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은 젊은 날의 내게 인생의 기틀을 마련해 준 시작이었다.
캔사스의 미주리주립대학에서 MBA 과정을 마친 후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에 있는 회사에서 프랙티컬 트레이닝을 1년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규모가 작은 회사여서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반대로 도움 되는 부분도 많았다. 많지 않은 인력으로 구성돼 있어 함께 업무를 도와가며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적응 기간도 짧았고, 기업을 운영하는 데 실직적으로 필요한 사항들에 대하여 습득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프랙티컬 트레이닝을 마친 후 아프로인터내셔널을 설립해 사업을 진행하기까지 개인적으로 많은 고뇌의 시간을 보냈다. 미국이 아무리 기회의 땅이라고 해도 국적이 다른 외국인의 신분으로 미국 내에서 사업을 시작해 성공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음은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정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쉽지 않은 결단이었지만 1991년 5월, 마침내 실리콘밸리지역 써니베일에 있는 작은 사무실에서 사업가로서의 값진 출발을 하게 됐다.
단 몇 퍼센트만이 살아남는다고 하는, 그야말로 경쟁이 치열한 미국의 정보통신 업계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당시에는 산업용으로만 사용되던 랙마운트 서버에 모험을 걸었던 이유는 시장 변화에 대한 판단으로 부터 시작됐다. 닷컴 열풍이 시작되기 이전이었지만 난 서버컴퓨팅 시장에서 랙마운트 서버가 갖고 있는 성장 잠재력을 믿었다.
그 당시를 돌아보면 어쩌면 무모한 도전이었을 지도 모르는 선택이 결국 오늘 날의 나를 만들었다. 또 미국에서의 사업이 여러 가지 우여곡절 속에서도 현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거룩한 애국자는 아니지만 이왕 낯선 이국 땅인 미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만큼 성공해 대한민국에 기여할 나만의 무엇을 이루어야 떳떳하지 않을까 하는 욕심도 작용한 듯 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는 정말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다. 납기를 지키기 위해서 때로는 직접 기계를 돌리며 주말이든 밤이든 대부분 시간을 회사에서 살다시피 했다.이러한 노력은 아프로인터내셔널이 단순히 제품을 제조해 공급하는 기업이 아니라 뛰어난 기술력으로 고객의 요구에 맞는 제품을 디자인하고 개발해 고객에게 경쟁력을 제공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회사 설립 6년여 만인 97년, 파트너 선정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시스코에 제품을 공급하게 될 기회를 얻게 됐고, 미국 내 닷컴 열풍이 꺼지기 전이었던 2000년도의 일이기는 하지만 매출액이 6400만 달러 규모에 이르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유니와이드테크놀로지와 인연을 맺고 다시 한국에 들어와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해외에 특히 여전히 성장잠재력이 큰 미국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기업들이 상당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직은 큰 성공을 이룬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기업들에게 한 마디 하자면 미국에 진출해 사업을 진행하려면 우선 사업환경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막연히 국내에서 하던 사업 형태를 복사하듯이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실직적인 내공을 쌓아 공력을 높인 상태에서 세계적인 기업들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진 상태에서 진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처음부터 큰 성공을 하려고 하기 보다는 작은 성공을 위한 철저한 인내와 절박함을 먼저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프로인터내셔널사에서 맞은 크리스마스 파티. 왼쪽에서 세번째가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