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소재가 경쟁력이다]소재강국 없인 부국강병 없다

21세기 들어 세계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부품과 더불어 IT 소재 산업이 우리 경제의 신성장 동력원으로 부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생산은 증가했지만 고용은 오히려 줄어들어 한국 경제의 고용 능력이 외환 위기 이후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 방법의 일환으로 부품·소재 산업 육성을 통한 고용 창출을 제안하고 있다. 또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우리의 주력 수출 제품에 대한 부품·소재 수입 의존도를 줄이지 않는 한 무역수지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IT소재 산업의 ‘자주독립’없인 ‘부국강병’을 꿈꿀수 없다. 21세기 먹거리로 불리는 디지털 TV·디스플레이·미래형 자동차·차세대 반도체·차세대이동통신 등 차세대 10대 성장동력을 키워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열자는 정부의 목소리는 일성에 그칠수 있다.

<>대일무역적자 악화= 코트라는 올해 우리나라의 일본시장 점유율이 4년만에 5%대로 올라서 대일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 1분기 우리나라의 대일수출은 5743억엔으로 15.3% 증가해 중국(14.3%)과 미국(-3.6%)의 수출 증가율을 앞선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대일 무역적자는 오히려 크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분기 대일 무역수지는 82억달러 적자로 사상 최대 적자를 냈던 지난해 같은 기간(61억달러)보다 34.4% 늘어났다.

이처럼 우리나라 대일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 대일무역수지가 오히려 악화되는 것은 IT소재·부품·기계 등의 수입 의존도가 높은 것이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대일 수출이 늘수록 대일 수입은 늘어나는 기형적인 한일 무역 관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가 2008년 목표로 진행중인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 무역관세 철폐로 일본 부품을 포함한 IT 소재 가격 경쟁력은 그 만큼 높아져 국내 부품·소재 기업들의 입지는 줄어들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IT 소재 산업 활성화가 시급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산업 육성 깃발 = 지난해 이맘때인 5월 28일 오전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산업자원부 윤진식 전 장관은 업계 및 공공 연구기관의 주요 인물들과 긴급 회동을 가졌다. 이날 모임에는 삼성SDI 홍순직 부사장·만도 오상수 사장·LG화학 김종팔 부사장·대우종합기계 양재신 사장·전자부품연구원 김춘호 원장 등 주요 인물들이 배석, 부품·소재 대일 역조를 해소할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다.

다음달 6일부터 9일까지 예정된 노무현 대통령의 일본 방문에서 나누게 될 한일자유무역협정(FTA) 등 매우 중요한 경제 사안과 관련 부품 소재 종사자들의 현장감있는 목소리를 폭넓게 듣고 양국 정상회담에서 의미있는 결론을 얻어내기 위해서였다.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도 올해를 부품·소재 글로벌화의 원년으로 삼고 중견·대형 부품·소재 기업들의 기술개발 참여를 대폭 확대해 이들 기업이 글로벌 부품·소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이처럼 발벗고 나서는 것은 한·일 FTA 체결을 앞둔 시점에서 부품·소재 산업의 대일 역조 해결없이는 향후 미래 경제 성장을 담보할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기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최근 “기업총수와의 간담회에서 부품소재산업이 너무 취약해 걱정이다. 대기업들도 체계적으로 연구해 중소 기업과 함께 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좋은 방안들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할 정도다.

정부는 부품·소재 산업의 국산화를 위한 정부 지원 금액을 지난해 보다 18% 늘어난 1328원대로 확대했다. 특히 차세대 성장산업을 위한 전자정보소재 등 소재분야을 신규과제로 선정, 지원을 집중할 방침이다. 산자부는 또 한국부품소재산업진흥원을 내년 설립, 그동안 소외돼온 부품·소재 기업에 대한 밀착 지원을 적극 펼쳐, 우리 경제의 펀더멘틀을 대폭 강화할 계획이다.

