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 한글인터넷](13)초등학교 한글전자우편 활용 교육

“한글을 쓰니 인터넷이 너무 쉬워요”

“oo야, 너 그 게임 해봤냐?”, “너 왜 메일 답장 안보내?”, “날씨도 더운데 우리 끝나고 아이스크림 사먹을래?” 지난 14일 오후 문백초등학교 본관 3층 컴퓨터 2실. 정규수업이 끝나고 별도의 컴퓨터교육을 받기위해 모여든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대화소리에 조용했던 교실은 금방 활기로 가득찬다. 대부분 3∼5학년인 아이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웹서핑을 하는데 마우스와 키보드를 조작하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문백초등학교는 몇년전부터 특기적성 교육으로 방과후 컴퓨터를 가르치고 있다. 매주 월, 수요일에 한시간씩 저학년반, 고학년반 등으로 나눠 컴퓨터 수업을 한다. 커리큘럼은 컴퓨터 기본 사용법과 문서작성법, 인터넷 정보검색법 등으로 다른 학교의 컴퓨터 교육과 다를바 없지만 문백초등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는 독특한 내용이 있다.

바로 한글인터넷과 한글 전자우편. 이 수업은 일반적인 인터넷 활용교육에서 영문 접속과 영문 이메일을 통해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90% 이상이 한글을 활용해 인터넷을 드나들고 한글 전자우편으로 과제를 제출하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 주소창에 영문사이트명을 입력해 접속하는 것이 아니라 간단하게 한글주소를 입력해 찾아간다. 어린이 교육사이트는 물론 요즘 웬만한 사이트는 한글주소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못찾아가는 사이트가 없다.

“한글을 인터넷 접속과 메일에 활용하면서 수업속도가 빨라진 것은 두말할 것도 없죠. 그러나 그것보다 더 좋아진 것은 혼선이 줄어들어 수업효율이 극대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기 적성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홍종현 정보교육부장은 3년전만해도 수업을 듣는 전체 아이들이 인터넷 사이트 한곳에 접속하려면 15분 이상이 걸렸지만 한글주소를 이용하면서 1분 미만으로 무려 20분의 1이상을 단축했다고 한다.

“생각해보세요. 이전에는 서울시청 사이트를 들어가려면 ‘더블유 더블유 더블유 쩜 서울 쩜...’ 이런 영문 사이트명을 일일이 알려줘야합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칠판에 써주기도 해야하고, 모르는 아이들을 일일이 가르쳐줘야하죠. 그래도 철자가 헷갈려 틀리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그러다보면 뭘 제대로 가르치기도 전에 사이트 접속하는데만 10분이 훌쩍 넘어버립니다.” 그것과 비교하면 요즘은 사이트 접속하는게 일도 아니다. “요즘 초등학교 입학하면 한글 모르는 아이들은 없잖습니까. ‘자, 주소창에 서울시청 입력하세요’ 하면 몇십초만에 수십명의 아이들이 전부 접속해버립니다. 이만큼 효과적인 교육이 어디있습니까”

아이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물어보니 딴짓하는 두어명을 빼고는 모두 한글주소가 좋다고 손을 번쩍 든다. 4학년생인 이유진양은 “한글로 접속하니까 영어보다 자판치는 것도 훨씬 쉽구요, 시간도 적게 걸려서 좋아요”라며 수줍게 웃는다. 야후, 다음, 프리샘 등의 사이트를 즐겨찾는 유진양은 수업시간 뿐만아니라 집에서 인터넷을 할때도 대부분 한글주소로 접속한다. 그러다보니 영문주소만 있는 사이트에는 웬만하면 안들어가게 된다고. 5학년에 재학중인 권경오군도 마찬가지다. 지난해에 이어 2년째 이 수업을 받는 권군은 컴퓨터를 아주 능숙하게 쓰는 편에 속한다. “영문으로 입력할때는 오타가나거나 유사한 사이트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글을 쓰면서 그런 경우가 거의 없어졌다”고 똑부러지게 말한다.

이것 말고도 이 수업시간에는 아이들과 선생님만이 통하는 자판의 한글용어가 있다. 백스페이스(backspace)키는 왼쪽지우개, 딜리트(delete)키는 오른쪽지우개로 부른다. ESC키는 아예 발음을 응용해 독창적으로 이쑤시개라고 이름을 지었고 스페이스바는 길쭉막대라는 이름을 같이 지어냈다. 이 역시 수업속도를 빠르게 하고 효율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요즘 아이들이 재미를 붙이고 있는 수업은 한글 전자우편. 이미 다음이나 야후, 한미르 등의 전자우편을 하나씩 갖고 있는 아이들은 저마다 독특한 한글 전자우편을 하나씩 갖고 있어 친구들 사이에 자랑거리다. 유진양은 ‘유진천사@메일’, 경오군은 ‘깡패경오@메일’, 장난꾸러기 정재문(3학년)군은 ‘나는누굴까@메일’, 컴퓨터를 너무나 잘해 언니오빠들과 같이 배우고 있는 2학년 컴도사 이지혜양은 ‘예쁜지혜@메일’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10번 전자우편을 쓴다고 하면 그 중 8번이상은 한글을 사용해요. 쉽고 편하고 또 나를 잘 표현해주는 것 같아서요”

 경오군의 100점짜리 대답이다. 재문군은 “저는 엄마가 나중에 크면 외국유학 보내준다는 그랬는데요. 그래도 한글로 전자우편 보내는 일이 좋아요”라며 아이다운 대답을 해 웃음을 자아냈다.

