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강국을 건설하자](6)영국

“영국에서는 국가의 과학적 기반을 바꾸는 문화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 마이크로시스템과 나노기술이 핵심으로 작용할 것이며 영국 정부는 이들 기술을 개발할 결심을 했다.”

2001년 여름. 세이스베리 영국 과학기술처 장관은 이렇게 단언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나노기술 개발에 관한 연구 과제를 지원하는 등 나노 기술 개발에 앞선 출발을 보였던 영국이 90년대 들어 미국 등에게 나노 기술 주도권을 빼앗기면서 만회노력에 나섰다.

이때부터 영국은 더욱 강력한 나노 기술개발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나노기술 육성의 종주국=과학기술 선진국인 영국은 미국·독일·일본 보다 먼저 1986년 통상산업부(DTI)가 국가나노기술전략(NION·National Initiative on Nanotechnology)을 발표했다. 이 후 1988년에는 4년에 걸쳐 링크 나노기술 프로그램(LNP·LINK Nanotechnology Programme)을 시작했다. 그러나 1996년 링크 프로젝트가 종료되고 난 이후 나노과학과 관련한 산발적인 연구 지원은 계속됐지만 정부차원의 지원정책이 잇따르지 않았다.기술 개발도 정체기로 빠져들었다. 특히 미국이 2000년 1월 국가나노기술개발전략(NNI)를 발표하면서 영국은 국제적인 나노 기술 개발 경쟁에서 뒤처지는 듯한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부흥을 향한 노력=1999년 영국은 공학자연과학연구회(EPSRC·Engineering and Physical Sciences Research Council)를 통해 ‘나노기술의 날(Nanotechnology Theme Day)‘를 개최하는 등 전 영국의 연구계를 결집하며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나노기술 개발과 영국 사회의 성장 관계를 다각적으로 분석하는 ‘나노기술 애플리케이션의 산업의 기회’라는 책자를 발행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영국에서 배울 점은 단순히 기술만이 아니라 나노기술개발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공유하는 작업을 병행했다는 점이다. 2000년 6월 영국 정부는 ‘21세기 과학 혁신을 위한 정책’이라는 백서를 발표했다. 이 백서에서는 나노기술을 새로운 제품과 새로운 산업을 창출할 수 있는 중요한 혁신 분야로 정의했다. 또 나노기술의 진보에 의해 생의학 제품의 연구, 개발, 생산에 집중함으로써 영국 경제의 잠재력이 강화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지원 정책 및 기관=영국은 1997년 초 비영리기관인 나노기술연구소(IoN·Institute of Nanotechnology)를 설립했다. 나노기술연구소는 2001년에 통상산업부의 지원을 받아 독일과 미국 동부 등 나노 기술 선진국에 2개의 나노기술 조사단을 파견하는 등 실질적인 지원에 나섰다. 이 조사단은 나노과학을 촉진하고 지원하는 관련국의 정부 부처와 나노기술 기업·대학·연구센터 현황을 파악하는 활동을 벌였다.

이와 함께 2001년 6월 영국정부는 옥스퍼드 대학과 캠브리지 대학이 주도하는 2개의 컨소시엄에 학제간 공동연구협력단(IRCs·Interdisciplinary Research Collaborations)을 발족시켰다. 같은 해 영국정부는 나노기술을 위한 대학기술 혁신센터(UIC·University Innovation Centre in Nanotechnology)를 뉴캐슬 대학에 설립했다. 또 영국 북동부의 5개 대학을 중심으로 나노기술 연구개발 및 상업화를 촉진하는 클러스터 구축 전략을 마련했다.

◇제2의 나노기술 육성 정책=세이스베리 과학기술처 장관은 2003년 7월 향후 6년간 9000만 파운드(1억5800만 달러)를 나노기술의 산업화 지원에 투자하겠다고 밝히는 범정부적인 나노기술 육성책을 마련했다. 영국 정부는 이를 통해 5000만 파운드는 산학 공동연구를 지원하는데 투자하고 4000만 파운드는 영국 마이크로 나노기술 네트워크(UK Micro Nano Technology Network)를 구축키로 했다. 여기에는 산업계의 최신 나노기술 연구와 시설자원 이용을 지원토록 함으로써 나노기술 시장개발을 이끌어 내려는 영국정부의 노력이 숨어있다.

