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기술벤처들, 생산자금 없어 발만 `동동`

국내외로부터 물량을 수주한 기쁨도 잠시, 중소기업 사장들의 가슴이 돈가뭄으로 시퍼렇게 멍들고 있다.

 “제품개발을 끝내고 일단 판로까지 개척해 놓았는데 제품을 만들 자금이 부족하니 답답합니다.”

 지난달 대규모 해외수주를 받은 경북지역 벤처기업 C사 개발실장 H씨의 말이다. C사는 얼마 전 가스누출 감지 및 차단기를 개발한 뒤 국제특허까지 받고 지난 4월 중국의 가스설비업체와 430억원 상당의 수출계약을 맺었다.

 그야말로 대박의 기회를 잡았지만 기쁨도 잠시,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에 부딪혔다. 일단 7월말까지 납품해야할 1차 물량은 그럭저럭 생산을 끝내놓았지만 8월부터는 월 15억원씩 투입해야 할 원자재비와 생산비를 전혀 못구했기 때문이다.

 이 업체의 경우 오는 10월 독일에서 열리는 세계가스포럼에 주 발제자로 초청될 만큼 기술력과 제품력을 인정받은 업체다.

 이처럼 우수한 제품력을 갖고 판로까지 뚫어놓고도 생산자금을 제때 수혈받지 못해 발을 구르는 지방의 벤처기업들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 업체의 상당수는 대부분의 자금을 제품개발에 쏟아 부었으며, 정작 개발 제품을 판매하기 위한 생산자금과 마케팅 자금은 제때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다. 캐피털들도 당장 매출이 없고 자본금이 낮다는 이유로 선듯 생산자금을 대주길 꺼리고 있다.

 충북 오창에 본사를 둔 소형모터 전문업체인 T사는 최근 카메라 완제품기업인 S사와 자동차부품업체 T사로부터 소형 모터를 월 560만개씩 납품하는 계약을 체결했지만 설비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이 업체의 경우 운영자금을 제외한 생산설비에만 8억∼15억원의 자금이 필요해 투자가를 찾아 나서고 있지만 좀처럼 투자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구지역 한 대학의 창업보육센터 입주업체인 A사는 최근 국내 최초로 차세대 금속이라고 할 수 있는 마그네슘 합금의 새로운 표면처리기술을 개발해 화제를 모았다.

 이 업체가 개발한 기술은 휴대폰 케이스를 비롯해 플라즈마디스플레이(PDP) 프레임 등 각종 전자제품과 기계부품 등에 활용할 수 있는 마그네슘합금의 표면을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처리하는 기술이다. 전문가들로부터 상용화될 경우 산업적인 엄청난 파급효과가 예상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이 회사는 기술의 우수성을 알고 국내외 업체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지만 10억여원이 소요되는 공장설비자금이 없어 밀려드는 주문생산 의뢰를 당분간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그 외 부산의 IP카메라업체인 P사도 최근 CCTV와 DVR를 대체할 IP카메라를 출시했지만 5억∼7억원이 소요되는 생산설비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못하고 있다.

 또 경북 구미에서 유기EL과 포터블 멀티미디어 플레이어(PDP)를 개발한 B사도 최근 해외박람회를 통해 제품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수주요청이 잇따르고 있지만 당장 생산자금 10억원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구=정재훈기자 jh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