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선 타고 정보가 흐른다

서울 마포 강변 현대홈타운. KT컨소시엄 주도로 현대건설이 구축한 첫 홈네트워크 시범 단지다. 30세대 정도에 불과하지만 미래의 주거 형태를 한 눈에 보여 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홈타운의 시스템 중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이 홈네트워킹과 음성 인식 기술이다. 음성인식 시스템으로 사용법이 까다로운 복잡한 디지털 가전을 말로 제어할 수 있다. 가스·가습기· 선풍기·에어컨· 전등·커튼 등 각종 전자기기도 외부에서 조작이 가능하다. 보일러·가스레인지 등 위험도가 높은 시설은 이상 발생시 집주인에게 상황을 알려 주고 제조사에 자동으로 연락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이를 가능케 하는 핵심 기술이 바로 전력선통신(PLC) 기술이다. PLC는 한 마디로 집· 빌딩 등 곳곳에 깔려 있는 전기선을 통해 음성·데이터·인터넷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전력선 기술이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디지털 홈 사업이 가시화되면서 홈네트워킹의 인프라 기술로 떠올랐으며 다양한 응용 제품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산업자원부와 한전이 저속 PLC로 원격 검침 서비스를 개발한 데 이어 고속 PLC로 인터넷과 통신사업을 준비 중이라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전원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기만 하면 바로 초고속 인터넷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난 달 발표한 정통부의 PLC 승인 완화 방침은 PLC 대중화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정통부는 올 10월부터는 개별적으로 매번 허가를 받아야만 사용이 가능한 전력선 통신 장비가 기술 기준에 맞춰 한 번만 승인 받도록 했다. 또 450MHz 이하의 저주파 대역에만 허용되던 것이 30MHz 이하까지로 대폭 확대했다.

PLC 기술 도입이 가장 활발한 곳은 홈네트워킹 분야다. LG IBM이 최근 출시한 ‘멀티넷X 900’은 PLC 기반의 홈네트워크 PC다. 이 제품은 가정의 디지털 가전 기기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원격 조절 할 수 있다. 홈 네트워크 서버로 집안의 다양한 가전 제품을 통합 조정할 수 있으며, 별도의 장치나 복잡한 공사 없이도 전기 코드만 연결하면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다. LG전자와 공동으로 개발한 이 제품은 ‘LnCP’(Living Network Control Protocol) 방식을 적용했다.

PLC 기술을 기반으로 한 응용 제품 개발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국내에서 PLC 기술을 연구·개발하고 있는 기업은 줄잡아 10여 개. 지난 99년 기인텔레콤으로 출발해 국내 PLC 기술을 정착시킨 ‘일등 공신’인 젤라인은 중기 거점 사업의 하나로 고속 PLC 상용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엑스컴도 초고속 통신 모뎀 개발을 완료했다.

플래넷INT도 PLC기술을 댁내나 빌딩에서 조명·콘센트·가스보일러 등 원격 검침과 자동 제어(FA) 분야를 중심으로 대중화에 나서고 있다. 플레넷 측은 "PLC는 원래 인터넷 등 초고속망의 대체용으로 개발됐으나 지금은 분야 별로 응용 제품이 출시되는 상황"이라며 "기존에 주력했던 홈게이트웨이나 서버와 연동한 애플리케이션 외에도 올해는 빌딩 제어, 소방설비, 가로등 제어 등으로 시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전에 소재한 벤처기업 사람과 사람들도 전력선에 송신기를 설치해 음성을 변조, 조명등과 같은 빛에 음성 신호를 뿌려 줘 이어폰·헤드폰·스피커 등으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음성전송 시스템을 선보였다. 주요 조사 기관은 PLC 시장 규모가 2006년에 장비수 1200만 대, 매출 7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 PLC 기술이란

전력선통신(Power Line Communication)은 쉽게 말해 전력선을 통신망으로 이용한다는 개념이다. 통신망을 새롭게 설치할 필요가 없다는 편의성과 경제적인 이점은 물론, 냉장고·TV·PC 등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기기를 쉽게 네트워크화한다는 장점 때문에 주목 받고 있다.

인터넷 서비스와 네트워크 구축 뿐 아니라 전력선 기반 지능형 가전 제품의 원격 제어와 계량기와 같은 원격 검침, 각종 전기 기계의 원격 제어 등도 가능하다. 이 기술이 실현되면 케이블TV망, 전화선·광 통신망 등으로 복잡하던 데이터 전송 경로가 전력선 하나로 줄어든다. 전원과 통신 데이터를 나누어 주는 모뎀이나 시스템 등 별도 장치만 있으면 돼 설치 또한 간편하다. 하지만 데이터를 전력선 내부에 실어 보내 이에 따른 속도 한계와 전력선 망 자체의 간섭 현상은 아직 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한전 저속PLC 원격 검침 서비스

한국전력 전력연구원은 PLC를 기반으로 전기 요금 표시 기능이 내장된 전력 부가 시스템을 국내에서 첫 상용화해 주목을 받았다. 전력 부가 시스템은 정보 제공 단말기인 전기 요금 표시기를 통해 전기 요금 공지, 납부와 미납 확인 등 전기 이용에 관련된 정보와 생활 정보까지 제공하며 홈오토메이션 기능도 탑재해 원격지에서 전력선을 통해 가정의 가전기기를 제어할 뿐 아니라 보안, 감시까지도 가능하다.

특히 전기 요금 표시기는 PLC 모뎀을 통해 전력량계와 연결돼 실시간으로 전기 사용량과 예상 청구 금액을 표시해 줘 고객으로 하여금 전기 요금을 상시 점검해 전기 소비 절약을 유도할 수 있다. 앞으로 전력 부가 시스템은 원격 검침· 홈 네트워크 실현 등 주변 여건이 성숙되면 더욱 더 경제성을 갖출 전망이다.

전력연구원은 또 22.9kV 배전선로용 PLC 시스템도 함께 개발했다. 장거리 전송용 기술인 이 시스템은 현재 220V 저압선에 적용해 온 가정용 PLC 기술 보다 개선된 기술로서 지난 해 10월 22.9kV 배전선로 18km에 통신시험 전송을 성공했다. 앞으로 한전은 배전자동화 전력 기기 제어용으로 활용해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도 이를 채택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