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쿼터스 혁명은 계속된다](16)유통물류 RFID시범사업

부평에 위치한 동서식품 내 물류창고는 아침부터 부산하다. 커피를 담은 상자 40개를 팔레트(박스 단위의 물품을 운반하는 선반)에 올려놓는 작업이 한창이다. 상품 박스에는 예전과 똑같이 유통바코드가 찍혀있고, 팔레트에는 유통 혁명의 숨은 킬러인 전자태그(RFID)가 내장돼 있다. 한 직원이 박스의 유통바코드와 팔레트의 RFID를 휴대용 리더기로 읽어낸다. 이로써 ‘A 팔레트에는 커피 40박스 올라갔다’는 정보가 최초 생성된다.

트럭이 팔레트를 실기 위해 창고 문 앞에서 대기 중이다. 그러나 그 전에 한 단계를 더 거친다. 팔레트를 문 앞에 마련된 게이트웨이(리더기)에 통과시키는 것. 이때 리더기에 부착된 안테나는 ‘커피 40박스가 실린 A팔레트가 나간다’는 정보를 읽어내 동서식품의 PML서버에 저장시킨다.

목천에 있는 삼성테스코의 물류센터에 도착한 화물 팔레트는 물류센터 창고에 들어가면서 또 한번 게이트웨이를 지나가고 이때 RFID의 정보(EPC코드)가 재확인된다. 물류센터의 SAVANT서버는 ‘커피 40박스가 들어왔다’는 자체 리더기의 정보를 듣고 ‘그럼 이 팔레트가 어디서 왔는지’ ONS서버에 물어본다. ONS서버는 동서식품 PML서버라고 가르쳐주고 SAVANT는 인터넷을 통해 그쪽으로 달려가 정보를 받아 자기 쪽 PML서버에 저장시킨다.

이번엔 할인마트인 부천상동점으로 이동할 차례다. 출고 때와 마찬가지 과정을 거치며 정보를 취합한다. 부천 상동점에 도착한 팔레트 역시 똑같은 순서를 통해 자신의 위치 정보를 상동점내 PML서버에 보낸다. ‘A팔레트가 *월*일 *시 부평 동서식품 물류창고를 커피 40박스를 싣고 출발해 목천 물류센터를 거쳐 부천상동점에 *월*일 *시에 도착했다’는 정보가 상동점내 PML서버에 저장되는 것이다.

이때, 동서식품의 한 직원이 커피 40박스가 어디까지 유통됐는지 확인하고 싶어 자신의 단말기에서 해당 팔레트의 EPC코드를 입력한다. 동서식품의 SAVANT는 인터넷망을 통해 부천 상동점의 PML서버까지 찾아와 정보를 요청하고 제조업체 직원은 자사 제품이 유통되고 있는 상황을 자사 단말기에서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부천 상동점이 팔레트와 박스를 해체하고 제품을 상동점내 보관창고에서 꺼내는 순간, ‘커피 40박스가 *월*일*시 진열대로 나간다’는 핵심 정보가 제조업체와 유통업체로 통보된다. 또 상동점의 SAVANT는 해체 정보를 팔레트 대여업체에도 통보한다. 팔레트 대여 업체는 한 바퀴를 돈 팔레트를 다시 동서식품 물류센터로 보낸다. 초기 단계의 유비쿼터스 유통이 완성된 셈이다.

‘유비쿼터스다운, 너무나 유비쿼터스다운’ 환경을 위한 상용테스트가 오는 17일부터 부천에 위치한 삼성테스코 부천 상동점에서 시작된다. 삼성테스코를 비롯한 이씨오, 유한킴벌리, 동서식품, 한국팔렛트풀 등 5개 업체가 ‘유통물류산업 RFID(Redio Frequency Identification)시범사업’의 상용 테스트를 실시한다.

상용테스트의 핵심은 물류의 흐름 속에서 RFID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여부를 실증해내는 것. 따라서 RFID칩이 내장된 팔레트나 개별 상품 박스가 해독기(리더기)에서 읽히는 ‘인식률’이 초점이다. 또 이번 RFID물류 시범 사업에 쓰인 하드웨어, 소프트웨어가 서로 제대로 맞물려 가동될지도 관심사항이다. RFID를 비롯한 서번트(SAVANT), ONS서버, PML서버 등이 올바르게 정보를 교환해야 실제 유비쿼터스 비즈니스에 접목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테스코의 안희만 이사는 “다음달 말까지 진행되는 이번 상용테스트는 1단계 수준으로 팔레트와 박스 단위에 RFID태크를 내장시켰다”며 “하반기에는 2단계로 개별 상품 하나하나에 RFID를 내장시켜 유통시키는 도전을 시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삼성테스코컨소시엄측은 이르면 하반기에 유비쿼터스 유통의 꽃인 ‘셀프 체크 아웃’ 상용테스트를 추진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국내 RFID업체인 이씨오의 심우섭 이사도 “이번 테스트는 (국내 RFID 주파수 대역인) 910∼914MHz에 맞춘 리더기를 사용해 이뤄지고 있는 만큼, 국내 현실에 맞췄다는 의의가 있다”며 “또한 (오토ID센터가 EPC글로벌로 바뀐 후 생긴) 전자제품코드(EPC)플렛폼에 맞춘 상용테스트로서는 세계 첫 시도다”라고 강조했다.

