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자 문화혁명가’
인류의 생활환경과 문화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인터넷이 우리나라에서 상용화한 지 20일로 꼭 10년이 됐다. KT가 KAIST와 연구기관 등에 학술·교육 정보 교류용으로 제공한 ‘하나망’을 일반에 개방, 아시아 첫 인터넷 서비스 ‘코넷(KORNET)’을 시작한 것. 비로소 전국민이 거대한 인터넷 백본망에 연결돼 네트워크 세상에 첫 발을 내딛은 순간이었다.
인터넷은 1969년 미 국방부가 전세계 주요 거점에 흩어져 있는 보안용 네트워크과 컴퓨터를 연결하면서 탄생했다. 이를 일반에 공개해 통신규약(protocol)인 ‘TCP/IP’으로 연결하면서 급속도로 퍼져 나갔고 10년전 이날 우리도 동참했다.
KT에 이어 데이콤, 아이네트 등이 잇따라 전용회선과 전화모뎀을 이용한 인터넷 접속서비스를 내놓으면서 확산기에 들어섰다.
그러나 당시 속도는 느려터졌다.전화모뎀(다이얼 업, Dial up)으로 접속했기 때문이다. 현 인터넷 평균 속도의 백분의 일에도 못 미치는 9.6Kbps 속도였다.기업용 전용회선도 1.544Mbps(T1급) 속도였다.한달 사용료는 400만원을 넘었다. ‘atdt 014xx’ 등 일일이 손으로 명령어를 입력해야 해 불편했다.
전화 모뎀의 속도는 95년 28.8Kbps, 99년 56Kbps로 발전했다. 한때 인터넷의 총아로 불리다가 지금은 사라져가는 종합정보통신망 ISDN만해도 90년대 중반, 128Kbps가 고작이었다.
인터넷은 케이블모뎀이 등장하면서 제 틀을 갖췄다.
98년 두루넷 등이 케이블 모뎀 방식의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했다. 99년 기존 전화망을 활용한 ADSL를 하나로통신이 들고나와 KT와 경쟁에 들어가면서 연간 100%가 넘는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가격도 다이얼업 서비스보다 더 싼 파격적인 3만원대. 신생업체였던 하나로통신의 공격적 행보가 원동력이 됐다.
인터넷 사용자수는 99년 1000만명, 2002년에 2000만명을 돌파했다. 2004년 5월 현재 초고속인터넷 가입자수는 1150만명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초고속인터넷의 역사를 새로 쓰면서 IT강국으로 떠올랐다.인터넷 백본망 확충에 수천억원을 투입하고 각종 장비와 기술 개발이 잇따랐다. 세계 최고의 네트워크 기술은 한국에 집중됐고 인터넷망을 타고 소비자 손에 들어갈 각종 콘텐츠 개발이 폭증했다. 메트로 이더넷, VDSL 등 새로운 네트워크 개념도 선도했다.
인터넷 10년은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기업의 업무환경에서 개인 생활까지 모두 인터넷 환경으로 바뀌었다. 이젠 인터넷 없이 하루도 살 수 없는 인구가 2800만명이 넘는다. 메신저, 블로그, 아바타, 얼짱 등 새 문화가 등장했고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인터넷의 영향력이 증대됐다. 2002년 월드컵, 2003년 대통령 선거, 2004년 국회의원 선거 등이 극명한 사례다.
산업적인 측면선 포털, 게임 등 10조에 이르는 디지털 콘텐츠, 7조원에 이르는 인터넷 쇼핑 등 인터넷과 연계된 다양한 사업들이 등장했다.
만 6세 이상 전 인구의 65.5%가 주당 평균 12.5시간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으며, 학생층에서는 일일 평균 2.4시간인 TV시청시간보다 많은 시간을 사용해(중학생 3.1시간, 고교생 2.8시간) TV의 자리를 대체해 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이 이렇게까지 확산된 이유는 뭘까?
사회학적 분석도 이어졌다. 높은 교육열, 새로운 문화에 대한 빠른 적응력 등의 국민 정서가 그 이유로 꼽혔다. 여기에 온라인 게임, PC방, 인터넷 방송, 온라인 뱅킹과 증권 거래와 같은 신규 서비스가 보편화됐고 인터넷접속서비스업체(ISP)들간 치열한 경쟁과 아파트 밀집 주거 등 거주 환경도 작용했다는 분석도 따른다. 정부가 1995년부터 추진한 ‘초고속정보통신망 기반 구축 종합계획’을 시작으로 정책적 뒷받침도 한 몫을 했다.