홍교사는 요즘 아예 과제물을 한글 전자우편으로 제출하라고 한다. 아이들이 재미있어할 뿐만아니라 우편 도달률이 높아 수업에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전에 영문메일을 사용할때는 과제물을 실컷 완성하고도 메일주소 입력이 잘못돼 도착하지 않는 메일이 10건중 4건이나 됐다고 한다. 그러나 한글로 바꾸고 나서는 한건의 누락도 없이 모든 메일이 수신된다는 것. “실컷했는데...라며 안타까워하는 아이들을 보지 않아서 좋다”는 것이 홍교사의 말이다.

이날 수업내용 역시 ‘한글 전자우편과 정보검색’. 홍교사는 칠판에 우리나라 국보 6호부터 국보 9호까지를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국보이름과 위치하고 있는 곳, 사진을 찾으라고 써놓는다. 아이들은 씨익 웃으며 너무 쉽다는 표정으로 정보검색과 사진파일 찾기를 시작한다. 5분이 지나자 누군가가 “선생님, 다 했어요.” 했고 연이어 2∼3명의 아이들도 ‘과제완료’를 외친다. 교실앞 프로젝션TV를 보니 ‘홍종현@메일’ 우편함에 ‘유진천사’, ‘나는누굴까’, 게임짱’ 등 한글 아이디를 한 아이들의 메일이 쌓여있다. “아이들이 너무 능숙하게 잘하는 것 같다”고 홍교사에게 말을 건네자 “한글을 컴퓨터 수업에 활용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강조한다.

1시간 아이들의 수업을 지켜보면서 그동안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었던 한글을 이용한 인터넷 활용 효과나 정보격차해소와 정보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한글의 역할이 생생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이렇게 쉬운 한글이 있는데 인터넷에는 왜 영어주소가 더 많아요?”, “다른 전자우편에서도 한글을 자유롭게 썼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순수한 아이들의 얘기에 인터넷의 종주국은 미국이고, 그래서 영어를 쓰는게 너무 당연하다고 인정해온 어른들의 ‘고정관념’이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인터뷰]홍종현 문백초등학교 정보교육부장

 “컴퓨터를 가르치는 교사분들 상당수가 한글을 활용한 인터넷 수업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시간과 정보가 부족해 쉽게 시도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 커리큘럼과 교안만 제대로 갖춰진다면 일선 초등학교에서 한글인터넷, 한글이메일을 훨씬 효과적으로 교육할 수 있을 것입니다.”

3년째 문백초등학교에서 컴퓨터 특기적성 교육을 맡고 있는 홍종현 정보교육부장은 말로 떠드는 것 보다 한번이라도 한글주소와 한글이메일을 써보면 ‘한글 효과’에 매료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이전과 비교하면 한글이 있어 수업이 의도와 목표대로 100% 이뤄지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영어를 기본으로해서 교육할때는 수업진척도나 일관성은 물론 수업후 응용정도도 형편없이 떨어졌죠. 생소한 영어를 쓰다보면 처음 교육의도와는 달리 샛길로 빠지거나 다른데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글은 서로 이해수준이 비슷해 수업진행이 아주 잘 됩니다.”

홍부장은 우리나라의 효과적인 인터넷 정보화 교육을 위해 빠른 시일내에 초등학교 컴퓨터교육에 이같은 내용이 담겨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르치기 쉽고, 배우기 쉬운 것을 하지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아직 홍보가 안돼있고 교사들이 가르칠 수 있는 표준 교안이 없어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를 위해 홍부장은 3년전부터 시간날때마다 한글을 이용한 인터넷 교육과정을 교안으로 작성하고 있다. 올해 안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표준교안만 만들어지면 많은 교사들이 보다 쉽고 효율적으로 한글인터넷 수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무엇보다 요즘 한글인터넷을 위한 인프라들이 늘어나고 있어 다행입니다. 관공서나 기업들도 대부분 한글인터넷주소를 갖고 있어서 수업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한글이메일도 활용도가 늘고 있구요. 시간이 갈수록 더 좋은 환경이 되리라 믿습니다.”

몇 년 전부터 한글인터넷주소추진총연합회를 통해 한글인터넷 알리기 활동을 열심히 벌이고 있는 홍부장은 “그러나 사업자간 이해가 부딪히면서 한글의 유용함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며 “정부나 기업 모두 사용자 관점과 보다 넓은 시각으로 한글인터넷 문제를 접근해야할 것”이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미니캠페인]

캐시(cache), 캐시메모리(cache memory) → 시렁, 시렁 기억장치

캐시는 컴퓨터의 연산장치와 주 기억장치 사이에 두며 연산장치의 속도로 동작하는 고속 기억장치이다. 프로그램이나 데이터를 주기억 장치에서 블록단위로 캐시에 호출해 실행한다. 일반적으로 캐시의 속도는 주 기억장치의 수배에서 10배 정도. 또 기억용량은 수천분의 1에서 수백분의 1 정도이다. 캐시를 우리말로 번역할 경우 ‘시렁’이 된다. 시렁은 물건을 얹어두기 위해 방이나 마루의 벽에 건너질러 놓은 판을 말한다. 가까이서 쉽세 쓸 수 있는 것을 뜻한다. 캐시메모리는 ‘시렁 기억장치’로 불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