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알파to오메가]브랜드 킬링(Brand Killing)

19세기 초 브랜딩은 시장에서 제품의 실패를 예방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과 같은 의미였다. 대량 생산 시대에 소비자들이 가질 수 있는 품질에 대한 의구심을 불식시키는 역할을 해 준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브랜드의 상징적 가치가 실제 제품의 사용 가치보다 더 커지게 됨에 따라 브랜드의 관리 여부가 제품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브랜드 전략은 네 가지다. 우선 기존의 제품이 속한 카테고리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카테고리로 확장할 것인가라는 두 가지 전략이 있다. 또한 기존의 브랜드를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브랜드를 도입할 것인가라는 선택이 있다. 이 중 기존의 브랜드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카테고리로 시장을 확대하는 것을 브랜드 확장(Brand Extension), 기존의 카테고리에 새로운 브랜드를 도입하는 것을 다브랜드(Multibrands) 전략이라 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우 90년대 중반 이후 가전업계를 중심으로 다브랜드 전략을 선택했다. 시장의 가능성이 보이면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 투자하는 전략이었다. 그 결과 복잡한 브랜드 체계를 갖게 됐으며 브랜드 관리 비용이 수익을 초과하는 부정적인 현상을 초래하게 됐다.

1950년대초 당시 P&G의 CEO였던 닐 맥엘로이는 개별 브랜드 운영 관리 전략을 회사의 기본적인 전략으로 제안했다. 브랜드 하나만 제대로 관리하면 다른 브랜드가 희생되더라도 기업은 성장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로부터 50년 이상이 흐른 지금, 브랜드 관리자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바로 브랜드 제거(Brand Killing)다.

세계적인 생활용품 기업인 유니레버를 살펴보자. 1999년 당시 1600개의 브랜드 중 400개의 브랜드가 전체 수익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유니레버는 브랜드파워와 성장가능성, 수익성을 고려해 브랜드 합리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 결과 2004년에는 400개의 핵심 브랜드에 마케팅 활동 및 비용을 집중 투자해 매출 성장률 5∼6%, 수익률 16%대로 끌어올리는 계획을 성공적으로 진행시키고 있다.

다시 한국의 가전 시장에 눈을 돌려보자. 2002년 하반기 삼성전자가 통합브랜드 ‘Hauzen’을 출시하면서 새로운 브랜드 관리 전략으로의 전환 움직임을 보였다. 브랜드 성과를 지속적으로 봐야겠지만 지금까지 통합브랜드 ‘Hauzen’은 김치냉장고, 드럼식 세탁기, 에어컨 등 가전시장을 주도하는 제품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기업 내부적으로도 마케팅 자원의 효율적 관리, 수익성 제고, 가전 시장에서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 창출 등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대의 기업은 변화와 변혁의 시기를 맞고 있다. 이 변화에 대응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며 제너럴 모터스, 시어즈 등 유수의 기업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의 진단이다. 이제는 브랜드 포트폴리오의 합리성에 대해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항상 늦는다는 것은 마케팅의 변함없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김덕영 휘닉스컴 전무 kdy56@pc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