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이판정 넷피아 사장(5·끝)

<5·끝> 좋은 인연은 나라도 세운다

나는 한글(자국어) 인터넷주소 서비스를 위한 솔루션을 들고 국내 모든 인터넷 서비스업체(ISP) 들을 열심히 찾아 나섰다. 그러나 부채만 잔뜩 지고 있는 작은 벤처기업을 믿고 네임서버를 맡길 회사는 찾을 수 없었다. 거의 모든 회사로부터 냉대를 받은 뒤 이대로 포기해야 되나 하고 몇 날을 고민하던 중 문득 하나로통신에 근무하던 안병균 부장(현 하나로드림 대표이사)이 생각났다.

안 대표와의 인연은 두루넷이 ‘korea.com’ 도메인네임을 50억원에 매입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쯤이다. 96년경 당시 안 대표는 우연히 등록해 보유하고 있던 ‘hanaro.com’ 도메인네임을 확보하기 위해 내가 근무하는 조그만 창업보육센터 사무실을 방문했었다. 나는 그의 열정에 감복해 아무런 대가 없이 무료로 ‘hanaro.com’ 도메인네임을 줬다. 그는 나에게 “언젠가는 빚을 갚을 테니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얘기해 달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불현듯 안 대표의 말이 생각이 나서 하나로통신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을 갖고 그를 찾았다. 하나로통신에 들러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설치를 요청했으나 엔지니어의 반대가 심했다. 그 순간 “여기서 물러나면 이젠 끝이다”하는 생각에 앞이 캄캄했다. 그래서 발길을 돌려 다시 한번 테스트를 간절히 요청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안 대표가 직접 나서 테스트라도 해보자라고 나를 대신해 직원들을 설득했다.

한글인터넷주소 서비스의 운명이 달려있는 절체절명의 테스트는 시작됐고 다행히 테스트는 대성공을 거뒀다. 그후 하나로통신은 순차적으로 네임서버를 업그레이드해 한글주소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것은 차세대(제3세대) 인터넷주소가 극적으로 탄생하는 계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나로 라인이 들어가 있는 전국에 전화를 걸어 “되느냐? 인터넷 주소창에 한글만 쳐봐라”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신기하게 연결된다.이것이 어떤 영문이냐”는 응답이 돌아왔다. 그 때의 감동은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쁨과 환희였다.

정식 서비스 개시는 하이텔과 하나로통신이 동시에 진행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한글인터넷주소의 첫 정식서비스의 순간이었다. 하나로통신과 하이텔 관계자의 용기 있는 결단에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 드린다. 이후 한국통신·데이콤 등 50여 개 통신사(ISP)와의 제휴가 성공적으로 추진됐다. 이를 통해 현재 인터넷 이용자 중 약 2300만 정도가 한글인터넷주소를 이용할 수 있는 한글인터넷주소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었다.

사업을 해오며 나는 ‘좋은 인연은 나라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오늘의 넷피아가 있는 이유는 위기의 순간마다 혜성처럼 나타나 도움을 주신 분들과 무엇보다 열심히 일해준 직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러한 인연들이 앞으로 넷피아가 전세계 자국어인터넷주소 전문기업으로 대한민국을 자국어인터넷주소 모델국으로 만드는데 큰 밑거름이 될 것임을 굳게 믿는다. 이와 같은 거대한 프로젝트에 많은 분의 지원이 함께 하길 당부 드린다.

 이판정@넷피아·pjlee@netpia.com

사진; 작년 4월 9일 하나로드림과 한글e메일주소 업무 협정식을 체결한 직후 안병균대표(왼쪽 네번째)등과 기념 촬영에 나선 필자(왼쪽 다섯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