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일본에서 개최된 디스플레이 전시회인 ‘EDEX2004’ 전시장에 한 인물이 들어서자 일본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일본 기자들의 열띤 취재 대상은 삼성전자 LCD 총괄의 이상완 사장. 이미 98년부터 대형분야는 한국에 주도권을 내준 상태여서 이들의 주요 관심사는 일본업체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중소형 분야에 집중됐다.
그러나 이 같은 일본 기자들의 질문도 이번 전시회가 끝일지 모른다. 이상완 사장의 가슴속에는 대형에 이어 오는 2006년 중소형 분야 1위를 달성한다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사업 시작 5년 만인 98년 중대형 LCD 1위 등극, 2002년 TFT LCD 매출 1위 등 삼성전자 LCD 신화에는 이상완 LCD 총괄 사장이 있다. 이 사장은 국내 업체로는 처음 삼성전자가 LCD사업을 시작한 93년부터 2004년에 이르기까지 한자리에서 이끌어온 국내 LCD산업의 대부로 일컬어진다.
이상완 사장이 LCD 총괄 사장으로 부임한 이후 전자신문과 단독으로 인터뷰를 가졌다.
이 사장은 “오는 2006년까지 7세대 이상의 라인을 3개 이상 짓는 것을 검토중”이라며 “이는 소니와 합작으로 지어지는 S-LCD라인에서 소니에 대한 50%의 물량 배분으로 삼성전자의 대형 LCD 판매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2006년까지 3개의 7세대급 이상의 LCD 생산라인을 갖출 경우 오는 2006년에야 7세대 라인을 가동하는 LG필립스LCD, 샤프 등 경쟁사에 비해 2배 가까운 생산능력을 보유, 대형부문의 경쟁력이 타사를 앞도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대형 분야의 우위를 바탕으로 현재 중대형 LCD를 생산중인 3라인(600×720㎜), 4라인(730×920㎜)까지 오는 2006년까지 중소형 라인으로 전환, 일본업체의 아성인 중소형 부분에도 2006년에는 1위에 오를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현재 대형 LCD 패널에 비해 수익성이 떨어지고 표준품이 아니기 때문에 그만큼 영업하기에도 힘든 중소형 사업을 강화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사장은 “지난 2001년 대형 LCD패널의 판매가가 50% 이상 하락, 대부분의 LCD업체들이 적자를 면치 못했을 때 샤프만이 홀로 큰 흑자를 냈다”며 “이는 샤프의 중소형 사업이 대형 사업의 적자를 메꾸어주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소니와의 합작에 대해서는 여전히 긍정적인 입장이다. “LCD분야 최고 기업인 삼성전자와 TV분야 최고기업의 소니의 만남으로도 충분히 시너지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일부 일본 여론에서 소니가 삼성에 굴복했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하지만 S-LCD가 성공적으로 가동돼 소니에 도움이 되면 일본에서의 분위기도 충분히 반전될 것”으로 낙관했다.
소니가 히타치 등 일본기업들과 AUO 등 대만기업들을 제치고 삼성전자를 파트너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TV분야에서 소니가 표준을 이끌어왔듯이 LCD분야에서는 삼성전자가 표준화를 주도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 상완 사장은 “사업초기 1위 업체인 샤프가 11.3인치로 시장 표준화를 시도했을 때 삼성전자는 12.1인치 투자를 단행해 당시 노트PC 1, 2위를 다투던 도시바와 IBM에 납품하며 표준화에 성공했다”며 “이후 노트PC의 14인치, 15.4인치, 모니터의 17인치, 19인치 등으로 표준화를 주도 “삼성이 만들면 LCD 표준이 된다”는 신조어까지 생겼다”고 회상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삼성전자를 제외한 샤프, LG필립스LCD, 치메이 등 대부분의 LCD업체들이 LCD TV 표준으로 30인치를 밀었지만 삼성전자 혼자 주장한 32인치 제품이 TV업체들에 표준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역시 삼성’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삼성전자 충청남도 탕정 기업도시에 대해서는 “삼성전자가 일본기업을 앞서기 시작한 90년대 말 일본 기업들이 ‘왜 삼성전자에게 LCD 분야를 내주게 됐나’에 대해 조사를 했다”며 “그 보고서는 연구소와 생산라인이 함께 있던 삼성전자와 달리 일본기업들이 지진 등의 위험으로 LCD 라인을 분산하고 연구소 위치도 따로 두는 등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없었던 구조였기 때문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삼성전자 LCD사업도 이미 기흥, 천안, 탕정 등으로 생산기지가 다원화되고 있는데다가 기흥에 연구소가 있는 등 이러한 위험성이 내포돼 있다”며 “크리스털 밸리인 탕정에 연구소 및 차세대 라인을 집중시키기 위해 직원들이 편안히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자는 것이 기업도시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상완 사장은 협력업체 육성에도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95년에 생산을 시작하였을 때 국내에는 협력업체가 거의 없어 직원이 직접 필요한 자재를 해외에서 공수해오기도 했다”며 “현재는 생산에 필요한 자재의 80% 이상을 국내에서 조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올해부터 12개 주요 협력업체의 30% 생산성 향상 프로그램에 대해 컨설팅 비용을 삼성전자가 70% 부담하고 이를 통해 삼성전자의 검사를 통과하지 않고 협력업체에서 자체 보증체계를 갖추는 무검사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상완 사장의 가장 큰 관심사는 LCD TV. 삼성전자의 LCD 분야 향후 투자도 모두 TV시장을 겨냥한 것이다. 연간 1억2000만대가 팔리는 모니터에 비해 TV시장은 1억 6000만대에 이른다. 크기도 모니터의 두배 이상이다. 그는 “삼성전자는 오는 2006년쯤에는 국내 중산층 가정에서 누구나 40인치 LCD TV를 볼 수 있도록 40인치 LCD패널을 만들 계획”이라며 “거대 시장인 TV시장이 LCD에 문을 여는 때가 임박했다”고 자신했다.
