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친환경 기업경영이다.’
지난 2001년 소니의 비디오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의 일부 부품에 유해물질 함유사실이 밝혀져 세관을 통과하지 못했던 사례는 우리나라 기업들에 환경경영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준 반면교사였다. 친환경 제품이 아니면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전기·전자 제품에 대한 선진 각국의 환경 규제 움직임은 해를 거듭할수록 강화되고 있고 그 규제의 도화선은 화약에 가까워지고 있다. EU·미국·일본·중국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출국들이 유해물질 함유나 재활용 가능성을 기준으로 수입을 금지하는 등 강력한 환경규제를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환경규제 최대의 비관세장벽 등장=내년 8월부터는 EU의 ‘폐전기·전자기기지침(WEEE)’이 발표되고 2006년 7월부터는 인체에 해로운 유해물질을 제품생산에 쓰지 못하게 하는 ‘위험물질 사용제한지침(RoHS)’이 시행된다. RoHS는 납·수은·카드뮴·6가 크롬 등 중금속이 함유된 부품이나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내용을, WEEE는 수거 및 재활용을 의무화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유럽뿐만 아니다. 미국의 경우 미연방환경보호청(EPA)이 컴퓨터·모니터·TV 등 각종 전기전자제품을 임의폐기 및 매립하지 못하게 하는 ‘컴퓨터 폐기물 대책법안(CHIP)’을 연방 하원에 제출했다. 또 수입되는 컴퓨터에는 일정액의 환경부담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지난 2001년 4월부터 냉장고·세탁기·에어컨·TV·업무용PC 등을 대상으로 가전 리사이클법을 시행하고 있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적용 분야를 확대하고 있다.
중국도 국가경제무역위원회가 주축이 돼 폐기물 관리 및 재활용을 법제화하려 하고 있다.
선진국을 포함,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국에서 이같이 환경규제가 거세지면서 수출타격 위험도 높아졌다. 최근 열린 전자업계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환경규제가 본격화될 경우 미국(19%), 유럽(16%), 중국(16%), 일본(8.4%) 등 주요국 수출액의 60% 가량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가전3사 발빠른 대응나서= 국내 업계도 이같은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친환경제품 생산을 위해 지난 해 초부터 전사적인 환경안전경영위원회를 설립, 운영하는 한편 녹색구매제도도 시행 중이다. 오는 9월부터는 전 제품에 납사용을 전면 폐지할 방침이다. 반도체의 경우 지난 2001년부터 유해성분으로 알려진 납과 할로겐화합물을 제거하고 주석과 비스무트의 화합물 등 신소재를 적용하고 있다. 지난 해에는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녹색구매정책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했고 내년부터는 이 제도를 전면시행할 계획이다. 또 각국 전기전자업체들의 공동대응 모임에 지난 해 1월부터 참여하고 있다.
LG전자는 환경기술위원회라는 전사적인 대응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해말에는 친환경 경영전략을 확정했다. 올 연말까지 제품에 유해물질 사용을 금지하고 규제 이하 수치로 유지할 방침이다. 전 제품에 무연 납땜을 적용하고 EU가 요구하는 폐제품 회수·처리시스템도 구축할 계획이다. 녹색구매제도 및 협력업체 지원프로그램도 마련했다.
대우일렉트로닉스도 올해부터 설계단계에 환경디자인 개발과정을 적용하고 협력사로부터 부품을 납품받는 단계에서 유해물질을 검사 및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대유럽 수출제품에는 무연솔더링 기술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유럽 수출형 냉장고에는 친환경 냉매인 R-600 냉매를 사용키로 했으며 무연합금 기술 적용도 검토하고 있다.
올초에는 산업자원부와 한국전자산업진흥회(회장 윤종용) 주최로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주요 기업체 대표 300여명이 모여 ‘친환경 제품생산 선언’을 하기도 했다. 이 선언문은 쾌적한 환경보호 등 3대 기본원칙과 친환경제품 개발체제 구축, 납·수은 등 6개 유해물질 사용제한 등 4대 실천목표를 담고 있다.
