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방식의 휴대이동방송수신 기술인 DVB-H가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다는 KBS의 입장 정리는 지상파 디지털TV(DTV) 전송방식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결정적 변수가 됐다.
국가기간방송사이자 지상파DTV 전송방식 논란의 핵심인 KBS의 이 같은 의견은 정보통신부·방송위원회·KBS·언론노조로 구성된 DTV필드테스트추진위원회의 향후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DVB-H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한 언론노조와 MBC의 입지에 적잖은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됐다.
◇KBS의 DVB-H 조사내용=KBS 관계자들은 이달 초 비밀리에 노키아 기술연구소를 방문했다. 출장보고서에 따르면 DVB-H는 방송보다는 통신 개념이 강한 시스템이다. 또 DVB-H의 장점들은 유럽의 지상파디지털TV 전송방식 ‘DVB-T’를 전제로 한 것으로 우리나라가 미국방식인 ATSC를 유지하면서 DVB-H를 도입하는 게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평가했다.
KBS는 소프트웨어에 기반한 DVB-H의 시스템이 프로그램 오류와 바이러스 감염 등의 우려가 있어 방송시스템 안정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분석했다. 또 소프트웨어 플레이어에 대한 권리 획득 및 저작권료 지급 등의 부담이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정보의 동시성에 대한 가치비중이 방송의 개념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DTV 전송방식 논란 결정 변수=DVB-H에 대한 자세한 현지 실태보고서가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DVB-H에 대한 개념은 미래 방송시장의 꽃인 휴대이동수신을 위한 최첨단 기술이라는 꿈에 부푼 판단들뿐이었다. DVB-H에 대한 이러한 기대가 지상파DTV 전송방식 논란의 핵심쟁점으로 떠올라 논란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러나 KBS의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할 때 산업적·정책적으로 DVB-H가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명확히 내렸다. 방송계에서 KBS의 지명도와 영향력으로 미루어 KBS의 이 같은 입장이 전송방식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전망이다.
KBS 한 관계자는 “이젠 전송방식 논란을 종식하고 지상파TV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할 때”라며 “이동수신 역시 우리나라가 DVB-H보다 DMB를 성공적으로 우선 실시해 세계 시장의 주목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키아는 왜 DVB-H를 적극 개발중인가=노키아는 휴대폰 시장의 최강(점유율 34.8%)이지만 3·5위에 올라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다. 올해 1분기 실적만 보더라도 삼성전자의 맹추격은 노키아의 아성을 위협할 정도다. 파이낸셜타임스와 블룸버그통신도 1분기 실적을 토대로 “노키아가 이제 더는 최고의 브랜드가 아니다” “노키아는 삼성전자로 인해 큰 어려움에 처했다”고 각각 보도했다.
노키아로선 중장기적으로 1위 자리를 고수하기 위한 급처방이 필요하다. 노키아는 미래 휴대단말기 시장이 이동방송으로 기운다는 판단아래 DVB-T 기반의 DVB-H 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정통부 한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 업체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최대 경쟁 상대인 외국업체가 주도하는 기술을 도입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방송사도 이제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KBS의 DVB-H에 대한 유럽 현지 실태보고서로 지상파 DTV 전송방식 논란의 조기 종식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관심은 벌써부터 지상파DTV 전환과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에 쏠리고 있다.
멀쩡히 DTV서비스를 하다가 느닷없는 전송방식 논란으로 번진 것도 방송사의 막대한 DTV전환 비용에 대한 부담과 기존 방송기술인의 일자리 상실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방송사가 적극적으로 DTV 전환에 투자하고 엔지니어들도 새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책 마련에 절실한 상황이다.
우선 지상파DTV 전환에 필요한 재원을 정부가 지원해 주고 시청자에게 직접 전달되는 고선명(HD)TV 프로그램 제작 활성화를 위한 실질적인 정책 마련이 요구된다. 또 세계 첫 상용화가 예상되는 이동수신 서비스인 DMB 도입을 서둘러 방송사들의 이동수신 시청자 확보와 단말기 제조업체들의 DMB 단말기 개발 및 수출을 위한 활로를 열어줘야 한다는 요구도 거세다.
KBS와 SBS 관계자들도 방송·통신 융합시대에서 거대 통신사업자들에 비해 열세가 예상되는 방송사들의 국내 경쟁력 확보를 위해 지상파DMB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밝힐 정도다.
아울러 방송사의 미래 방송시장에 대한 중장기 내부 로드맵도 절실하다. 디지털방송 전환으로 인한 방송기술인들의 인력 배치, 재교육 프로그램, 신규 서비스 도입을 통한 고용창출 등 중장기 계획을 마련해 디지털화에 따른 후유증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방송·통신 융합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방안을 수립, 방송사의 경쟁력을 전반적으로 높이는 것도 급선무다.
KBS 관계자는 “DMB 도입을 통해 풍부한 자체 인력을 더욱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디지털화에 대한 직원들의 위기의식을 불식시킬 수 있는 방법도 충분히 찾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유병수기자 bjorn@etnews.co.kr>
프로그램 오류·바이러스 감염 등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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