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경협의 상징적 사업인 개성공단 시범단지 입주를 앞둔 일부 업체들의 사업품목이 ‘전략물자 통제체제’ 핵심 품목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정부는 이를 방치하고 있다. 이에 따라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을 파악한 기업들 가운데 개성공단 입주 추진계획을 백지화한 사례까지 나타나 사태의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다.
16일 관계당국에 따르면 정부는 개성공단시범단지 입주자로 결정된 15개 업체 중 일부가 바세나르규약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인지하면서도 부처간 이견으로 혼선을 빚으며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들 15개 업체 생산품 가운데 잠재적으로 ‘전략물자’에 포함될 개연성이 큰 품목은 △밀링머신·절삭기 등 금형 제조장비 △커넥터·압출단자 등 전자 부품 △첨단 반도체 부품 △정밀 광학기기 △금속 기계 △첨단 소재 등이다. 특히 이들 업체는 이미 지난 14일 본 계약을 한 것으로 확인돼 미국 등이 이를 문제삼을 경우 향후 외교통상마찰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주한 미 대사관 상무관계자는 전자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개성공단 생산품목이 전략물자 수출통제 체제에 저촉될 수 있을 가능성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밝혔다. 그의 언급은 전략물자가 북한(개성)에서 생산되는 것과 현지로 흘러들어갈 가능성 등에 대한 우려로 해석되고, 동시에 한미 통상 관계에 돌발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음을 암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는 달리 통일부, 산자부 등 우리 정부의 내부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통일부 경협지원과 관계자는 “개성공단에서 생산한 품목이 북에서 무기로 전용되지 않게 철저하게 관리감독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산자부 전략물자관리과 관계자는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으나 이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혀 ‘개성공단 내 전략물자’를 두고 정부 내 엇박자가 있음을 드러냈다.
이 같은 분위기를 감지한 개성공단 1차입주 대상 업체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1년 전부터 개성공단 입주를 추진해온 모 업체는 최근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계획 자체를 포기했다. 시범단지 입주가 확정된 모업체의 관계자도 지난 14일 분당에서 개최된 설명회 직후 “금강산 관광사업도 중간에 말 실수 하나로 사업 자체가 중단된 전례가 있기 때문에 대북사업은 어떤 사업보다 안전하게 추진해야 한다”며 “문제될 소지가 있는 부분을 충분히 검토, 제거하고 업체를 선정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 결국 피해는 업체만 떠안는 꼴이 되지 않을까 불안한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손재권기자 gjac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