마이크로 나노기술 네트워크는 관련 분야의 기업활동을 지원해 미래 시장 개척과 수요를 대비하자는 계획. 영국은 이를 통해 정부차원에서 산업계가 나노기술개발에 전면적으로 뛰어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면서 나노기술의 산업화기반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정부투자의 증대와 함께 지원으로 산업계와 지역의 투자금액도 2억 파운드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영국 정부는 투자효과 극대화를 유인하기 위해 프로젝트 선정 때부터 산업계와 지역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팀에게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차세대 혁신기술 개발계획인 국가기술전략 ‘국가기술전략(National Technology Strategy)’ 보고서를 발표한 패트리셔 휴위트 영국 무역·산업 장관은 “혁신이야말로 영국경제에 높은 생산성을 가져다주는 핵심 요소”라며 “현재의 제조분야 경쟁력을 유지하고 새로운 하이테크 제조산업을 부축하기 위해서는 나노 기술과 같은 혁신기술 개발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英 나노기술 중심지로 북동잉글랜드 급부상

영국의 나노기술은 북동잉글랜드를 중심으로 하는 나노 클러스터와 옥스퍼드·캠브리지 컨소시엄의 나노기술개발 학제간 연구협력이 주축이다.

영국 북동잉글랜드 지방은 나노 기술의 연구 및 제품 개발, 소비재로부터 방위산업에 이르기까지 나노산업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영국 정부는 2500만 파운드를 투자해 이 지역에 나노기술 연구개발 및 상업화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있다. 노스움브리아·선더랜드·티사이드·더럼·뉴캐슬 등 5개 대학을 중심으로 표면공학(노스움브리아), 화학 및 생물 센서 (선더랜드와 티사이드), 분자전자공학(더럼), 생의학 나노기술(뉴캐슬)이 집중 연구되고 있다.

영국 정부 기관과 사기업 부분 컨설턴트들이 최근 독자적으로 실시한 이 지방의 연구 능력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생물의학과 나노기술, 나노 바이오테크놀러지, 공정강화 분야에서는 뉴카슬 대학(University of Newcastle)이 국제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됐다. 또 고분자 과학과 분자 일렉트로닉스, 포토닉스 분야에서는 더럼 대학(University of Durham)이 꼽혔다. 선더랜드 대학(University of Sunderland)은 속도가 빠르고 감도가 높은 약물 송출 및 모니터 장치 개발을 통해 바이오 센서의 용도를 넓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영국 정부의 나노 기술 육성정책의 하나로 4000만 파운드 규모의 나노기술혁신센터를 유치한 뉴캐슬 대학은 명실상부한 나노기술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이 대학은 무기 화학과 하이브리드 생물 무기화학, 마이크로와 나노 소자에 대한 팹 제작 등을 제공한다. 특히 뉴캐슬 대학에서 창업해 성공한 23개 벤처기업들과 대학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산학 협력을 이루고 있다.

뉴캐슬 대학을 통해 창업된 올라프로테인테크놀로지스(OPT)는 나노 기술과 생명공학을 접목한 나노바이오기술을 통해 제약과 진단업계에 필요한 기능성 단백질 인터페이스 제조 기술을 개발 중이다.

또 마이크로엔지니어링 전문 기업 에피젬(Epigem)은 각종 진단과 검출을 쉽게 하는 랩온어칩(Lab on a chip)을 개발하는 등 북동 잉글랜드 지역은 영국 나노 기술의 메카로 자리 잡고 있다.

세계적 명문 대학인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대학 역시 영국 나노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이 주도하고 있는 학제간 연구사업(IRC)은 글래스고우대학, 요크대학 및 국립의료연구원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협력단은 나노-바이오 소자의 구조와 기능을 이해하고 과학과 공학을 발전시키는데 자연 그대로의 방법을 이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글래스고우 그룹은 생체 단 분자를 조작하고 측정할 수 있는 고감도 랩온어칩 및 바이오 센서 연구를 수행 중이다.

캠브리지 대학 중심의 협력단은 나노 물리학에 초점을 맞췄다. 런던대와 브리스톨 대학이 공동으로 참여하며 분자구조의 조립과 조직 등 나노구조체와 나노소자의 물성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