강홍식 한국전자산업진흥회 국제환경팀장은 “EU 등 세계각국의 환경규제는 우리나라 전자제품 수출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며 “업계가 친환경 제품으로 무장할 수 있도록 범 업계 차원의 캠페인을 전개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고]청정생산 기술개발과 환경경영체제구축
-윤창현(국가청정생산지원센터 소장) yoonch@kitech.re.kr
2001년 2월 EU의 신화학물질관리제도인 REACH 백서가 발표됐을 때 우리나라에서 이 제도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백서 발간 2년 후, EU에 수입되는 1t 이상의 모든 화학물질을 등록하고 안전성 평가를 의무화하는 법안의 초안이 공개되자 큰 파장이 일었다. 또한 오는 7월부터 신규로 출시되는 자동차에는 수은·납·카드뮴·6가 크롬 등 중금속 사용이 금지(ELV:자동차폐차 처리지침)됐고 2007년 1월부터는 폐기된 전기 전자제품의 일정비율을 회수 재활용(WEEE:전기전자제품 폐기물 처리지침) 해야하는 등 전 산업에 걸친 환경규제가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환경규제에 대해 관련기업들은 기업활동이 위축될 것을 우려하고 있으나 EU·미국 등 선진국의 환경규제는 앞으로 더 강화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를 청정생산 체제로 시급히 전환하지 못하면 생존마저 걱정해야 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지금까지 우리 기업들이 추진해온 환경기술 개발은 오염물질의 사후처리 측면이 강했다. 하지만 선진국들의 환경규제 움직임에서 볼 수 있듯이 부품 하나의 생산에서부터 폐기와 재활용까지 염두에 둔 제품개발을 하지 않으면 물건을 팔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이러한 현실상황에서 기업이 가장 시급히 고려해야 할 것은 청정생산을 도입하고 환경경영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최근 한 중소기업은 산업자원부의 지원으로 반도체나 평면표시장치 등 정밀제품의 표면세정시 세제를 사용하지 않고 고형화된 이산화탄소를 표면에 고속충돌시켜 오염물을 제거시킨 후 재오염을 일으키지 않는 기술을 상용화했다. 청정생산은 이처럼 생산과정은 물론 수송·사용·폐기까지의 전 과정에서 오염물질 배출을 원천봉쇄하거나 저감하는 기술을 적용하는 것으로 자원보전과 원가절감을 달성,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시킬 수 있다.
산업자원부에서는 산업현장에서 청정생산의 효율적인 도입을 위해 1995년부터 환경규제 대응기술과 산업별 핵심 청정생산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있으며, 개발된 기술을 필요기업에 보급 확산시키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9년간 총 718개 과제에 3000억원을 지원했고 올해도 약 400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또한 2003년부터 환경경영체제를 갖춘 대기업이 10개 이상의 중소 공급업체에 대해 환경경영체제를 구축하도록 지원해주는 공급망 환경관리 사업(SCEM)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전문 컨설팅 기관에서 △환경경영체제 인증 △에코 디자인 △전과정평가 △환경성과평가 △환경회계 등 환경경영 전반에 관한 시스템을 구축해주는 통합환경경영체제 구축사업(IEMS)도 병행하여 지원하고 있다.
이제 기업이 청정생산을 도입하고 환경경영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적 과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하며, 정부의 청정생산 및 환경경영 지원정책을 적극 활용하여 국제환경 규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 실태
삼성·LG 등 대기업은 풍부한 자금력과 기술력, 인력이 있어 해외의 환경규제 정책에 나름대로 대응하고 있지만 자금력이 달리는 중소기업은 속수무책이다. 그나마 대기업에 전자부품이나 모듈 등을 공급하는 협력업체는 대기업의 기술이전과 교육·협력 등을 받을 수 있어 형편이 나은 편이다.
대한상의가 지난 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선진국의 환경규제를 제대로 인지하는 중소기업은 전체의 15%에 불과했다. 올 들어서도 환경규제에 대한 중소기업들의 인지도는 별반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상반기부터 청정기술개발자금(2∼3년간 54억원)을 활용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지역별 친환경 순회교육 △유해물질 관리를 위한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구축 △환경친화적 공급망 구축사업 지원 △중소기업 무연솔더링 공정기술개발 지원 △유해물질 분석법 표준화사업 등을 추진중이다.
지역별 친환경 순회교육은 산자부와 한국전자산업진흥회·국가청정지원센터·전자업체 들이 중심이 돼 이미 지난 3월 서울·경기를 시작으로 구미·마산(4월), 광주·대전(5월) 지역을 마친 상태이다.
또 지난 20일(인천)부터는 산자부 기술표준원이 중소기업청과 손잡고 6월까지 두 달 동안 대구(6월 9일), 광주(6월 17일), 부산(6월 24일) 등에 분포해 있는 3만6000여 전기·전자제품 관련 업체 및 자동차 부품 수출업체를 대상으로 친환경 기업경영 지역순회 설명회에 나섰다.
기술표준원의 안종일 과장은 “지방 중소기업의 경우 국제적 환경규제의 사각지대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서 이번 교육을 진행하게 됐다”며 “교육에서는 주로 △국제환경규제 현황 △전기·전자제품 및 자동차 환경규제 △환경규제관련 표준화 정책 등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