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희 남편은 31살이고 11개월 된 아기가 있습니다. 남편은 97년도부터 경마에 빠져 잦은 가출과 붙잡혀 들어오기를 반복했습니다. 결국 별거에 들어갔습니다. 별거 1년6개월이 지난 후 ‘앞으로 잘 할테니 한번 만 기회를 달라’고 해 다시 합쳤습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이번에는 컴퓨터게임에 빠져들기시작하더니 사회생활에 적응도 못하고 성격도 난폭해졌습니다. 지난해 8월에는 돈을 들고 집을 나가 고시원에 방을 잡고 컴퓨터게임만 했습니다. 이어 12월 초 또 돈을 들고 나가 PC방과 사우나를 전전하며 잠깐씩 집에 들렀다가 사라집니다. 저희 남편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만 보면 눈물부터 나옵니다. 저희 남편 좀 도와주세요.
#2. 1년 전 고등학교를 자퇴했습니다. 1년간 바깥출입은 한 달에 한 번도 제대로 안 했습니다. 집에서 N이라는 게임만 했습니다. 세상일에 점점 더 관심이 멀어지고 밖에 나가는 것도 재미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뚱뚱해져서 걸어다니는 것 조차 싫어합니다. 오래 걸으면 허리가 아프고 짜증나고 힘듭니다.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지만 게임 밖으로 나오면 불안하고, 초조하고, 변덕이 심해집니다. 이젠 친구들과도 멀어졌습니다. 중학교 졸업 이후 새로 사귄 친구가 거의 없습니다. 컴퓨터를 켜지 않고 밖에 나가려고 했지만 이내 마음이 바뀌면서 ‘나가봤자 뭘 해’ ‘친구들은 다 학교에 있고… 나가서 할 일도 없고…’ ‘나가면 살 엄청 쪘다는 얘기 듣겠지?’ 이런 생각들이 먼저 들고 합니다. 정말 제 의지론 게임중독을 극복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던 중학교 시절의 제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3. 저는 초2, 초4, 중1의 세 자녀를 둔 엄마입니다.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에 너무 치중하고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의 대화가 컴퓨터 게임 외엔 거의 없고 다른 아이들이 다 하니 강하게 자제시키는 것도 안되고…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입니다. 제가 볼 때 아이들이 게임을 안 할 때도 머리속엔 게임밖에 없는지 집중을 못하고 산만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인지 알려주세요.
위의 세 가지 사례는 정보문화진흥원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에 상담을 의뢰해 온 사례이다. 경중은 있지만 모두 게임으로 인해 정상생활이 불가능한 경우다. 흔히 볼 수 있는 증상도 아니다. 하지만 방심할 경우 자신도 모르게 게임에 빠져들고 만다.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 이수진 박사는 “게임중독 증상을 보이는 사람 대부분이 이전에 중독증상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며 “게임은 접근성이 용이하기 때문에 쉽게 중독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게임중독 치료를 위해 상담하는 사람의 50%가량이 이전에 알콜이나, 도박 등에 중독된 전력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즉 게임 자체의 흡입력에 도취되기도 하지만 이전에 성격이나, 주위환경 등 외부적 요인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게임의 중독성은 다른 인터넷 콘텐츠보다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인 다모임이 10대 회원 11만394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청소년들이 인터넷을 통해 가장 많이 즐기는 서비스로 게임(35.0%)이 1위를 차지했다. 중독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터넷 서비스로도 게임(47.7%)이 가장 많았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이 중고생 250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도 청소년들이 컴퓨터로 하는 일중 게임이 38.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게임중독의 더 큰 원인은 용이한 접근성과 게이머 개개인의 성격, 집안환경, 학교생활, 친구관계 등이 맞물려 쉽게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데 있다.
청소년들의 인터넷 사용목적 1위, 인터넷중독 가능성 1위를 달리고 있는 것이 게임이다. 게임은 청소년 대표문화로 자리하고 있다. 또래와 어울리기 위해서는 공통의 관심사에 무심할 수 없다. 게임의 역기능이 부각되기 전 청소년의 일탈행위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것이 약물중독이다. 게임이 청소년문화로 자리하면서 본드흡입, 마약중독과 같은 극단적인 탈선이 상당부분 줄어든 것은 부인하지 못할 일이다.
다만 게임에 비견할 만한 청소년 놀이문화가 없다는 것이 게임중독을 더욱 큰 사회문제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사회문제의 근원은 가정과 학교에서부터 발단한다. 게임을 청소년의 문화로 인정한다면 건전하고 유익한 방향으로 이끌 대안이 필요하다. 가정과 학교에서의 노력조차 없이 무관심으로 일관하면 결국 게임은 중독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 밖에 남지 않는다.
손연기 정보문화진흥원장은 “바른 정보사회의 척도는 가정과 학교, 사회가 청소년들과 정보소외 계층에 애정 어린 관심을 보이는 데서 출발한다”며 “중독이 지식정보사회의 장애물로 다가오기 전에 이를 해결하는 예방책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기획팀>
<특별기획팀 팀장 이경우 기자 kwlee@etnews.co.kr·이진호기자 jholee·류현정 기자 dreamshot>
◆[인터뷰]이수진 한국정보문화진흥원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 책임연구원
“게임중독이라는 말 자체가 게임에 몰입해 있는 게이머들에겐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주관적인 눈으로 ‘중독’을 규정한다면 편견에 불과합니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 이수진 책임연구원은 중독에 대한 오해부터 푸는 것이 게임중독자 양산을 막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신세대 문화를 인식하지 못하면서 무조건 컴퓨터에 매달려 있으면 중독이라는 생각은 잘못됐다는 것. 그는 초·중학생의 경우 게임 하나에 6개월을 지속하지 못할 정도로 게임에 대한 충성도가 낮다며 “N세대는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 심리적 욕구를 게임이라는 가상공간 속에서 풀어내는데 익숙한 만큼 먼저 그들의 문화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장 간단한 진단법으로 게임을 끝낸 후 후회가 들면 중독증상이고 게임을 끝낸후 충족감이 들면 몰입으로 볼 수 있다고 그는 밝혔다. 몰입의 경우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중독으로 가기전에 사전예방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게임중독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개인적 성격, 집안환경, 학교생활, 교우관계 등에 다소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라며 예전에 중독을 경험했던 경우가 50% 이상이라고 밝혔다. 게임은 접근성이 용이하기 때문에 알콜이나 약물보다 오히려 더 쉽게 빠져들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지나친 우려는 오히려 더 악영향을 끼치므로 관심은 갖되 지나치게 구속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게임 아이템거래에 대해 그는 “초등학생의 경우 경제 개념이 없으므로 부모가 한도를 정해 이용하게 하는 방법이 최선”이라며 “게임을 통해 경제개념과 소비습관을 기른다면 오히려 교육적 효과를 가져 올 수 도 있다”고 주장했다.
게임중독 상담자의 대부분은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를 가장 큰 요인으로 꼽고 있다며 “공부도 잘하고 싶어하고 생활도 바르게 하고 싶지만 현실에서 충족되지 않아 게임으로 돌파구를 찾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근본적인 원인은 오프라인에서 제공하고 있는 만큼 가정과 학교가 먼저 앞장서 풀어야할 문제라고 그는 지적했다.
이수진 센터장은 또 “게임업체도 스스로 중독의 위험을 인식하고 이를 풀어나갈 방법을 찾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며 “제조물책임법(PL)과 같이 게임업체가 중독을 예방하는데 사회적 기여를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경우기자 kwlee@etnews.co.kr>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한국형 게임중독 자가진단 검사(K-척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