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혈·과당’으로 점철돼 왔던 이동전화 사업자들의 시장경쟁이 올해 번호이동성 시차제가 시행되면서 더욱 깊은 갈등으로 치달았다.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합병인가조건 이행여부가 여론의 도마위에 오른 것이 이 같은 대립의 정점이다. 동일한 시장현상을 놓고 3사 사장들의 시각은 그야말로 천양지차였다. ‘2남(南)1김(金)’은 일종의 논리 전쟁을 치른 셈이다.
◇평행선 입장=SK텔레콤·신세기통신 합병인가조건 가운데 단말기 보조금 지급금지 조항 이중규제 및 ‘심각한 경쟁제한적 상황’ 여부에 대해 KTF 남중수 사장과 LG텔레콤 남용 사장은 “SK텔레콤을 보다 강도 높게 제재해야 한다”며 한 목소리를 냈다. SK텔레콤 김신배 사장은 후발사업자들의 주장이 억지라며 “더는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단말기 보조금 지급금지가 법령(전기통신사업법)상에 중복 규정돼 있긴 하지만, 합병인가조건은 분명 SK텔레콤만을 겨냥한 별도 규제장치이므로 이중 제재가 내려져야 오히려 형평성을 찾는다는 게 두 남사장의 한결같은 지적이었다. 심각한 경쟁제한적 상황여부도 시장쏠림현상이 두드러졌던 지난해 말은 물론 지금 시점도 향후 그럴 만한 소지를 충분히 남겨두고 있다며 명백하다는 시각이었다. 반면 김 사장은 최근 후발사업자들의 경영호전을 근거로 반박논리를 펼쳤다.
◇3사의 처지와 속내=김 사장은 후발사업자들이 야기한 싸움에 휩싸이고 싶지 않다며 인터뷰 내내 정책심의위의 쟁점 사안에 대해서는 극히 말을 아꼈다. 맞불싸움을 벌일 경우 정책당국이나 여론의 따가운 시선은 물론, 심의위의 판단에도 다소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SK텔레콤으로선 약간의 손해는 감수하더라도 이번 기회에 신세기통신 합병인가조건이라는 걸림돌을 조용히 마무리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합병인가조건이 두고 두고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김 사장이 “사업자간 협의를 통해 문제를 풀 용의가 있다”고 한발 물러선 것은 이런 배경이다.
LG텔레콤 남 사장은 이번 싸움에서 사실 잃을 것이 없는 처지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가입자 마지노선 600만 확보가 당면 과제인 만큼 계속 SK텔레콤을 압박함으로써 정책당국이나 SK텔레콤으로부터 최소한의 양보는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KTF 남중수 사장은 다소 애매한 입장이다. 올해 번호이동성 시차제 환경에서 향후 SK텔레콤에 필적할 만한 실적을 내기 위해서는 여전히 정책당국과 경쟁사들의 우호적인 시선이 절실하다. 드러내놓고 진통을 부추기면 후발사업자로서 얻어야 할 혜택도 기대하기 힘든 탓이다.
◇전향적인 타협점은=현재로선 규제기구인 심의위의 강제집행 이전에 획기적인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5일 진대제 정통부 장관과 3사 사장단이 회동을 갖고 ‘클린 마케팅’에 원칙적으로 합의했지만, 속내를 보면 서로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업자 자율 협상의 물꼬를 터야 할 SK텔레콤 입장에서도 약간의 당근을 제시하는 대신 ‘양보’의 명분을 얻을 만한 뚜렷한 방법이 없다. 간간이 거론되는 LG텔레콤에 대한 차별적인 보조금·리베이트 허용 방안도 사업자 담합과 KTF에 대한 역차별 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달 말로 예정된 심의위전까지 3사가 이렇다 할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할 경우 심의위의 심결내용을 놓고 극심한 시장진통이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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