역기능도 커졌다. 스팸 메일, 불법복제 및 음란물 홍수,인터넷중독 등이 사회문제가 됐다. KT에 따르면 자사망을 통해 유통되는 메일중 84%가 스팸이며 매 분기 4배 이상 증가하고 있다. 한국어 유해사이트가 무려 17만여개에 이른다.
그렇지만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인터넷의 순기능은 더욱 크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 향후 10년 과제는
IT강국의 위상을 향후 10년에도 이어나가기 위한 새 밑그림 짜기가 한창이다.
참여정부는 ‘유비쿼터스(u)코리아’를 새로운 10년의 목표로 내세웠다. 광대역통합망(BcN)과 차세대인터넷주소(IPv6), u센서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초고속인터넷에서 이뤄낸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전략이다.
KT, 하나로통신, 데이콤 등 기간통신사업자들은 초고속무선인터넷, 휴대인터넷(WiBro) 등을 중심으로 광대역의 개념을 무선으로 확대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겠다고 벼르고 있다. 즉, 언제 어디서나 초고속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유비쿼터스 환경을 만든다는 것.
인프라 고도화를 위한 준비도 한창이다. 기존의 통신망은 가정까지 광통신망으로 연결하는 FTTH와 100Mbps급 이상의 VDSL로 대체해 광대역화를 시도중이다. 인터넷프로토콜(IP)를 기반으로 디지털멀티미디어센터(DMC)와 연계해 통신과 방송을 융합하고 영상전화, 영상회의, 멀티미디어 메시지, 광대역 네트워크 기반 교육과 게임 등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사업자들 이를 위해 초고속인터넷을 기반으로 다양한 융합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달라며 한목소리다. 또 건전한 인터넷 사용문화가 자리잡아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윤창번 하나로통신 사장은 “지난 10년은 인프라 구축이었다면 앞으로는 콘텐츠”라면서 “통신과 방송을 융합할 수 있는 새로운 킬러앱을 찾아야하고 이를 위한 규제가 완화돼야 우리나라 인터넷산업의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상훈 KT 기간망 본부장은 “투자를 효율화하고 인터넷 사용을 생산적으로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면서 “인터넷 종량제와 이메일 총량제 등 새로운 인터넷 문화를 자리잡도록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인터넷 강국 이끈 주역들
인터넷 10년의 주역에는 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땀들이 녹아져 있다.
94년 첫 인터넷 상용 서비스 ‘코넷’을 기획했던 양재수 KT 강북본부 사업국장(45)은 ‘인터넷 전도사’로 통한다. 인터넷을 몰랐던 국민들에게 손쉽게 사용법을 알려주기 위해 ‘여보세요 인터넷’ 등 당시 수권의 활용서도 냈다. 아시아 처음으로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하다보니 아시아통신운영체(MAC) 인터넷분과의장 등 각종 국제회의를 이끌기도 했다. 양 국장은 “당시만해도 인터넷의 위력이 이렇게 확대될 줄 전혀 몰랐다”고 회고 했다.
인터넷 최초 가입자인 조용성(37세·사업)씨는 “당시 대학원생이었는데 논문을 위해 외국 자료가 필요해 인터넷 서비스가 생기자마자 가입했다”면서 “9.6Kbps라는 속도로 어떻게 검색을 했었는지 상상도 안간다”고 말했다.
이후 도입된 ISDN서비스는 교환기가 부족해 가입 희망자를 제 때 소화하지 못하면서 고객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가장 큰 계기는 99년 하나로통신의 ASDL보급. 물론 앞서 두루넷이 케이블모뎀으로 초고속인터넷서비스를 시작했고 KT도 ADSL 시범서비스를 했지만 3만원대의 파격적인 가격은 시장판도를 바꾼 것. 이같은 과감한 판단에는 신윤식 전 하나로통신 회장이 후발주자로서 KT에 차별화한 서비스와 가격이 아니면 살 수 없다며 강하게 ADSL을 밀어붙인 것이 되려 성공의 요인이 됐다. 물린 신 회장은 그 과정에서 장비업체와의 불미스런 일로 현재는 자리를 내놓게 됐다.
지금은 두루넷과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이용태 삼보 회장도 인터넷 주역중 한명. 초창기 데이콤의 CEO였던 경력을 살려 케이블망을 통한 인터넷 시장을 내다본 혜안을 가졌다는 평가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국내 초고속인터넷서비스 가입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