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레인콤 양덕준 사장(6)

지금은 밀리언 셀러가 된 크래프트(Craft)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크래프트를 만든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베스트바이의 독점권을 풀기 위해서였다. 당초 베스트바이에 독점 공급되던 모델은 프리즘(Prism)이다. 그러다보니 다른 경쟁 유통업체들의 불만이 많았다.

 CompUSA, Circuit City 등 베스트바이를 바짝 뒤쫓는 2,3위 업체들이 베스트셀러인 프리즘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럼 새 모델을 만들어 베스트바이에 독점 공급하고 프리즘을 베스트바이 독점에서 풀면 되지 않는가.` 이렇게 해서 신모델을 구상한 끝에 탄생한 것이 바로 크래프트. 항공모함 모양을 닮은 크래프트는 여러모로 직원들을 괴롭힌 작품이다.

 프리즘 모델이 당시 사각형이 대부분이었던 MP3플레이어 시장에 충격을 준 상태였다. 후속 모델 개발은 첫 제품을 개발하는 것에 비해 더욱 큰 부담을 안을 수 밖에 없었다. 프리즘의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오히려 더 뛰어난 시장 반응을 얻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로 치자면 2년생(Sophomore) 징크스를 뛰어넘어야 하는 부담과 다를 바 없다.

 이를 위해서는 탁월한 성능 및 제품의 안정성은 물론이고 아이리버가 추구해온 디자인에 대한 파격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 했다. 이러한 부담을 안고 2002년 10월 레인콤과 디자인 파트너인 이노디자인은 컨셉디자인을 진행했다.

 크래프트 디자인이 선정된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마땅한 디자인이 없어 고민 중이던 그해 12월 어느날. 디자인 미팅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온 제품기획팀은 노트북에서 생소한 데이터를 발견했다. 이노디자인팀이 프레젠테이션 당시 빌려줬던 컴퓨터에서 전에 보지 못했던 파격적인 디자인을 발견한 것.

 프레젠테이션 이전에 팀내에서 채택되지 못해 버린 디자인이라는 게 이노디자인 측 설명이었다. 레인콤 직원들은 무릎을 쳤다. `바로 이 모델이야.`

 한편 크래프트 출시 이전 가격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이미 국내 시장에서 프리즘 선풍에 패배의 쓴맛을 보던 경쟁업체들은 슬그머니 가격을 낮추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크래프트의 가격을 무작정 높일 수만은 없었다. "향상된 기능과 예쁜 디자인으로 무장한 크래프트의 가격을 도리어 낮춰야 하다니…"

 마침 플래시메모리가 과잉수요라는 이상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양상이 나타난 것이다. 즉 플래시메모리 가격이 올라갈 것은 눈에 보듯 뻔한 상황에서 제품 가격을 낮추게 되면 채산성 악화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여러모로 봤을 때 크래프트 가격은 낮추기 곤란했다. 하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채산성을 맞추기 위해선 가격을 올려야 하는 형편인데… 그래도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이기려면 가격을 낮추는 편이…"

 사실 나는 가격을 낮추자는 쪽이었다. 사내에서는 가격 정책을 놓고 편이 갈려 의견이 충돌했다. 결국 의견을 모은 끝에 크래프트 가격을 프리즘 가격보다 10∼30달러씩 높게 책정하고 시장에 내놓았다. 2003년 4월 미국에 첫선을 보인 크래프트는 프리즘의 인기를 능가하면서 단번에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내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2003년 6월 플래시메모리는 공급부족 현상을 겪게 되고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업계에서는 웃돈을 줘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결국 우리는 크래프트 가격을 높게 책정해 채산성을 확보하면서 오히려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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