그는 “예전에는 삼성전자 최고 입사지원 분야가 반도체였지만 최근에는 LCD분야에 많은 인재들이 몰리고 있다”며 “이들이 한국 LCD 산업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가게 될 것”이라고 흐뭇해했다.
◆이상완 사장은 누구인가
이상완 LCD 총괄사장(54)은 1976년 삼성전자 반도체 부천사업장에 입사한 이래 지난 93년까지 16년 동안 메모리와 시스템LSI 사업 등 반도체 사업의 핵심적인 부서에서 개발, 생산, 마케팅 등 주요 업무를 맡아왔다.
93년 반도체 사업의 신규 핵심사업으로 추진중이던 AM LCD 사업의 사업부장으로 LCD와 인연을 맺은 이후 현재까지 12년간 삼성전자 LCD 사업을 이끌어오고 있다. 이상완 총괄사장은 미래를 보는 탁월한 능력과 일단 사업에 대한 방향을 결정하면 사업을 추진하는 능력은 불도저 같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사업 초창기에 애플, 디지털 등 대형 PC업체들이 그 당시 주류인 삼성전자에 11.3인치 LCD를 요구했으나 이상완 사장은 차세대 제품을 선정해야 한다는 전략에 따라 12.1인치에 적합한 라인 건설을 추진했다. 이를 알게 된 디지털의 개발책임자가 이상완 사장 앞에서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며 12.1인치의 설계 도면을 팽개쳐버리는 수모까지 당했으나 결국 일본업체를 앞지른 대규모 3세대 라인의 투자로 삼성전자가 중대형 1위의 기초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초 샤프와 LG필립스LCD가 6세대 투자를 발표했을 때 7세대 투자를 결정한 것도 이상완 사장의 결단이었다. 대부분의 장비업체들과 패널업체들이 희의적이었던 7세대 투자에 대해 “시장의 니즈를 정확히 읽고 한 단계 앞서가야 표준화를 선도할 수 있다”는 그의 지론으로 7세대 투자를 진행하게 됐고 최근에는 장비가 속속 개발되면서 회의론이 상당 부분 잠재워졌다.
차세대 성장동력 디스플레이 사업단장인 건국대 김용배 교수는 이상완 사장을 “꿈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이라고 평한다. 김용배 교수는 “삼성전자 LCD 사업 초창기에 이상완 사장을 만나 화질이 부드럽지 못하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얼마 안돼 다시 만나보니 확연히 화질이 개선됐다”며 “그 후에도 몇 차례 조언을 할 때마다 이를 예상보다 앞서 개선을 했는데 이는 뜨거운 열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디스프레이연구조합의 구자풍 사무국장은 “이상완 사장은 최고 임원으로 승진한 이후에도 어려울 때 도움을 준 교수들과 특허청 관계자들에게 항상 감사함을 표현할 정도로 잔정도 많은 분”이라며 “그리고 국가 산업 발전에 대해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상완 총괄사장은 지난 99년 부사장 승진 후 다시 2년만인 2001년 사장으로 승진했으며 올해 LCD 총괄사장으로 승진했다. 지난해에는 업계 출신으로 처음 한국 정보 디스플레이 학회 회장으로 선임됐으며 지난 3월에는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해 명실공히 한국 LCD 산업의 산 증인임을 증명했다.
이상완 사장 이력.
▲1976. 7 삼성전자 입사
▲1976 ∼1987 시스템 LSI 마이크로 제품 생산 및 기술 총괄
▲1987 ∼ 1991 메모리 생산총괄
▲1991. 3 임원(이사) 선임
▲1991 ∼ 1993 논D램 메모리 영업이사
▲1993 ∼ 현재 AM LCD사업부장
▲1999. 1 부사장 승진
▲ 2001. 3 사장 승진
◆삼성전자 LCD 사업 이력
삼성전자의 LCD사업은 지난 93년 반도체 사업의 신규 사업으로 출발, 95년 첫번째 라인인 L1라인을 기흥에서 가동하면서 본격적인 국산 LCD 시대를 열었다. 1년 뒤인 96년에는 12.1인치를 주요 제품으로 하는 L2 라인을 가동하고 98년에는 기흥에서 천안으로 생산기지를 옮겨 14.1인치를 주 제품으로 하는 L3 라인을 가동했다.
삼성전자는 98년 L3라인 가동을 계기로 매출 1조원를 돌파하면서 일본업체들을 제치고 10.1인치 이상의 중대형 분야 1위 업체로 등극하게 된다.
LCD업계 최대 호황 시기인 2000년에 L4라인을 가동하면서 영업이익률이 40%대에 이르기도 했으나 2001년 LCD 패널가격이 반토막 나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2002년에는 5세대 라인인 L5를 가동하면서 대형 및 중소형 TFT 전체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으며 지난해에는 STN매출을 포함한 샤프 LCD 매출을 추월, 세계 최대 LCD 업체로 발돋음했다. 올해는 반도체 사업부에 속했던 AM LCD사업부가 별도의 사업조직인 LCD총괄로 승격됐다.
삼성전자 LCD 사업부는 올해 10조원에 매출을 기대하고 있으며 오는 2010년에는 200억달러의 매출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