<>동북아는 전쟁 중 = 중국은 최근 2∼3년 동안 한국·일본 업체 등에 내리고 있는 반덤핑 제소·판정의 상당부분을 화학·철강 등 부품·소재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이 분야에 대한 중국 측의 육성 의지와도 상관이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은 또 내수용에 한해 세트업체들로 하여금 자국 생산 부품·소재 비중을 30%로 의무화해, 한국을 비롯 선진국의 부품·소재 업체의 중국 진출을 적극 유도해 기술 확보에 주력함으로써 중하위 기술 수준의 경쟁력을 향상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일본도 최근 제조업의 부활을 꿈꾸고 반도체·디스플레이·디지털가전 등 차세대 성장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전기 전자의 경우 한국와 중국에 상당 부분 경쟁력을 상실했지만 일본은 IT 소재·정밀기계류·부품 등 분야에서의 세계적인 경쟁력을 바탕으로 메이드인 재팬의 영광을 반드시 실현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일본은 IT소재 등 자국 기술 해외 유출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IT 소재 특허를 무기로 세계 제조업 패권을 다시 한번 쥐겠다는 야심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한반도를 동북아에서 IT소재·부품 산업의 공급 기지로 삼고자 기업 육성 및 선진국의 투자 유치에 발벗고 나섰다. 특히 우리나라가 일본(고부가가치 핵심부품·소재)과 중국(중하위 중저가 제품)간 샌드위치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선 일본의 경쟁력 하락이 예상되는 분야 내지는 제품을 중심으로 기술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1328억 원의 정부 지원 자금은 부품·소재 분야 대기업들이 올해 쏟아붇는 시설 및 연구 개발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종합부품업체인 삼성전기는 1625억원, IT소재 산업을 미래승부 사업으로 선정한 LG화학은 227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따라서 정부가 부품·소재 분야를 육성하기 위해선 지금보다 지원 금액 규모를 더 늘리고 중소 IT 소재 기업을 대상으로 시혜차원에서 나눠주기식 지원 보다는 가능성있는 기업을 발굴하는 등 선택과 집중의 지원 전략과 현장형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우고 있다.

◆인터뷰/부품소재통합연구단 주덕영 단장

“지금 한국은 중국의 급격한 경제 성장에 더해 2005년 한·일간 FTA체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FTA 협약이 체결되면 일본제품의 무차별한 수입이 예상됩니다. 그런데 한국은 차세대 산업용 핵심 소재의 약 7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외형적으로는 고도 성장을 하고 있지만 실제 핵심 소재에 있어서는 거의 전부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죠”.

부품소재통합연구단 주덕영 단장(생산기술연구원 원장)은 이같이 밝히며 소재 산업의 열세가 IT산업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비교적 높은 기술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디스플레이 분야도 소재 국산화율이 70%, 고주파 부품 66.7%, 2차 전지 81.3% 수준이란 것이다.

주 단장은 “IT 소재 산업에서 우리나라 핵심 기술 경쟁력은 주요 선진국의 65%, 가격과 품질을 포함한 종합경쟁력은 85% 정도에 머물고 있다”며 우리의 현 상황을 진단했다. 특히 그는 부품·소재기업 대부분이 규모의 영세성과 수요업계와의 전속적 거래, 독자적 기술 개발과 자금조달 면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가장 커다란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따라서 그는 나름대로 IT소재 산업 육성을 위해선 대기업과 부품업체간 협업 정신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부품산업과 소재산업의 동반성장을 위한 공급망 구축이 필요합니다. 소재는 부품으로, 부품은 시스템에 적용되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개발만으로는 한계에 봉착하기 십상이지요. 따라서 시스템업체와 소재기업간 상호협력 체계를 구축, 서로의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연구분야 개발에 매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 단장은 또 소재 산업은 특성상 장기적이면서도 투자위험이 크고 높은 기술력이 필요 사업이어서 자금력과 기술력이 부족한 중소소재 기업만으로는 소재 개발에 어려움이 크다며 대기업들이 소재 산업에 뛰어드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단, 국내 소재 개발 업체들 간,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기술적인 상호협조와 연계를 통해 기초소재업체 개발을 위한 공동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주 단장은 “IT소재 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가 MCT-2010 사업을 적극 전개하고 있다”며 “그러나 아쉬운 점은 정부의 기술개발 지원사업이 단기간 내에 매출증대 효과를 보이는 과제에 대거 집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IT 소재산업은 개발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분야라서 단기적인 연구개발 효과를 보기 어려우니 정부는 10년 후 국가의 미래를 이끌 핵심 소재를 선정,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그는 “특히 정부 주도의 연구개발(R&D) 지원·사업환경 조성·업계 상호신뢰성 및 인력 양성 지원·국제교류를 통한 외국기업 기술 습득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원이 함께 수반돼야 중소 벤처 소재 기업을 효율적으로 육성할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휴대폰·인터넷·디스플레이·2차전지 분야의 강세에 힘입어 IT 강국으로 부상한 것도 한국 소자 업체들의 공격적인 투자의 결과입니다. 소재산업이야말로 IT산업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새로운 소재개발은 산업전반에 광범위한 파급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이 분야의 연구 개발과 투자가 매우 중요합니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