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법규 안 지킨다고 법을 없앨 수 없다.”(통신위 관계자)
“지킬 수 있는 법이 아니다.”(단말기 업체 관계자)
전기통신사업법의 단말기보조금 지급금지 조항의 폐지에 대해 정부와 업계의 시각차가 이처럼 뚜렷하다.
정부는 법보다는 사업자의 범법을 문제라고 보는 반면, 업계는 법 자체가 문제라고 본다. 이렇다 보니 해결책을 찾기 힘들다.
정부는 보조금 지급금지 자체에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지만 현실적으로 숱한 문제를 만들고 있어 내심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고민의 흔적은 법에 이미 나타났다. 법 개정 당시 보조금 지급금지 조항을 2006년 3월로 한시적으로 적용하도록 못박은 것. 한시조항은 보조금을 현실적으로 금지할 수 없다는 상황 인식과 금지를 통해 시장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절충한 것이다.
연속성이 중요한 법에 한시 규정이 합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우선 나왔다. 공정거래법으로도 충분히 규제할 수 있는데 굳이, 그것도 한시적인 법을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예외조항 신설도 마찬가지다. WCDMA단말기와 같은 신규서비스를 활성화하기 위해 예외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법으로 금지해 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외조항을 신설한 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 규제라는 점을 어느 정도 시인한 셈이다.
사업자들이 위법을 저지르는 것은 무리한 경쟁에서 비롯됐으나 한시법 자체를 무시하는 경향도 일부 작용했다.
자원낭비, 단말기업계 경쟁력 향상, 이용요금 전가 등 당시 보조금을 금지한 이유가 유효했느냐는 논란도 있다.
정부는 상당한 효과를 봤으므로 유효하다고 주장하나 항목마다 실증적인 근거가 빈약하다.
단말기업계는 되레 “단말기업계의 경쟁력은 글로벌한 경쟁에서 쌓은 것이지 보조금 지급 때문만은 아니었다”면서 “최근 단말기업체의 경영난이 가중된 상황에서 보조금 금지는 도리어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조금 지급금지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산업계의 목소리가 높으나 현실화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영업정지를 매긴 정부가 그 근거를 없애는 작업에 나서기 곤란하다. 당장 책임론에 부딪힌다. 17대 국회가 이 법조항을 폐지할 수 있으나, 시효가 정해진 법이라 그냥 가려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이유로 보조금 금지를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예외 조항을 폭넓게 함으로써 현실에 맞게 규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산업계는 신기술 단말기뿐만 아니라 구형 단말기에 대해 일정 기준에 따라 보조금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제조업체의 보상판매도 사업자의 보조금 지급으로 간주되는 조항 등 빡빡한 규제도 다소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보완이 없다면 과다한 과징금이라도 내려야 한다는 게 사업자들의 지적이다.
모 이동전화사 관계자는 “보조금 금지 위반시 받은 과징금이 재벌기업의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과징금보다 높고 자칫하면 대표이사가 구속될 수도 있다”면서 “보조금 지급이 그것보다 더 나쁜 것이냐”고 반문했다.
문제는 이 같은 보완이 결국 보조금 지급금지 조항 자체를 무력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럴 바엔 폐지가 더 바람직하다.
산업계 관계자는 “보조금 금지의 실효성에 대한 분석 결과 효과가 있다면 정부가 더욱 강력한 규제책을 가져가야 하지만, 효과가 검증되지 않으면 당장 폐지해야 할 것”이라면서 “이런 게 더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냐”고 되물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김익종기자 ij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