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을 앞두고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텃밭이었던 실리콘밸리가 케리 후보의 지지 여부를 두고 격렬한 찬반 양론에 휩싸였다고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이 12일 보도했다.
민주당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부터 앨 고어 부통령이 직접 나서 정보고속도로 개념을 주창하는 등 미국 IT산업을 적극 지원해왔다. 실리콘밸리 기업인들은 지난 2000년 대선에서 민주당 앨 고어 후보에게 두둑한 선거자금과 몰표를 제공해 화답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양상이 크게 달라졌다. 민주당 후보로 나선 케리가 일자리 아웃소싱에 반대하고 외국인의 미국내 취업을 제한하는 등 반기업·친노동자 성향을 드러냄에 따라 실리콘밸리의 표심이 오히려 공화당쪽으로 기우는 조짐까지 나타난 것.
결국 미국 경제를 이끄는 IT업계가 부시와 케리, 어느 진영을 지지하느냐 여부는 향후 세계 IT산업의 진로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해 실리콘밸리에 부는 대선열풍은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실리콘밸리 표심은 민주·공화당에 몰려든 선거자금을 비교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선거자금 조사기관 CRP에 따르면 지난 3월 1일까지 미국 IT업계가 워싱턴 정가에 제공한 공식 대선자금은 총 900만달러. 이 중에서 54%가 부시 진영에, 46%가 케리 진영에 배정돼 공화당이 다소 앞선 상황이다.
정치 평론가들은 민주당의 아성인 서부 실리콘밸리에서 부시가 케리보다 많은 선거자금을 모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분석한다. 또 기업차원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한 실리콘밸리 인사들의 명단을 비교해봐도 공화당의 우세가 뚜렷하다.
우선 공화당에 줄을 선 기업인들은 빌 게이츠 MS회장을 비롯해 피오리나 HP회장, 인텔의 크레이그 배럿 회장, 시스코의 존 체임버스 회장 등 미국 IT업계를 이끄는 거물들이 모두 집합해 있다. 특히 존 체임버스 회장은 지난해 공화당 상원위원회에 2만5000달러를 따로 기부하는 등 각별한 애정을 나타낸 바 있다.
반면 케리를 지원하는 기업인은 인포시크를 창업한 스티브 커시와 에릭 슈미트 구글사장, 사이베이스의 밥 엡스타인 창업자, 셸비 보니 CNET 회장, 시만텍의 존 톰슨 사장 등 부시 진영에 비해 무게가 떨어지는 편이다. 특히 골수 민주당 지지자였던 마크 앤드리슨 넷스케이프 창업자는 케리 후보의 아웃소싱 반대정책에 불만을 갖고 이번 대선에서 지원을 유보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케리 진영을 당혹하게 만들고 있다.
공화당측은 “실리콘밸리가 막연히 민주당 일색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케리보다 더 많은 선거자금을 모았다”면서 IT업계의 지원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케리 진영의 선거모금 책임자 고렌버그는 “케리는 지난 2001년부터 실리콘밸리를 17번이나 방문하는 등 IT산업발전에 어떤 정치인보다 관심이 높다”면서 실리콘밸리의 전통적인 민주당 정서가 되살아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케리 지지의사를 밝힌 E-론의 라센 창업자는 “지난 대선에서 실리콘밸리가 밀었던 고어의 패배는 실로 치욕적이었다”면서 실리콘밸리 사람들이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 나설 것이라고 장담했다.
<배일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