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이어 경제계에서도 윤리경영이 화두로 떠올랐다.
국민에게 신뢰받지 못하는 기업은 결국 살아남을 수 없다는 시대적인 요구는 기업들로 하여금 투명·윤리경영을 전례없이 강조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 말 대한상공회의소가 성인 1017명을 대상으로 기업호감도를 조사한 결과 기업호감도지수(CFI)는 38.2점에 불과했다. CFI가 50을 넘으면 기업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을 의미하며 50 미만이면 그 반대다. 비호감 이유로도 정경 유착(30.0%)과 분식회계 등 투명하지 못한 경영(28.7%)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이 같은 결과는 기업의 투명경영 부재는 국민에게 신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참여정부의 기업의 투명경영 확보 노력은 이 같은 상황인식과도 일맥상통한다.
정부는 지난 연말 기업 소유 지배구조 개선과 투명성 강화 방안을 주요 골자로 한 ‘시장 개혁 3개년 로드맵’을 마련했다. 이 로드맵은 △기업집단의 소유지배 구조개선 △출자총액 제한 제도의 합리적 개선 △선진국형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 △투명경영 및 책임 경영의 강화 △일부 기업 집단의 독립 기업화 및 소그룹 분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산업자원부는 윤리·투명경영 노력 강화를 위해 윤리경영지표의 보완 발전 및 정기적인 윤리경영평가 실시키로 했다. 우선 공기업의 윤리경영 정착을 위해 기획예산처와 협의해 공기업 경영평가시 윤리경영수준을 평가항목에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윤상흠 산업자원부 서기관은 “이미 지난해 말 국내 기업에 대한 국민의 낮은 신뢰수치가 조사됐으며 올해는 좀더 객관화된 지표를 만들기 위한 조사작업을 진행중”이라며 “이 조사자료를 바탕으로 공기업에 대한 윤리경영 평가항목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산자부는 지난해 공기업 18개 업체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으며 올해에도 연구용역을 통해 매출액 100대기업으로 윤리경영 실태조사를 확대, 실시하고 있다.
윤 서기관은 “윤리경영을 진단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문제는 객관화된 지표를 만드는 것으로 관점에 따라서는 지표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지속적인 조사작업을 통해 신뢰도가 높은 지표를 만들고 공기업 수장의 인사제도에도 이를 반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도 정부의 이 같은 방침과 글로벌 투명경영 트렌드에 발맞춰 스스로 윤리경영에 의지 실현에 대한 각오를 다지고 있다.
지난달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기업들의 윤리경영 정도를 평가, 우수 기업에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윤리경영인증제’를 도입한다고 밝힌 것은 그 대표적 예다.
전경련은 재계가 윤리경영, 사회공헌, 중소기업협력에 적극 매진키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평가지표 모델도 내놓았다.
전경련이 밝히는 평가원칙은 △윤리헌장 혹은 윤리강령 제정 유무 △윤리경영전담부서의 설치 여부 △임직원들에 대한 정기적 윤리경영 교육여부 △윤리경영 강령에 입각한 실제 상벌 건수 △최고경영자(CEO)의 윤리경영 실천 의지 등이다.
한국무역협회는 최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콘퍼런스룸에서 코엑스·한국무역정보통신(KTNET)·한국 도심공항터미널 등 유관 3사와 함께 ‘무역센터 윤리경영 선포식’을 가졌다. 이날 참석자들은 건전한 기업윤리와 깨끗한 조직문화를 확립하기 위한 ‘무역센터 윤리헌장’을 채택했다. 또 윤리경영의 효율적 실천을 위해 △각종 계약시 청렴 조항의 철저한 이행 △윤리경영의 적극적인 대내외 홍보 및 교육 △윤리경영 실천사무국의 설치 △운영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마련해 추진키로 했다.
경총도 이를 위해 이르면 연내 투명경영대상을 제정 시상해 기업이 투명경영 정착되도록 독려해 나가기로 했다.
[IT윤리경영 우리가 나선다]
윤리경영의 표본으로 손꼽히는 국내 IT기업은 바로 안철수연구소다.
이 회사 투명경영의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정해놓고 이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영업상황을 고려한 회계장부의 정리, 연구개발비의 당기 비용 처리 등은 중소기업인 안연구소가 실천하고 있는 명확하고 투명한 대표적 경영 사례로 꼽히고 있다.
최근 대형 IT기업들도 본격적인 윤리경영을 선언하고 나섰다.
현대정보기술은 지난달 임직원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용인 종합연구소에서 ‘윤리경영 선포식’을 갖고 투명기업이 될 것을 대외적으로 선포했다. 현대정보기술 임직원은 이날 투명경영 실현을 위해 마련한 ‘현대정보기술 윤리헌장’, ‘윤리규범’, ‘윤리경영 실천지침’등의 내용을 준수할 것을 서약했다. 특히 임직원들은 직무 수행과 관련된 부당행위나 알선, 청탁 등의 근절을 비롯해 협력사의 인사·영업·재무·기술 등의 정보에 대해 비밀을 유지키로 결의했다.
