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정봉보통신의 날이 다가왔다. 이날은 고종이 우정업무를 시작하라는 전교를 내린 날을 기념한 것이다. 이튿날 홍영식을 우정국 총판을 임명해 근대 우정이 시작됐다. 그러나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막을 내리면서 10년간 숨을 죽이게 된다.
한·일통신협정에 의해 1884년 이 땅에는 덴마크 소유 해저전신이 부산에 상륙하게 된다. 그러니까 120주년이 되며, 그 한가운데 금석(琴石) 홍영식 선생 같은 혁명가들이 자리잡았다. 또 1904년에는 우리가 발주한 선박(광제호)에 이동통신 설비를 장착하여 전파를 발사한 지 100년이 되는 셈이다. 이 때의 주역은 대한제국 통신원 총판 민상호로 대표되는 유학파 테크노크라트들이다. 발 빠른 대응을 했으나 노·일해전을 고비로 결국 강점의 굴레로 막을 내렸다. 그래서 일까, 아니면 2주갑(甲)이라는 수치의 홀림일까? 올해 갖는 의미가 각별한 이유는?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983년 유엔이 세계통신의 해(WCY)를 선포하고 인프라구조의 개발을 들고 나오면서 텔레미디끄 시대가 찾아왔다. 글쓴이는 이를 기반구조와 정보통신으로 번역하면서 정보기술인프라(IIT)의 확충을 제안했다. 정보공학을 전공한 일군의 테크노크라트들은 이 상황을 잘 이해하면서 역동적으로 노력한 결과, 한국은 지금, 최후진국에서 인터넷 강국, 전파대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다졌다. 최근에는 신성장 동력과 893정책이 나왔다. 또다시 도약할지? 추락할지? 정보통신의 날에 떠오른 최대의 화두요 거대 담론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품목들만 갖고 도약을 이룰 수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모두 질량보다는 물량, 수프라(Supra)보다는 인프라(Infra) 지향적이고, 또 나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도 같은 품목에 주력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인해전술을 당해 내기엔 우리의 ‘쪽수(?)’가 너무나 모자라고 ‘꼼수’조차도 통하지 않는다. 더구나 소득 2만∼3만달러로 이끌어 줄 선도산업이 되지 못하고, 고용 촉진도 기대하기 어려운 품목들이다. 그러므로 다소간의 유효 경쟁력을 바탕으로 우리 나름의 수프라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 마치 80년대 주력했던 인프라의 확충처럼.
맑스는 ‘인프라는 수프라’를 지배한다고 지적하면서 유물논적 관점으로 인프라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나 지금은 산업사회가 아니라 지식과 정보가 우선하는 사회다. 이용가치(유틸리티)가 인프라를 이끌며, 나라마다 각기 다른 인프라 환경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는 서비스가 어엿한 산업이지만, 일본에선 ‘덤’이고, 한국에선 ‘공짜’를 뜻한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수프라 품목들은 모두 공짜가 아니면 끼워 넣기(번들)로 전락하므로 어엿한 산업으로 성장하기 지극히 어려운 환경이다. 또 수프라 산업의 재편에는 인프라의 리모델링이나 분산구조의 전환이 선행돼야 하는데, 한국인들을 너나할 것 없이 토지와 가옥에다 무한 투자를 감행하는 인프라 우선적 사고가 팽배하다. 토지라는 소설은 한국인에게 영원한 스테디셀러(?)고, 최근 반세기 동안 일군 뉴욕의 한인 타운에서 중국화교들에 순식간에 밀려나는 중이라고 한다. 그 주 요인은. 화교들은 서로 추렴해서 빌딩 같은 기업 인프라를 확충하는데 반해, 한인들은 개인주택을 먼저 구입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매몰 비용을 산업자본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가옥구조의 3분의1을 업무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홈넷 수프라 구조가 바로 그 대안이다. 또, 나홀로 차량의 3분의1은 사무 이동화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텔레메틱스와 인지교통정보(ITS)를 수용하여, 수프라 구조로 전환시켜야 한다. 최근 인기를 끌만한 정부의 조치로 ‘위성 수능 강좌’가 있다. 수프라 산업화 개념을 잘 반영한 사례이나 인프라와 수프라를 정부가 동시에 주도함으로서 많은 민간기업들에 치명타를 입히고, 수프라 산업화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부작용이 예상된다.
따라서, 교육 내용물(콘텐츠)을 고가로 수매해 주는 장기적 수프라 정책을 마련한다면, 단순 고액과외에서 수프라 산업쪽으로 방향을 틀게 될 것이다. 이 처럼 경제성장을 달성하면서 우리의 고질적 사회문제-부동산 투기, 교통지옥, 고액과외. 청소년 실업 등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바로 수프라 산업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마음속에 새겨진 인프라의 관성 때문에 방향 전환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오늘 맞은 정보통신의 날이 수프라 산업을 일으키는 전환점으로 삼았으면 한다.
진용옥 (경희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 교수) chin3p@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