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 영국 출신 물리학자인 맥스웰은 ‘맥스웰 도깨비’라는 유명한 패러독스를 생각해 냈다.
그의 아이디어는 하나의 밀폐된 방과 그 방 한편에 아무런 저항없이 잘 열리는 창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도깨비가 공기 중에 있는 산소만을 골라 그 방에 집어 넣는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아무 노력도 들이지 않고 산소 방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이 가설은 물리학적으로는 물론 성립되지 않는다. 이것은 연료 없이 운행할 수 있는 자동차와 같은 얘기이다.
이 패러독스는 50 여년 후 헝가리 출신 핵 물리학자 스칠라드에 의해 해석이 되기까지 물리학자들을 괴롭혀 왔다. 스칠라드에 의하면, 산소가 하나씩 방에 넣어질 때마다 정보라는 것이 들어간다는 것이다.즉,우리는 공짜가 아니라 도깨비의 정보를 얻어서 산소 방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해석한다면 산소가 채워짐으로써 산소 방의 엔트로피는 낮아지지만 정보가 높아져서 결국에는 엔트로피와 정보의 총량은 변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생명체는 엄청난 질서를 갖는 고도의 정보 집합체이다.염색체의 30억쌍 염기 서열중 유전자라는 일정 부분에는 염기 3개가 한조가 되어 하나의 아미노산을 만들라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또한 이 아미노산 서열들은 주위 환경에 맞춰 존재하기에 안정된 상태 정보에 따라 일정한 기능을 하는 단백질이 된다.단백질이 자신의 모양과 성질에 맞는 주위의 아미노산 분자들을 결합하는 것도 우연이 아닌 정보의 결과물인 것이다. 그리고, 맥스웰 도깨비의 지혜는 세포와 세포 간의 정보 교류, 기관, 장기 등에 끝없이 이어진다.
인간 염색체 지도 초안이 완성된 후 포스트 지놈 시대에 접어든 현재, 생명공학분야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생명체를 보는 시각이 유기물에서 정보의 집합체로, 그리고 생명체를 주로 연구하는 곳이 실험실에서 컴퓨터로 전환되고 있다.그리고 무엇보다도 생명현상을 연구하는 목적이 과학적 현상 규명에 그치지 않고 연구결과를 산업에 직접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첨단 바이오 산업이란 것은 유전정보를 이용해 신약을 개발하거나 유전자가 심어진 칩을 만들어 암과 같은 질병 진단에 활용하거나 유전자 조작 동식물을 만들어 내는 등 21세기 고부가 가치 산업이다.
유전정보를 캐는 일은 생물정보학이라는 IT 분야이다.선진국에서는 고기능 SW를 이용해 실험 데이터로부터 알려지지 않은 유전자 기능이나 대사 과정 등의 정보를 찾아 신약 후보 물질을 대량 확보하고 약의 독성이나 효과 등을 미리 예측한다. 미리 예측된 유전정보를 이용하면 한 개의 신약개발에 드는 수억 달러의 비용과 시간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다.약효의 정확도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물론 이러한 고부가가치 정보는 절대로 판매하지 않는다.
미래 바이오 산업의 주도권은 유용한 유전정보를 누가 빨리 캐내 활용하는 가에 달려있다.
세계적인 제약회사 클락소 스미스클라인사의 호스포드 사장은 ‘캄캄한 산길에서 무작정 길을 찾는 식이 아니라 이제는 유전정보라는 지도와 랜턴을 들고 길을 찾게 되었다’고 하여 IT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이 회사에서는 천식 등 13종에 이르는 신약을 유전정보에 기반하여 개발했다.
불과 2∼3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생물정보기술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었지만 지금은 그 열의가 많이 식은 것이 사실이다.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기대감이 단기간에 채워지지 않고 할수록 먼 길로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나라 바이오 산업은 지도와 랜턴의 필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할 정도의 시작 단계이다. 기술이 어렵고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한다면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특히 이러한 지도와 랜턴은 외국에서 고가의 돈을 주고 절대로 살 수 없다.
아직은 정확한 유전자의 개수도 모를 만큼 유전정보에 관한 연구는 세계적으로도 시작단계이다. 맥스웰 도깨비만이 알고 있는 정보의 꾸러미를 우리의 강한 IT를 이용하여 끌어내야 한다. 그 어떤 나라가 가진 것보다도 정밀한 지도와 밝은 랜턴을 가지고 바이오 산업의 황금을 다시 찾아나설 때다.
<박선희 ETRI 바이오정보연구팀장 shp@et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