 문제는 소위 지식인이라는 지도층이 영어가 더 편하다며 영어를 사용하라고 적극 권장하는 태도를 보이고 것이지요. 우리 말글은 단순히 말하고 듣고 의사소통만 할 정도로 배우면 그만이라는 식입니다”

김대표는 대표적인 사례로 서울시를 들었다.

“서울시가 벌이는 주요 행사 명칭이 온통 영어입니다.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을 위해서라는 설명 이해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이 왜 영어로 된 행사명만 보아야 하는가가 문제지요. 게다가 영어 약자로 표기하는 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 지 한심하다는 생각조차 듭니다”

김대표는 서울시에 대한 얘기를 꼭 적어 달라고 했다. 서울시 행정에 대한 자신의 질책도 당부했다.

“중국의 한 항공사가 운행하는 서울-베이징 노선에는 절반이 넘는 손님이 한국인들입니다. 하지만 기내 안내방송은 영어와 중국어뿐입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당장 경부선 기차만 타더라도 영어, 일어, 중국어 등의 안내 방송을 들을 수 있습니다. 자국어에 대한 인식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중국은 중화사상이 여전하기 때문에 힘 있는 외국어를 배우더라도 자국어에 대한 자부심도 함께 지킨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면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김대표는 “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하다고 느끼는 지식인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전문용어나 첨단 용어들 뿐 아니라 일상용어까지 영어를 섞어 쓰는 것을 더 편하게 느낀다는 겁니다. 애써 국어를 익히려 하지 않고 힘들여 한글을 닦으려 하지도 않지요. 우리말이 부족해 외국어를 병행해야 한다고까지 합니다”

 김대표는 바로 이들이야말로 “우리말을 부족하게 만드는 공범자”라고 지적한다. 그는 언론인도 지식인층에 속한다며 책임있는 행동을 당부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

 

◆미니캠페인-인터넷용어 이렇게 바꾸면 어때요?

  ◇아이콘→ 쪽 그림 : 표시 장치상에 응용소프트웨어나 파일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시하고, 컴퓨터로 처리하고자 하는 것을 마우스로 선택해 실행하는 방법이다. 기존 키보드로 부터의 입력에 비하면 입력 문자의 오류가 없고 조작이 간단해 효율적이다. 아이콘은 이미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는 정보통신용어이지만 마땅히 한글화 되지 못해 ‘아이콘’으로 불려왔다. 문화관광부가 발간한 국어순화자료집에 따르면 아이콘의 순 우리말은 ‘쪽 그림’이다. 소프트웨어나 실행파일을 대표하는 그림으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쪽 그림’으로 표현했다. 인터넷 초창기에 아이콘이라는 말이 고착화됐으나 기능과 상징성을 대표하는 순 우리말로 ‘쪽 그림’은 가장 적합한 단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