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원천기술을 이전받을 수 있는 곳은 이제 러시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현도빈 한·러과학기술협력센터장(49)은 “미국·유럽·일본이 더는 우리나라에 첨단 기술을 이전하지 않는다”며 러시아와 기술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반도체 일등국 자리를 빼앗긴 일본을 비롯한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이 한국에 WTO 등을 통해 무역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구 소련의 붕괴로 과학기술력의 쇠퇴를 겪었지만 여전히 항공, 우주, 원자력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국이란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취약한 수학·물리 등 기초과학 기술은 모든 산업 발전의 밑바탕이 됩니다. 이런 분야는 한 순간에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기술 이전이 절실합니다.”
현 센터장은 러시아가 우리에게 남은 최후의 과학기술 이전 국가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우리는 어떤 상품을 가져다 그것과 똑같이 만들어 지금의 위치에 왔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은 제품이 만들어지는 단계를 모두 파악하고 거기에 들어가는 요소 기술을 개발합니다.”
현 센터장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러시아는 일정 규모 이상의 연구소만 5000개가 있으며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연구소들과 제조시설 등을 합치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과학기술 관련 전문기관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상용화할 수 있는 응용기술의 부족과 정치적 과도기 상황에 따른 열악한 정부 재정지원으로 우리나라와 같은 상호 보완적 협력 파트너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는 “한·러 공동개발 기술을 채택한 국내 대기업의 에어컨이 지난 해까지 2370만대가 팔린 세계 1위 제품으로 자리잡았다”며 우수 기술협력 사례로 소개했다.
현 센터장은 “러시아에는 기계·통신 분야에서 서구에 없는 독창적인 기초기술이 많다”면서 “한국의 양산기술과 러시아의 원천기술이 만나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며 한·러 과학기술협력의 높은 가능성을 강조했다.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