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휴대폰업체인 노키아의 파격적인 가격 인하로 휴대폰업계의 가격 경쟁이 불가피하게 됐다. 노키아의 이번 조치는 최근 유럽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삼성전자·소니에릭슨 등 아시아 업체를 겨냥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특히 올들어 LG전자 등 국내 업체가 노키아의 안방인 유럽시장 공략에 사활을 걸고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와중에 터져 나온 악재여서 국내 휴대폰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노키아 가격 인하 ‘반격 카드’=노키아는 지난 1분기에 판매량은 19% 증가한 4520만대를 기록하고도, 매출액은 오히려 2% 줄어든 66억유로에 머물렀다. 대당 평균판매가격도 140달러대로 추락했다.
노키아를 더욱 위축시킨 것은 삼성전자의 약진이었다. 삼성전자는 코드분할다중접속(CDMA)방식을 기반으로 유럽형이동전화(GSM)로 영역을 넓힌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는 급기야 처음으로 유럽 시장 점유율 두자릿수를 기록했다. 소니에릭슨 역시 노키아가 차세대 휴대폰으로 공을 들이고 있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노키아를 압박하고 있다. 중국의 TCL은 알카텔의 휴대폰사업부문을 인수키로 했다.
노키아가 유럽에서 아시아업체에 완전히 포위된 형국이다.
노키아는 곧바로 반격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가격인하 조치를 내린 것이다. 감소하고 있는 시장점유율을 만회하고 뒤를 쫓는 아시아업체들의 발을 묶기 위한 방법이다. 모토로라가 중가폰 시장에서 약진하고 있는 것도 노키아의 가격 정책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추산도 가능하다. 더욱이 삼성전자·소니에릭슨과 달리 중간 가격대에서 인기를 끌 만한 제품이 없다.
◇가격인하 ‘양날의 칼’=노키아의 시장점유율 만회전략으로 가격인하가 일단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노키아에 대항할 만한 적수가 보이지 않는데다 가격으로 맞서기에는 시장의 35%를 점유하고 있는 노키아의 파워가 버겁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키아의 수익 감소가 불가피하다. 노키아는 세계 최고의 수익을 내는 정보기술(IT)업체 중 하나다. 연간 1억대가 넘는 휴대폰을 팔고도 25%의 수익을 냈다. 하지만 이번 가격 인하로 5% 안팎의 수익 감소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또 노키아에 맞서 모토로라 등 메이저업체들이 경쟁적으로 가격을 내릴 경우 노키아의 이익은 더 감소할 수 있다.
◇국내 업체 피해 ‘불가피’=국내 업체들도 노키아의 사정권을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유럽에 진출했거나 모색하는 업체들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노키아는 저가 시장에 주력하는 반면 삼성전자는 하이엔드 시장에 집중하기 때문에 영향이 적을 것”이라면서도 “가격 경쟁은 기업들의 수익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LG전자·팬택 등 올해 유럽시장 공략에 심혈을 기울였던 업체들은 유럽시장 전략을 대폭 수정해야 할지도 모를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노키아와 정면 대결은 어렵다”며 “철저하게 통신사업자 시장과 하이엔드 시장에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저가 위주의 중견·중소업체들은 노키아의 가격 인하로 가격 경쟁력을 상실할까 우려하고 있다. 중견업체 관계자는 “외국 업체로부터 주문을 받아 OEM이나 ODM으로 제품을 공급하는 상황에서 노키아가 가격 인하에 나섬에 따라 주문업체의 공급가 인하 조치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익종기자 ijkim@etnews.co.kr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