박병재 회장은 “오늘날 기업 활동의 핵심 요소로 윤리경영이 강조되고 있다”며 “진정한 투명경영의 모범을 보여 윤리경영 정착을 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세계아이앤씨는 오는 6월까지 신세계그룹 임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사이버 윤리경영’ 교육을 실시한다. 사이버 윤리경영 과정은 △왜 윤리경영인가 △윤리경영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새로운 출발 등 총 4개의 주제로 구성된다.
한국전력공사는 전사적인 부패추방 운동의 일환으로 민원업무 전반에 대한 제도개선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한국전력은 이를 위해 ‘부패근절T/F’를 운영해 민원발생 소지가 높은 △신규 전기사용신청 △지장(支障)전주 이설공사 △배전공사 및 계약 △송변전건설공사 점검 분야 등에 대한 종합적인 부패근절 대책을 수립했다. 또 지난 3월에는 전사적인 부패추방 토론회를 개최하는 한편 부패근절 대책을 업무분야별로 재구성한 책자도 발간했다.
이 밖에 포스데이타는 지난해 6월 윤리규범 선포식을 갖고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포스데이타는 탈세, 회계부정과 같은 위법행위를 한 기업과는 거래하지 않고 업무상 이해관계자에게는 경조사를 알리지 않는 등 구체적인 내부 자율규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기고:조동성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21세기에 들어오면서 과거에 볼 수 없던 현상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세인의 부러움 속에 한때 잘 나가던 엔론·월드콤 같은 글로벌 기업이 하루아침에 종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파산 위기에 처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경영자는 매출액이나 이익 극대화라는 전통적인 기업 목표보다 기업수명과 같은 새로운 목표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최근 부쩍 늘어나고 있는 장수기업에 대한 여러 연구는 경영자가 윤리경영을 통해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한다는 점을 필요조건으로 들고 있다.
장수기업의 기반이 되는 윤리경영은 ‘사회가 기업에 가진 윤리적, 법적, 상업적, 공공의 기대를 충족하는 차원을 초월하여 기업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정의될 수 있으며 단순한 부패방지나 사회공헌 차원의 접근법과는 차별성을 가진다.
반부패 차원의 윤리경영은 효과가 제한적인 반면, 장수기업의 필요 요소로서의 윤리경영은 기업 내 선순환을 일으키면서 기업 경쟁력 향상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즉, 윤리경영에 투입되는 노력, 비용과 시간은 운영비용 감소, 브랜드 이미지 향상, 고객 충성도 향상, 생산성 및 품질 향상, 상품 및 서비스 매출 증가, 우수인력 유인 등의 선순환을 일으킨다. 이는 기업의 가시적 이익으로 연계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300대 기업 중 윤리경영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시장부가가치에서 2∼3배 높았다고 한다.
이렇게 윤리경영이 기업경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전사적 윤리경영(Total Ethics Management)전략’을 제안해 본다.
전사적 윤리경영은 투명하고 일관성 있는 기업 활동을 통하여 기업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획득하고, 윤리적 경영활동을 통해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 기업명성을 쌓을 수 있으며, 신뢰성과 기업명성을 바탕으로 기업의 재무 및 비재무적 성과에 기여한다.
‘고장난명(孤掌難鳴)’이란 표현이 있다. 한 손바닥으로는 박수 소리를 낼 수 없다는 뜻이다. 전사적 윤리경영이 아무리 큰 성과를 낼 수 있다하더라도 경쟁하면서 파트너가 되는 다른 여러 기업·소비자·정부·지역사회 등 관련 조직이 함께 나설 때 윤리경영의 효과는 극대화된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의 역할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정부는 공공부분 윤리성 강화, 민간부분 윤리경영 도입 지원 등 윤리경영 인프라 구축에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윤리경영 우수기업 혹은 향상도가 높은 기업에 대해서는 사례를 개발하고 이를 홍보하는 등 인센티브 부여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온라인 윤리경영 라이브러리, 온라인 윤리경영 자가진단 툴 등 윤리경영 후발기업이 손쉽게 윤리경영 리소스에 접근 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도 시급하다.
윤리경영은 건전한 기업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현하기 위한 원동력이다. 건전한 경영자가 윤리경영을 자발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정부와 시민사회가 환경을 조성할 때 건전한 기업은 기를 살려 윤리경영에 매진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발적으로 윤리경영을 주도하는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더 잘되는 기업환경 속에서 우리 경제는 선진국으로 발전하고, 이런 과정에서 우리 기업은 장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dscho@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