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서 반품·이월·재고 상품 등이 신상품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주머니가 가벼워지면서 이왕이면 ‘새 것’이라는 소비 패턴에도 변화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는 조짐이다. 이들 중고 상품 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아웃렛 매장이 성황리에 운영되는가 하면 전문 인터넷 쇼핑몰까지 등장했다.
신 상품 그것도 고가의 상품만 취급한다는 대형 백화점 조차도 중고 제품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을 정도다. 현대백화점은 ‘중고 피아노 대전’을 열고 영창·삼익 피아노 중고품을 최고 50% 가량 싸게 판매하고 있다. 롯데는 ‘진열 상품 판매전’을 열고 삼성· LG· 대우· GE· 월풀 등 매장에 전시된 가전 제품을 10∼30% 할인 판매하고 있다. 옥션· KT커머스·우리닷컴 등 대부분의 인터넷 몰도 중고품 혹은 아웃렛 전문 코너를 오픈해 네티즌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럼 중고 상품·반품·이월 상품이 급증하는 이유는 뭘까. 한 마디로 재고가 엄청나다는 얘기다. 실제 경기도 인근 물류 창고에는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재고 상품이 가득하다. 기업들은 소비자한테는 보이지 않지만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기 보다는 ‘재고 떨이’에 비즈니스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태다.
재고는 기업의 직접적인 비용이다. 통상 하나의 상품을 개발하면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 정도의 재고를 감수하는데 내수 시장이 바짝 얼어 붙으면서 엄청난 재고가 기업의 가장 큰 경영 화두로 떠올랐다. 기업은 어떤 방식으로든 재고를 처분해야 살아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밀어내기’·‘땡처리’ 등 다소 음성적인 방법을 많이 써 왔다. 하지만 이는 시장의 순기능 보다는 역기능을 더욱 부채질 한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재고 제품을 시장에 공개해 양성화하는 것이 어떨까. 재고품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도 많이 바꿔 주변 여건은 충분히 성숙돼 있다.
경기는 한 마디로 ‘회전(사이클)’이다. 상품과 자금 회전이 빠르면 경기가 활황이고 그렇지 못하면 불황이다. 멈춰버린 사이클을 선순환 구조로 몰고 가기 위해 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창한 정책을 남발하기 보다는 정말 기업의 어려움이 무언지 기업 입장에서 서 보는 자리 바꿈이 필요한 때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