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실종…무너지는 전자상가](3)­끊이지 않는 ‘세무괴담’

“나 지금 떨고 있니.”

 몇 년 전 모 방송사에서 방영된 ‘모래시계’의 주인공 태수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 그의 친구에게 던진 말이다. 요즘 전자상가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말일 듯싶다. 아직 끝나지 않은 세금추징 때문이다.

 물론 과거에 저지른 탈세라 하더라도 법에 따라 마땅히 추징돼야 하지만 대추나무 연 걸리듯 걸려 있는 거래관계를 조목조목 따져 세금을 추징하는 과정에서 용산의 전자상가는 지금 세무 한파에 떨고 있다.

 사실 용산에 세무 한파가 불어닥친 것은 지난해 이맘때였다. 용산에서 하드디스크 드라이브를 유통해온 엠에스테크가 지난 99년부터 2002년까지 신고한 세금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지난해 5월 용산 유통가에는 일대 세무조사가 시작됐다. 특히 이 과정에서 엠에스테크와 거래했던 중간 유통상 및 소매상·판매점에 이르기까지 거래 루트가 세세히 밝혀져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대됐다.

 이 사건은 올해 들어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최근 세무서의 ‘소환’이 다시 시작되면서 유통업계에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용산의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이와 관련, “가뜩이나 침체된 경기로 전자 유통업계가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세무 당국마저 벌써 4년이나 지난 자료를 뒤져가면서 오라 가라 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한 유통업체 사장은 “거래 자료를 남겨서 입증이 되면 다행이지만 실수라도 자료가 없을 경우 소명이 되지 않으면 고스란히 치명적인 세금을 추징당할 수밖에 없다”며, “거래처가 다양해 언제 어느 세무서에서 소명요구가 날라올 지 몰라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사장은 특히 “소명을 하려고 해도 이미 사라진 업체들이 많아 어려움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이맘때 조사한 결과는 올 1분기에 추징세액이 확정돼 개개인에게 통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규모는 1000여개사에 이르고 액수는 몇 백만원에서 몇 억원까지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상당수 회사는 이미 고의 부도를 내고 업종을 변경하거나 폐업을 해 현재 남아 있는 상인들에게는 실질적인 피해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과거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세무조사가 지속될 예정이어서 업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더욱이 지난해의 경우에는 하드디스크 업종을 중심으로 세무조사가 진행됐지만 올해 들어서는 모니터를 비롯한 다른 분야로도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에 따라 이미 용산의 ‘큰 손’들은 몸조심하느라 상당수가 이미 이른 바 ‘잠수함’을 탄 상황이다.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고 동태만 살피고 있다는 얘기다.

 “안 낸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만 어려운 시기에 오라 가라 하며 세무조사를 지루하게 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빠른 시일 안에 조사를 마무리 하고 유통가가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수시장 회복을 도와주는 길이라는 것을 세무 관계자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용산의 한 상우회장은 상인들의 바람을 이같이 전했다.

 <박영하기자 yh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