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 보조금 지급 금지 규제의 실효성이 새삼 도마 위에 올랐다. 법으로 엄격히 금지했음에도 불구, 이동전화사업자들은 각종 편법을 사용했고 결국 영업정지라는 극약 처방을 받았다. 엄연한 법조항을 비웃은 사업자들도 잘못했지만 현실과 맞지 않는 법규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또다시 제기됐다. 무엇이 문제인지, 대안은 있는지 3회로 짚어본다.
‘하루평균 87건’ 지난 3월에서 5월까지 3개월간 이동전화사업자들의 단말기보조금 지급 금지 위반건수가 7862건에 달했다. 통신위원회의 적발건수만이어서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통신위에 따르면 사업자들은 막대한 과징금 부과와 아울러 행위 중지를 명령한 지난 2월 27일 당일에도 보조금을 지급했다. 최근엔 더욱 지능화해 사업자들은 단속의 손길이 닿기 힘든 법인 판매, 인적 판매, 가두 판매 등을 통해 보조금을 지급했다.
사업자들이 보조금 지급을 금지한 전기통신사업법을 헌신짝처럼 여긴다는 비판이 현실로 드러난 순간이다.
전혀 다른 시각도 있다. 강력한 규제와 수차례의 경고에도 불구, 이렇게 많이 적발된다는 것은 그만큼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다는 지적이다.
“다른 회사가 보조금을 주는데 우리만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법을 위반한 것이야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치열한 경쟁상황에서 시장과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이동전화사업자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이다.
단말기 보조금은 지난해 3월 법으로 금지됐다. 이동전화사업자의 약관 규제라는 제한된 형태지만 보조금 금지는 2000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단말기 교체로 부품 수입이 늘어나 무역역조를 심화시키며 선발사업자가 가입자를 독차지해 생기는 시장 왜곡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보조금 지급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내수 위주의 단말기 제조업체들의 대외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가입 장벽이 낮아 청소년이 무분별하게 가입한 사회풍토도 문제였다.
초기만 해도 이러한 명분은 설득력을 얻었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부품무역 역조도 활발한 휴대폰 수출활동엔 불가피했다. 단말기 제조업체의 기술경쟁력도 이전부터 꾸준히 높여온 것으로 단지 보조금 금지만이 이유는 아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휴대폰은 이제 필수품이 됐다.
결국 보조금 금지의 명분은 이동전화시장의 왜곡 문제로 좁혀진다. 이러한 우려는 아직도 유효하다. 자금력이 풍부한 선발 사업자가 보조금을 앞세워 가입자를 유치할 경우 후발사업자들은 사실 버티기 힘들다. 하지만 극단적인 방법이기는 해도 보조금 차등이라든지, 다른 유효경쟁정책 수단을 동원하면 시장 왜곡 현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
정작 문제는 이동전화사업자들이 저지른 법 위반의 대가를 유통업체, 특히 단말기 업체가 고스란히 짊어진다는 점이다. 단말기업체들은 단 1원의 보조금을 쓰지 않고도 이동전화사업자가 받은 영업정지 조치로 제품을 공급하는 길이 끊기는 벌을 받았다.
휴대폰 제조업체들은 따라서 보조금 금지 자체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엉뚱한 피해도 억울하지만 비즈니스에 가장 중요한 ‘시장 예측’이 어렵다는 하소연이다. 공정거래법으로도 충분히 보조금을 제한할 수 있는데 ‘옥상옥’을 만들어 시장의 불확실성만 높였다는 지적이다.
LG전자 관계자는 “보조금 문제가 터질 때마다 단말기 업체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며 “정부의 규제 논리가 시장 논리를 지배한 실정에서 시장의 불확실성만 가중시켰다”고 말했다. 팬택&큐리텔 관계자도 “보조금 사용으로 서비스업체의 영업정지 결정이 내려지면, 공급계획과 재고관리가 어려워진다”며 “사업자의 보조금 사용을 완벽하게 규제하든지 아니면 정부가 보조금 운용의 묘를 살려줬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보조금 금지에 대해 선발 이동전화사업자는 반대, 후발사업자는 찬성한다. 그러나 후발사업자도 선발사업자에 대한 적절한 제한만 있다면 원칙적으론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조금 금지 재검토 주장에 대해 통신위 관계자는 “시장 포화 상태에서 보조금이 경기부양책이 될 수는 없고 차라리 이 돈을 신규 서비스 투자와 이를 통한 단말기 수요 확보에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옳은 방향이다.
문제는 정부의 잇따른 독려에도 불구, 사업자들의 신규 서비스 투자는 좀처럼 진척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차피 내년 말까지 시효인 금지 법안인데 그냥 가는 게 낫지 않으냐”는 현실론도 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 단말기 업체와 유통업체들은 언제 떨어질 지 모를 불똥에 불안해 해야 한다. 실효성도 낮고 준수에 따른 법익도 적은 법이라 판단한다면 내일 끝날 법이라 하더라도 오늘 개선하는 게 순리라는 지적이 날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김익종기자 ij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