◆RFID 유통 불량품 즉각 회수 이익

 예전에는 어느 생산라인에서 찍은 물건이 불량품으로 확인돼도 이를 곧바로 회수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RFID유통은 불량품이 지금 어느 물류센터나 할인점 내 보관창고에 있는지 바로 확인 가능하다. 불량품을 확인하는 순간 회수도 즉각 가능하다.

 광우병을 예로 들면, 미국산 소고기인지 호주산인지를 가려낼 수 있는 유통 정보를 즉각 확보해 만약 정부가 미국산을 회수하겠다면 최소한 창고에 있는 소고기는 발빠르게 회수해낼 수 있다. 또한 제주도에서 A급으로 판정받은 바나나가 서울에서 C급으로 재분류돼 판매됐다면 누구의 책임인지 가려낼 수 있다. 유통 정보가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에 유통 단계의 누구가 A급 바나나를 오랫동안 재고로 갖고 있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만약 백화점 창고에서 무슨 이유에선가 판매진열대로 못나가고 며칠이나 묵혀있었다면 ‘바나나 C급 추락’의 책임은 백화점인 셈이다. 이는 또한 유효기간 관리가 더욱 수월해질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에 물류창고 내 검수검품 풍경도 바뀌게 된다. 아직까지는 팔레트 위에 여러 상품을 섞어 적재하면 물건을 받는 측에서 박스를 팔레트에서 내려서 일일이 유통바코드를 확인해야했다. 그러나 이제는 팔레트 정보만 받아들인다면 혼합적재했더라도 그저 게이트웨이(리더기)를 지나치기만 하면 된다.

 물품 계산대의 풍경도 바뀐다. 지금은 슈퍼나 할인매장에서 물건을 산 후에 계산대에서 이를 점원이 바코드를 찍는 작업을 해야한다. 그러나 RFID를 활용한 유비쿼터스 슈퍼에서는 고객이 물건을 가지고 게이트웨이를 지나가기만 하면, 개별 상품에 부착된 RFID와 게이트웨이의 리더기, 그리고 고객의 신용카드가 네트워킹해 자동 계산한다.

◆RFID산업 육성 시급하다

-삼성테스코 안희만 이사

 지난 2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최된 국제 바코드 표준기관회의의 핵심 의제는 현재 미국과 유럽으로 나누어져 있는 바코드 표준기관의 통합과 국가·지역·산업별로 산재되어 있는 e마켓플레이스, e카탈로그 등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정작, 82개 국가에서 온 320여 명의 참석자들이 물밑에서 뛴 분야는 전자제품코드(EPC), 즉 RFID에 대한 정보였다.

지난 4월 북경에서 열린 ECR아시아 이사회에서도 필자는 우리나라 산업자원부가 지원하는 RFID시범사업에 대한 현황을 소개했다. 이후 중국, 일본, 호주 등에서 자료 요청, 시범사업 현장방문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등 선진국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국가들이 RFID라는 화두를 놓고 주도권 경쟁에 나섰음을 실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는 조만간 실체를 갖춰 다가올 RFID를 기초로 한 유비쿼터스 환경이라는 혁명적인 변화에 대해 우리의 준비 노력이 부족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산업자원부가 지원해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들과 비교해 보면 시범의 범위, 기술 수준, 산업체의 태도 면에서 우리가 3년 정도 늦었다.

RFID분야는 제조, 물류, 유통 등의 산업 전반에서 궁극적으로 최종 소비자에까지 파급되는 효과가 심대하므로 국가 차원에서 보다 집중적인 육성이 필요하다. 부가가치가 높은 새 산업을 창조하고 미지의 비즈니스 모델들을 제시해야하는 산업을 민간에만 맡겨 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은 ‘승자가 모든 것을 취하는(winner takes all)’ 세상이다. RFID분야에서 선진국 중심으로 표준화가 이뤄지고 시스템이나 관련 시설, 장비, 태그 등도 100% 수입에 의존하는 현상황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선진국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산자부, 정통부, 과기부의 RFID를 위한 통합된 기구설치와 로드맵 제시, 과감한 투자 및 지원, 전문인력 양성, 관련 산업 발굴 및 육성이 시급하다.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는 종의 특징은 강한 것도, 영리한 것도 아닌 변화에 적절히 순응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혁명적인 변화를 앞두고, 우리는 지금 당장 무엇인가를 실행하고 도전해야 할 시점이다. agapinbis@samsung.tesco.com

◆용어설명

 △Savant 서버 : RFID를 부착한 상품이나 박스, 팔레트가 리더기를 지나갈 때 전자제품코드(EPC) 정보를 취득하는 일종의 미들웨어로 리더기와 연결돼 있다. 또 인터넷을 통해 ONS서버의 데이터베이스로 EPC를 조회해 정보를 처리하는 기능도 갖추고 있다.

△PML(Physical Markup Language) 서버 : Savant가 모아온 정보들, 즉 제품명을 비롯해 현재 상태, 위치 등을 PML 형태로 저장·보관하는 서버다.

△ONS(Object Name Service) 서버 : 인터넷 주소 정보를 제공하는 DNS(Domain Name Service)처럼 ONS는 RFID 상품 정보를 제공한다. 즉, PML서버의 주소를 정의하고 있다가 Savant가 필요로 할 경우 이를 전달해 PML서버의 제품 정보를 찾아낼 수 있게 도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