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형 서버, 수익악화 `앞날 캄캄`

재고 쌓이고 가격경쟁 탓 밑지고 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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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별 판매 대수를 맞추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 이런 수익성으로는 사업을 지속할 수 없는 지경이다.”(A서버 업체 관계자)

 “결국 비용 문제로 귀결되지 않겠냐. 수익을 못내면 줄이라는 게 본사의 분위기다.”(B서버 업체 임원)

 국내 진출한 중대형 간판 서버 업체들이 위기에 빠졌다.

 서버 시장의 가격경쟁 심화로 인한 수익 악화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업체들이 겪는 상황은 그 수준이 정도를 넘어선 분위기다. 이들은 시장에선 ‘밑지고 판다’는 업체들의 말이 최대 거짓말로 통하지만 요즘 같아서는 ‘속 살을 다 내보이고 싶은’ 심경이라고 토로한다. 더군다나 이미 경기 회복으로 접어든 본사측은 한국 시장의 더딘 경기 회복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수익성까지 떨어지니 ‘줄일 수 있는 만큼 경비나 줄여라’는 입장을 노골적으로 내보이고 있다.

 ◇닷컴 붕괴 때도 이렇진 않았다=위기의 심각성은 이미 지표로도 나타났다. 지난 2002년 상반기 회복세를 보였던 시장은 하반기부터 다시 감소 추세로 전환된 이후 2003년 3분기 반짝 상승세를 보이고는 다시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 여기에 하반기 한국IBM 뇌물 사태까지 겹치면서 국내 서버 시장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재고 물량이 가득찬 시장으로 변질돼 버렸다. 한 대형 총판이 30억원 규모의 물량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는 소문은 이미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와 관련, 한 관계자는 “점유율 경쟁과 외형 성장에 급급했던 서버 업체들이 결국 제 명을 재촉한 것”이라고 속내를 드러냈다.

 각 기업들의 올 1분기 실적 역시 아직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으나 급감된 지난 4분기 실적보다 상향은 커녕 수익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SI사 시장 왜곡 심각한 상황 이르렀다’=상황이 이쯤되니 서버 업체들이 SI사 업체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초기 가격경쟁의 주역은 서버 업체 당사자들이지만 지금은 SI업체들이 더 심하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SI업체들은 수익성이 올랐다고 자랑하지만 그것은 서버 업체의 고혈을 짜내는 것”이라고까지 비난한다.

 1분기만 해도 기대 이상으로 프로젝트가 많았지만 서버 업체들은 SI 위주의 프로젝트에서 말도 안되는가격으로 서버를 공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기술발전으로 제품간 차별성이 사라지면서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결국 가격이 성공의 최대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서버 업체들은 수요처에서 하드웨어 발주를 별도로 해 주길 바라고 있다. 모든 업체들이 ‘담합’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심각한 상황인데, SI를 끼고 진행되는 프로젝트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겠냐는 판단이다.

 ◇비용절감 최대 이슈로=이런 경향을 반영이라도 하는 듯 최근 한 서버 업체는 동종 업체의 인력구조를 자세히 조사했다. 경쟁사의 매출 구조와 인력 구조를 비교하는 것은 조직정비를 염두에 둔 조치일 가능성이 높다.

 현 시장 상황에 대해 한국HP 관계자는 “피오리나 회장이 가격은 델, 품질은 슈퍼돔으로 맞추라는 주문을 한 지 오래”라고 말한다. 제조 단위에서 원가절감이 이뤄진다면 마케팅과 영업만 수행하는 각국 지사는 결국 구조조정을 통한 비용 절감이라는 카드 외에 쓸 것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HP측은 공식적인 구조조정 계획에 대해 “본사의 지침도, 자체 계획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HP 내부 분위기는 5월 1일 새로운 조직개편과 맞물려 자연발생적인 조직정비가 이뤄지지 않겠냐는 게 지배적이다.

 외국인 지사장 체제로 가동되고 있는 한국IBM도 수 개월전부터 돌았던 구조조정설에 대해선 공식 답변을 하지 않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폭의 문제’라며 구조조정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직접 판매가 어려운 수요처가 늘어난 상황에서 한국IBM은 총판과 비즈니스 파트너(BP)를 통한 간접판매로 영업 무게중심을 옮긴 터라 유휴 인력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한국썬이 처한 상황도 비슷하다. 한국썬측은 “새로운 CEO가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힌 터라 한국 지사 역시 본사의 지침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