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실종…무너지는 전자상가](1)세금계산서가 남아돈다

 극심한 경기 불황으로 전자제품 내수시장이 아사 직전이다. 용산과 테크노마트 등 집단 전자상가는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내수시장의 실상을 전자상가를 통해 집중 조명해 본다. <편집자 주>

 지난달 10일부터 25일까지는 부가가치세 제1기 예정신고 기간이었다. 유통업계는 이 기간이 가장 바쁘다. 부가가치세 신고를 위해 매입·매출 자료를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적법성 여부는 따져볼 일이지만 어쨌든 현실에서는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들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부가세 신고 시즌이 되면 유통가에서는 이른 바 ‘세금계산서 사고팔기’가 한창이다. 매출에 비해 매입 세금계산서가 턱없이 적을 경우 계산서를 비교적 많이 보유하고 있는 상위 도매업체나 협력업체로부터 일정 수수료를 내고 이를 사들이는 것이다. 실제 거래는 없었지만 장부상으로 거래 기록을 남기는 것. 이 때문에 세금계산서 유통 현황을 보면 도·소매 업체들의 경기를 미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예년의 경우 이 수수료는 보통 기재금액의 6∼7% 수준이고, 상가 경기가 호황을 누릴 때는 10% 수준에 이른 적도 있다. 하지만 지난달 1분기 예정신고 때에는 세금계산서를 따로 찾는 이들도 거의 없었을 뿐더러 수수료율도 3.5%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오히려 일부 업종의 경우 매입 세금계산서가 매출 세금계산서보다 적어 부가세를 환급받아야 하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용산에 위치한 한 주변기기 공급업체 관계자는 “세금계산서를 찾는 이들이 크게 줄었다”며 “한때는 세금계산서 사고팔기를 전문으로 해 이익을 챙기는 업자도 있었으나 요즘엔 거의 활동이 뜸하다”고 말했다.

 이는 경기 불황에 따른 매출감소가 첫 번째 요인으로 꼽힌다.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20% 줄었으니 매입도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 당연하다. 또 신용카드 같은 정상적 거래가 늘어났다는 점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유통 전문가들은 이보다 중요한 한 요소를 지적했다. 불순한 유통세력에 의한 세금계산서 수요가 거의 사라졌다는 얘기다.

 용산 부품유통 업계의 A씨는 “과거 코스닥 등록기업들이 매출 부풀리기 차원에서 세금계산서를 많이 사들였지만, 경기불황이 계속되고 세무당국의 감시가 강화되면서 코스닥 등록기업들의 수요가 뚝 끊겼다”고 전했다.

 불황의 장기화는 세금계산서 수수 관행도 바꾸어놓고 있다. 호황기에는 분기 단위로 정산했지만, 최근에는 월 단위로 정산하는 업체들이 늘었다. 자금흐름이 경색된 데다 하루 건너 부도업체가 생기고 폐업·전업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있었던 1분기 신고는 말 그대로 ‘예정’신고였다. 하지만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확정신고 시즌인 7월에도 이 같은 기조는 크게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3월보다 4월, 4월보다 5월 매출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세금계산서를 맞추고 말고 할 게 없어요. 세무조사가 두려워 그저 앞뒤를 챙기는 정도에 불과합니다”는 업자의 말은 전자상가의 현실을 보여준다.

 <박영하기자 yhpark@etnews.co.kr>

사진; 한창 호황일 당시 오전 시간이면 짐을 싣고 내리는 화물차들로 가득 메워지던 상가 도로가 경기 침체 이후, 화물차들은 많이 사라지고 불법 주정차로 인한 체증만 늘고 있다. 전자상가 경기는 붉은 신호등으로 바뀐 지 이미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