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바이 측에서 데이터플레이(DataPlay) MP3 플레이어에 관심이 많다는 정보가 들려왔다.
데이터플레이는 동전 크기만한 CD의 양면에 500M 바이트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혁신적인 저장장치로 당시 미국의 전자업계와 메스컴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었다.베스트바이는 이 데이터플레이를 최초로 진열하고 싶다는 입장이었다.
그동안 데이터플레이를 준비해왔던 우리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즉시 동작샘플을 마무리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언론사들을 찾았다. 다행히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 포스트 등 각 언론사마다 세계 최초의 제품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리뷰 기사들이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리버는 엉뚱한(?) 제품으로 미국 언론에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이 때가 2002년 4월 중순이었다.
그리고는 베스트바이를 다시 찾아갔다. “우리가 비록 늦게 데이터플레이를 시작했지만 봐라, 세계 어느 회사보다도 앞서 개발 완료했다. 7월까지 양산을 시작하겠다.”
샘플이 완벽히 동작하는 것을 본 베스트바이는 우리의 데이터플레이를 판매대에 올리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에 힘을 얻어 주력 제품인 CD타입 MP3플레이어도 같이 진열대에 올려놓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지만 “그것은 별개의 문제이니 한번 생각해 보겠다”는 냉정한 답변만이 들려왔다.
데이터플레이어가 획기적이긴 하지만 표준으로 자리잡지 못한 터라 사업성에서 볼 때 베스트바이의 얼굴만 세워주고 우리에겐 별 실속이 없는 제품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이만큼이라도 진전된 것이 큰 소득’이라고 자위하며 데이터플레이의 양산 준비를 열심히 진행하던 차에 6월초 베스트바이에서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CD MP3플레이어 단일 제품으로는 라인업이 부족하니 플래시메모리타입 MP3 플레이어를 개발해 주면 두 제품 다 입점시켜 주겠다는 것이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제품을 3개월만에 개발 양산까지 하고 500개 매장에 대한 물류 시스템을 만들라니…’ 베스트바이로서는 신규 공급자에 대해 이보다 더 확실한 검증 작업이 없으리라.
즉시 내부회의를 열었고 우리 엔지니어들은 불가능하지만 해보자고 결의를 다졌다.그리고 특명이 내려졌다.“무조건 해낸다. 현존하는 어떤 MP3보다도 작은 크기에 가장 많은 기능을 담고 가장 긴 재생 시간을 구현한다.”
우리로서는 베스트바이에 입성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난립해있던 플래시메모리 MP3 시장에 후발로 들어가면서 무언가 새로운 돌풍을 일으켜야 했다.모든 엔지니어들이 회사에서 먹고 자는 지옥의 3개월을 보내고 ‘프리즘’이란 애칭을 가진 우리의 새로운 MP3는 정확히 9월 20일에 베스트바이 매장에 깔렸다. 그리고 우리의 프리즘은 베스트바이 매장에서 포터블 디지털 분야에서 판매고 1위를 기록하며 무섭게 팔려나갔다.
그리고 4개월이 지난 2003년 1월. 미국 라스베가스 세계가전박람회(CES)에서 베스트바이는 우리에게 제안해왔다. ‘앞으로 아이리버와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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