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정 탄생 100주년-첨단 디스플레이 총아로

“이 물질은 생산비는 높은 반면 판매는 거의 안 되고 수익성도 없다. 이 물질을 생산한 것은 과학자들의 부탁 때문이다.”

 독일의 화학 업체 머크의 연구개발 책임자는 1907년 이 물질의 생산은 ‘과학자들에 대한 서비스일 뿐’이라며 평가절하했다. 이 물질이 바로 오늘날 계산기·시계에서부터 휴대폰·모니터·벽걸이TV에 이르기까지 평면 디스플레이의 핵심 재료로 쓰이는 ‘액정’(liquid crystal)이다.

 올해로 액정이 상업 생산된 지 꼭 100주년이 된다. 머크는 이 액정 하나로 지난해에만 전세계에서 4억5000만유로(약 63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물론 액정 관련 제품이 상용화되고 매출이 본격 발생한 것은 액정 생산 후 50년 이상 시간이 흐른 뒤였다.

 ◇구석에 처박아둔 보물=오스트리아의 식물학자 프리드리히 라이니처는 1888년 벤조산콜리스테릴이란 물질이 섭씨 145도에선 결정과 액체의 중간 상태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화학자 오토 레만은 이 물질에 ‘액정’이란 이름을 붙이고 연구를 위해 독일 머크에 지원을 요청했다. 머크는 ‘과학의 발전을 지원한다’는 명목 하에 1904년부터 액정 물질들을 생산, 관련 연구를 도왔다. 이를 바탕으로 1920년대와 30년대를 거치면서 액정에 대한 많은 과학적 연구가 이뤄졌지만 이를 산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이 나오지 않아 30년대 이후 액정은 거의 사람들의 관심에서 잊혀져 갔다.

 ◇미국에서 르네상스=1968년 미국의 조지 헤일미어가 액정을 이용한 디스플레이를 공개하면서 액정 연구는 미국을 중심으로 다시 활기를 띠게 됐다. 액정을 사용해 저전압·저온 평면 디스플레이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 것. 1970년대에는 TN 방식의 액정 디스플레이가 등장했으며 1981년에는 STN 방식으로 발전했다. 또 각 표시화소마다 박막트랜지스트(TFT)를 설치, 고품질 컬러 구현이 가능한 능동형(AM) 방식의 TFT LCD도 등장해 STN 방식과 대화면 디스플레이의 주도권을 다퉜다.

 1990년대 들어 휴대폰·PDA·휴대형게임기 등의 등장으로 STN 방식 디스플레이가 폭발적 성장을 기록했으며 이에 따라 액정 매출도 폭증했다. 또 대화면 모니터·TV에 걸맞은 고해상도와 광시야각, 빠른 응답속도 등을 얻기 위한 액정 품질 개선 노력도 계속됐다. 머크·히타치·후지쯔 등은 1995년에는 IPS(In Plane Switching) 방식을, 1997년에는 VA(Vertical Alignment) 방식을 공동 개발, TV나 CAD용 대형 패널 구현을 가능하게 했다.

 ◇계속되는 경쟁=액정 생산 100년을 맞는 현재 LCD는 대형 디스플레이 시장을 놓고 PDP와 치열한 경쟁을 계속하고 있다. 저가의 대형 LCD 생산을 위해서 액정 업체들은 응답속도와 잔상 현상 개선, 광시야각 및 고화질 확보를 위해 액정 성능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머크의 한 관계자는 “응답 속도를 현재 16m/s에서 12m/s로 향상시킨 액정을 최근 개발했으며 향후 10m/s 이하로 향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LCD 강국’ 한국 시장을 둘러싼 액정 업체들의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머크가 최근 한국 등 아시아 지역에 3000만유로를 투자해 액정 생산 시설을 증설키로 했으며 경쟁사인 일본 치소도 경기도와 투자의향서를 교환, 한국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동진쎄미켐도 액정 개발에 성공, 국산화에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