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선택/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지음/김명섭 옮김/황금가지 펴냄
이라크 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국이 딜레마에 빠졌다. 동맹국들의 불만, 지구적 무관심, 미국을 겨냥한 테러 위협 등이 오늘날 ‘제국’이라 불리는 미국이 처한 딜레마다.
전 국가안보위원회 의장이자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특별보좌관으로 활약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미국이 직면한 딜레마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올바른 선택(choice)을 내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제국으로서 세계를 지배할 것인지, 아니면 세계와 공존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국의 선택’은 세계적 정치학자인 저자가 일흔을 훌쩍 넘은 시점에 쓴 노작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 부시 행정부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네오콘을 포함한 자신의 후배들, 그리고 미국인들을 향해 제국으로서의 미국이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반문한다. 그리고 미국인들에게 자신들이 하고 있는 선택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고 그 선택이 몰고 올 파장에 주목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브레진스키에게 있어서 미국은 ‘제국’이다. ‘미 제국’이란 표현은 북한에선 ‘일본 제국’이라는 용어 만큼이나 익숙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칫 멸문의 화를 당할 수도 있는 금기의 용어였다. 그러나 폴란드 출생으로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정착해 카터 행정부의 세계 전략을 호령했던 브레진스키는 ‘미 제국(American Empire)’이라는 호칭을 일관되게 사용해 오고 있다.
저자는 특히 미국의 새로운 외교 전략 지침을 제시해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은 화제작 ‘거대한 체스판’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이 단순한 제국일 뿐 아니라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제국으로서 과거 어떤 제국도 누려본 적이 없는 ‘세계 일등적 지위’를 구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제국의 선택’은 제국이 직면한 5개의 딜레마를 1, 2부로 나눠 다루면서 예외적으로 미 행정부의 국제 전략을 혹독하게 비판하고 그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 국가불안의 딜레마다. 저자는 자신의 생애를 관통했던 핵심어였다고 해도 좋을 ‘국가 안보’라는 키워드를 뒤집는 ‘국가 불안’의 상황에 미국이 직면해 있다고 본다.
둘째는 새로운 지구적 무질서의 딜레마다. 저자는 제국을 위태롭게 하는 약자들의 힘에 주목한다. 불과 19명의 사람들이 빈약한 자금을 가지고 벌인 9.11 사건이 제국을 어떠한 공황상태로 몰고갔는 지를 예를 들면서 거대한 제국이 직면한 지구적 무질서의 딜레마를 지적한다.
셋째 동맹 관리의 딜레마다. 저자는 “제국이 직면하고 있는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주요한 해법은 동맹에서 찾을 수 있다”며 ‘전 지구적 중심’으로서의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연대를 강조한다.
넷째 세계화에 대한 딜레마다. 저자는 ‘세계화’를 전 지구적 헤게모니가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독트린으로 파악한다. 저자는 특히 ‘국경 없는 세계와 국경 있는 인간’ 사이의 딜레마도 날카롭게 지적한다.
마지막 딜레마는 헤게모니적 민주주의에 대한 것. 저자는 미국의 문화적 매력이 지니는 엄청난 힘에 주목하면서 제국이 직면하고 있는 딜레마는 바로 미국이 전파한 문화혁명에 의해 전통적 안정이 파괴되고 있으며, 그것이 때로는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고, 전 지구적 무질서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책을 통해 미국이라는 제국이 두 개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지적한다. 브레진스키의 이러한 주장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오는 11월의 대통령 선거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즉 강경 일변도의 부시 행정부와 워싱턴의 네오콘 세력을 선택해 ‘지배하는 미국’이 되는 길과 그들을 대신할 새로운 노선을 선택해 ‘리더로서 공존하는 미국’이 되는 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오로지 미국민들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김종윤기자 jy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