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 위치한 100명 규모의 A업체는 멈춰버린 ERP시스템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1년전 도입한 이 시스템에 대해 구축업체로부터 사후관리에 대한 지원을 제대로 받지못해 구동한 지 1년이 채 안돼 구동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참다못한 이 업체 사장은 현재 다른 솔루션 도입을 새로 검토하는 한편 기존 구축업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고려하고 있다. 또 다른 B업체도 업그레이드와 시스템변경 등에 따른 관리를 받지 못해 역시 구축업체의 외면으로 수천만원을 들여 구축한 ERP시스템을 그냥 방치해놓고 있다.
그동안 신규 사이트 구축에만 줄기차게 매달려 온 국내 ERP시장이 사후관리라는 새로운 문제에 봉착했다. 경기악화로 ERP업체들의 부도와 규모축소에 따라 사후관리가 소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후관리에 대해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던 도입업체들이 사후관리 부실로 인한 시스템상의 손실에 대해 법적 대응까지 고려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ERP시장에 위협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경영난에 허덕이는 국내 ERP업체=정부의 중기정보화 사업에 힘입어 그동안 우후죽순 생겨난 ERP업체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제품 공급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외국업체들이 가격의 거품을 빼고 국산업체들의 주 시장이었던 중소기업 공략에 적극 나서고 경기 불황으로 중소기업들이 IT투자를 줄이자 국내업체들의 경영난은 심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KAT시스템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 올해 초에는 ERP 중견업체인 지앤텍이 경영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사실상 사업을 접었다. 외산 ERP 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며 의욕을 보이던 삼성SDS도 지난해 ERP 사업부문을 절반 규모로 축소했다.
◇사후관리 직격탄=공급업체의 어려움은 곧바로 도입업체의 피해로 이어진다. 사후관리는 ERP시스템을 운용하는데 필수적인 작업으로 업그레이드·결함보수·법규개정에 따른 양식지원·DB튜닝·교육 등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또 공급업체의 솔루션 소스와 연관돼 타 업체가 사후관리를 하기는 쉬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공급업체가 사업을 접거나 축소하면 이는 사후관리인력의 감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후관리가 부실하면 도입업체는 결국 시스템을 운용하지 못하고 다른 시스템을 찾게 된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KAT시스템이 솔루션을 공급한 업체 수는 지금까지 5000곳이다. 이 가운데 유지보수 계약을 체결한 곳은 1400여 곳이다. 현재 KAT시스템은 전체 38명의 인원 가운데 20여명의 유지보수 전담인력을 가동하고 있다. 20여명의 인원이 1400여개 업체를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2월이후 신규영업을 중단한 지앤텍의 시스템을 도입한 업체들도 고민하기는 마찬가지다.
장수만 비디에스인포컴 이사는 “업체와 시스템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사후관리를 위해 엔지니어 1명이 10개 업체를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이보다 업체수가 많아지면 그만큼 사후관리가 소홀해진다”고 말했다.
◇사후관리는 계속돼야 한다=지앤텍은 공급업체에 대한 사후관리만을 전담하는 회사를 별도로 설립했다. 이를 통해 기존 고객에 대한 유지보수만이라도 지속하겠다는 의지다.
KAT시스템도 지난해만 80개 가까이를 수주했던 신규 정부지원사업을 올해는 7개로 대폭 줄였다. 신규프로젝트 수주에 투입되는 컨설턴트를 모두 사후관리분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김연호 QAD코리아 사장은 “외국에는 이 같은 사후관리 부식의 책임을 묻는 거액의 소송이 많다”며 “국내에서도 이제는 ERP 사후관리에 대해 많은 신경을 써야할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