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N재팬 소식은 최근 나를 가장 설레게 하는 뉴스 중 하나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옛말이 딱 맞다. 힘든 시기에 시작해서 어렵게 이끌어 온 사업이기에 결실의 열매가 더욱 달게 느껴진다.
일본 비즈니스는 지난 2000년 9월 한게임 진출로 시작됐다. 한게임재팬과 네이버재팬이 독립법인으로 진출해 현재는 NHN재팬으로 합병했지만, 많이 관여했던 한게임재팬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당시 국내 업체들이 대부분 중국 시장을 타깃으로 해외 진출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중국은 시장 규모면에서는 매력적이었지만 산업도약의 시기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뛰어든 업체에 비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업체수가 적었다. 반면 일본은 무선 인터넷 사용이 일반화된데다 브로드밴드가 보급되면 엄청난 구매력을 지닌 시장이 되리라 확신했다. 무엇보다도 당시 일본에는 온라인게임 시장 자체가 전무했기에 교두보 확보 차원에서 깃발을 먼저 꽂는 일이 중요했다.
여기에 일본 유학 후 한게임에 합류했던 천양현 사장(현 NHN재팬 CEO)이 총대를 멨다. 혈혈단신의 천 사장은 인력확보부터 사무실 마련,영업까지 고군분투하며 사업기반을 마련했다. 당시 일본에는 인터넷 비즈니스에 대한 마인드가 없던 시절이라 더욱 힘들었다.
사업 체크를 위해 두 달에 한 번 정도 일본을 오갔다. 매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도 모자란 상황이었지만 한국 또한 급박한 현안들이 많아 자주 챙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출장마다 천사장과 같은 호텔 방에 묵으면서 밤새 사업 이야기를 나눴다.
동시접속 4000명에서 주춤하던 한게임재팬이 2002년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상승신호를 보였다. 무엇보다도 정체상태에 머물던 일본 인터넷 인프라 보급이 확산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탄력 받기 시작한 일본 비즈니스에 성장 동력을 달아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도 넷마블 등 후발 주자들의 추격으로 시장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재정이나 인력적으로 그리 넉넉한 상황이 아니었다.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법. “기회가 많은 곳에 인재를 투입하라”라는 말도 있듯이, 2002년 12월, 10여명의 핵심개발 및 기획인력을 ‘특공대 파견’의 심정으로 일본에 전격 투입했다. 거주지 마련 등 기본적인 준비 작업도 없이 긴박하게 추진된 일이었다.
당시 철저한 현지화 모델을 채택했던 한게임재팬은 현지화 작업의 기술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전에도 여차하면 한국 인력을 투입했었지만 임시 해결책이다 보니 악순환만 되풀이되는 것 같았다. 결국 투자였다. 기회가 있는 시장에 장기 투자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결과적으로 ‘특공대’는 맹활약을 했고, 이는 현지화 전략의 중요한 성공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이듬해 3월 하늘 같았던 야후재팬을 앞지르고 그해 12월 한게임재팬은 동시접속자수 5만 명을 달성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라크나로크’ 외에 동시접속자수 5만 명이 넘는 온라인게임이 없었다. 그날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한 천사장은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다.
되돌아보면 2년간이나 시행착오를 겪었던 당시 일본진출이 시기상조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먼저 나간것은 현지화 전략이 중요한 해외 비즈니스에서 일본 유저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했고, NHN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