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이판정 넷피아 사장(3)

국가 경제에 충격을 주었던 98년 외환위기 당시 넷피아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했다. 기술개발에 성공했으나 기술보호를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특허 출원은 빚더미에 눌려 매일매일 압박을 받던 그 시절에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특허출원은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될 사안이기에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돈을 특허사무소에 줄 수 없다면 기술이라도 주자는 결심으로 특허 출원비 대신 특허사무소의 인터넷시스템 구축지원을 제안했고 다행이 그것이 받아 들여졌다.

최초의 특허출원은 이렇게 끝냈으나 추가 특허기술은 더 이상 돈을 마련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개인 가계수표를 발행해 특허사무소에 맡겼다. 또 하나의 가슴 저미는 일은 한글인터넷주소의 핵심 기술에 관한 중요한 특허출원을 위해 출원서를 작성하던 중에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을 고향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아버지의 부음소식이었다. 하지만 특허 출원은 시간과의 싸움이기에 곧바로 고향으로 달려가지 못하고 직원들이 볼까봐 눈물을 삼켜 가며 출원서 정리를 마무리 했다. 저녁 늦게야 고향에 찾아가 아버지의 주검 앞에서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다행히 당시 출원했던 특허는 최종 등록이 되어 특허등록증을 아버지 산소 앞에 놓고 큰절로 사죄하며 꼭 우리 당대에 자국어 인터넷주소 모델을 만들어 세계에 보급해 그때 저지른 불효를 대신 하겠다고 다짐했다. 아버지가 별세하기 전 98년 5월 나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다. 결혼 당시 양가 집안으로부터 받았던 예단비용을 부모님께는 알리지 않고 밀렸던 직원들 급여로 충당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1999년 9월 1일 한글인터넷주소가 상용화 됐다. 원천기술 관련 한글(자국어)인터넷주소의 상용화 의미는 우리의 원천기술로 신산업을 만든 첫번째 사례로 자국어 인터넷주소라는 이름으로 전세계에 새로운 산업을 만든 국가기술적 큰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산에 넷피아가 한글인터넷주소라는 새로운 길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국민들 누구나 편리하게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98년 2월 첫 특허 출원 이후 나와 넷피아는 국내외에 총 28건의 특허를 출원, 그 중 8건의 특허를 등록 받았다. 특허 관련 세계적 벤치마킹 대상 다국적기업인 퀄컴사의 주변 요소 기술에 대한 거미줄 같은 특허전략을 배워 자국어인터넷주소 세계화를 위한 특허법적 세계화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넷피아의 이와 같은 거미줄 특허전략은 향후 넷피아가 20년∼30년 후의 글로벌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튼튼한 주춧돌 역할을 할 것임을 굳게 믿는다.

자국어 인터넷주소 산업은 우리나라가 원천 기술을 가지고 전세계에 새로운 신산업을 만들어 가는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이다. 아픔과 우여곡절이 많았던 특허전략을 꼭 성공시켜 아버지께 진 불효를 조금이나마 갚는 계기를 반드시 마련하고 싶다.

이판정@넷피아·pjlee@net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