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사·단말기제조사·음악권리자단체 등으로 구성된 MP3폰 저작권 협의체가 별다른 성과없이 지난 28일 ‘공식’ 해체됐다. 지난 2월 19일 ‘무료 MP3 파일의 제한재생’이라는 합의안의 이행 방안 도출을 위해 첫 모임을 가진 이후 100여일만에 중도 하차한 것이다.
이에따라 LG텔레콤과 소비자들이 줄곧 반대해온 ‘무료 MP3 파일의 제한재생’이라는 기존 합의안은 무의미해질 가능성이 커졌다. 협의체가 깨진 상황에서 SK텔레콤과 KTF가 이 합의안을 존중하며 LG텔레콤의 독주를 바라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 공식 논의의 장이 사라짐에 따라 MP3폰 문제가 음악 관련 단체들과 이동통신사 및 단말기제조사 간의 ‘파워게임’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들의 강력한 반발과 함께 MP3폰 저작권 문제는 극심한 혼란에 빠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LG텔레콤의 득과 실=협의체 해산은 일단 LG텔레콤에게는 ‘일정 부문의 승리’로 해석될 수 있다. 처음부터 합의안을 거부하고 무료 MP3폰을 경쟁사보다 먼저 출시한 게 결과적으로 자사에게는 이득을 가져다주고, 협의체 활동은 무력화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싸움은 이제부터라는 분석도 있다. 선수를 빼앗긴 SK텔레콤과 KTF가 협의체 해체를 계기로 ‘무료 MP3파일의 72시간 제한재생’이라는 조치를 해제할 경우 MP3폰 시장은 동등한 조건에서의 무한경쟁체제에 돌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SK텔레콤과 KTF측 관계자들은 28일 마지막 회의에서 “당분간은 합의안을 지키겠다”고 밝혔지만 이들이 LG텔레콤의 독주이후 안팎으로 적지 않은 ‘압박’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끝까지 준수할지는 의문이다.
◇제재 ‘불가피’=음원권리자를 대표하는 한국음원제작자협회의 윤성우 법무실장은 “LG텔레콤이 합의안을 번복하고 독자노선을 걷는 바람에 협의체가 해체됐다”고 맹비난하며 “LG텔레콤과 LG전자에 대해 휴대폰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포함, 다양한 제재조치를 취하겠지만 기존 합의안을 지키는 업체들에 대해서는 당분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무관심한 소비자들=그러나 협의체 해체에 대해 네티즌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무관심’일 정도다. 이는 협의체의 활동과는 관계없이 이미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무료 MP3를 제한없이 사용해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재 LG전자의 MP3폰(LP-3000)은 공식 전송프로그램을 통해 무료 파일 사용이 가능하다. 삼성전자 MP3폰(SPH-V4200)과 SK텔레텍 MP3폰(IM-7200)에서는 편법으로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무관심’은 협의체의 출범 근거가 된 ‘무료 MP3 파일의 제한재생’ 합의 당시 배제됐던 소비자들이 애초부터 협의체 활동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는 사실을 반영하기도 한다.
모바일 전문 커뮤니티 세티즌의 정석희 과장은 “이슈를 제기한 음원권리자단체들이 적극적으로 타협점을 찾기 보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는데 주력하다 보니 소비자들의 반발과 함께 관심권에서 벗어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모두가 ‘손실’=이해 당사자마다 득실은 다르겠지만 논의의 장이 사라졌다는 사실 자체는 모두에게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비록 협의체가 절차상, 운영상 문제로 결과물없이 지지부진한 논쟁만 거듭했을지라도 ‘IT 발전과 저작권 보호’의 중간점을 찾기 위한 의미있는 모임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MP3폰 협의체 운영과정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며 “정부가 많은 노력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논의의 중요한 축인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것에 실패한데다 합의안의 도출과 유지 과정에서도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한 점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할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정진영기자 jych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