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생존과 매각을 놓고 혼전을 거듭하던 하이닉스반도체 비메모리부문이 매각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24일 하이닉스반도체 채권단과 은행권에 따르면 하이닉스 비메모리부문이 씨티그룹 산하 씨티벤처캐피탈에 약 9500억원에 매각될 전망이다. 외환은행은 최종 방안을 마련, 채권단금융협의회의 승인을 얻기 위해 오는 27일 해당 안을 놓고 표결에 들어갈 계획이다. 채권단 측은 매각이 결정되는 대로 중국 공장 설립방안 등도 논의할 계획이다.
◇씨티그룹의 다급한 접근=하이닉스 비메모리부문 인수를 추진중인 씨티그룹은 최근 인수가격을 당초 9250억원에서 9543억원으로 높여 채권단에 제시했다. 채권단은 지난해 5400억원의 인수가격을 제시한 씨티벤처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가 지난 4월 기업가치 상승 등을 이유로 매각방침을 철회했었다. 이후 씨티벤처가 매각가격을 9250억원으로 높이면서 매각작업이 재개됐었다. 하이닉스반도체 권오철전무는 최근 1분기 기업설명회에서 “시장 호황기를 최대한 활용해 가치를 높여 나가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며 매각 문제는 그 이후에 다시 논의한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타결 임박=하이닉스채권단은 씨티그룹이 제시한 비메모리부문의 인수가격 9543억원에 대해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입장이다. 신설법인에 제공될 인수금융의 규모와 배분을 둘러싸고 이견을 보였던 채권단이 총 인수금융 3800억원에 대해 합의 단계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채권단은 매각대금 처리에 관한 최종 방안을 마련, 조만간 채권단금융협의회 결의를 거쳐 하이닉스 비메모리부문 매각을 최종 확정지을 방침이다.
씨티그룹은 하이닉스 청주공장 2, 4, 5라인과 구미공장 2, 3라인 등 비메모리 관련 자산과 부채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신설법인을 설립, 하이닉스 비메모리부문을 인수할 예정이다. 27일 표결에서 채권단의 승인이 이뤄지면 이르면 상반기 중에 하이닉스 비메모리부문의 매각작업이 완료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하이닉스 비메모리부문은 경북 구미와 충북 청주의 4개 생산라인에서 지난해 263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이닉스는 이미 평판디스플레이부문을 3억8000만달러에 중국 BOE테크놀로지에 매각한 바 있다.
◇매각 후 시너지는=하이닉스는 올해 업황 호조로 인해 1조원에 이르는 영업이익이 예상되는데다 비메모리부문 매각대금까지 유입되면 부채비율이 130%에서 100%로 내려갈 것으로 보고 있다. 비메모리부문 매각을 통해 메모리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특히 거액의 투자가 필요한 300㎜ 팹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돼 300㎜ 웨이퍼 시대에 적극 대응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채권단은 비메모리부문 매각을 완료하는 대로 유럽계 반도체회사인 ST마이크로와 합작으로 중국에 현지공장을 설립하는 방안을 포함해 전략적 또는 금융투자자 유치를 통한 조기 경영정상화 방안을 본격 논의할 예정이다.
◇전문가 견해=하이닉스 독자 생존을 지지해 온 한국과학기술원 경종민 교수는 하이닉스 비메모리부문 매각이 하이닉스 회사를 봐서는 일단 잘된 일이라고 전제하면서 “가격도 상당히 좋을 뿐 아니라 특히 씨티그룹이 최종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매각을 반대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아무리 국경없는 비즈니스라고 해도 여전히 실질적인 국경은 있는 법인데 국내 반도체 산업의 중요한 부분이 외국계로 간다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하이닉스반도체의 기업가치 부문에 대한 의견에도 장단점이 제기됐다. 교보증권 김영준 애널리스트는 “하이닉스로서는 일단 현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며 현재 호황인 반도체 경기가 혹시 다운턴을 하더라도 심리적으로 대비할 수 있게 된다”면서도 “그러나 장기적으로 메모리에만 집중하게 된다는 측면에서, 즉 포트폴리오 마련 차원에서 반드시 긍정적인 것으로만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메리츠증권 송명섭 애널리스트도 “2006년 12월까지 갚아야 할 돈이 3조원(차입금 기준)이 넘는데 이중 많은 부분이 감소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현재 하이닉스의 비메모리부문이 수익성과 전망이 좋고 최근 국내 시스템LSI시장이 뜨고 있는 시점임을 감안하면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