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나진상가 18동에 위치한 프로텍스의 박완필 사장은 요즘 매장에 잘 출입하지 않는다. 고척동 전자타운에 있는 제 2매장은 아예 창고로 활용한 지 오래다.
“지금 용산의 컴퓨터 경기는 바닥이 아니라 지하입니다. 가게문을 열고 있을수록 손해죠. 그래도 어떻게 합니까. 직원들 월급 주고 식구들 먹고 살려면 뛰어야죠.”
그래서 박 사장이 택한 길이 ‘중고 PC’의 매입·수출이다. 최근 고착화 양상마저 보이고 있는 국내 PC 및 주변기기의 경기 악화는 이처럼 기존 유통상들의 업태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현재 나진상가에만 중고PC 취급 점포가 수십곳. 온라인 쇼핑몰을 겸하고 있는 업체까지 합하면 이보다 훨씬 많다는 게 이곳 상인들의 주장이다.
특히 내수경기 침체에 따라 일반 기업체의 휴·폐업이 늘어나면서 사무용 PC 및 주변기기 매물이 크게 늘고 있는 것도 중고 PC 취급업체의 급증세에 한 몫하고 있다. 프로텍스의 경우 한달 평균 30여곳의 기업체로부터 매물을 받는다. 다른 업체들도 물량이 10개가 넘으면 소형 트럭을 이용해 자체 수거에 나설 정도로 호황이다.
이들 기업체 매물은 재활용이 가능한 제품이 별로 없다. 따라서 간단히 손 봐 다시 국내 시장에 내놓기 보다는 수출용이 대부분이다. 박 사장은 “간혹 쓸만한 물건이 있다해도 새 제품도 구매를 꺼릴 정도로 컴퓨터 경기가 바닥인 상황에서, 몇푼 싸다고 누가 헌 PC를 쓰겠냐”고 말했다.
이들 제품이 수출되는 곳은 주로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 동남아 국가. 메모리와 하드 등이 모두 포함돼 있는 펜티엄급 본체의 경우 개당 5000원에 매입, 두배 가량의 마진을 남긴 뒤 전문 수출상이나 동남아 현지서 온 바이어에게 넘긴다.
모니터는 이보다 마진이 높은 편. 대당 4000∼5000원에 매입한 CRT모니터의 경우 상태가 좋을 경우 1만5000원까지도 받는다. 이들 폐모니터는 동남아 등지로 수출돼 현지 은행, 관공서 등서 단순 단말기로 변형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매물이 가장 많이 쏟아지고 있는 지역은 안산, 부천, 반월 등 수도권 인근 공업지대다. 지난해까지만해도 테헤란로 등 서울 시내 벤처기업들의 휴·폐업에 따른 서버 등 중대형 컴퓨터의 매물이 많았다. 하지만 올들어서는 일선 제조업체의 사무용 일반 PC의 매물이 급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제조업체들까지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하면서 이들로부터 나오는 매물이 의외로 많다”며 “거의 폐기물 상태의 컴퓨터들을 보면 최근까지도 이 업체들이 얼마나 어렵게 버텨왔는지 쉽게 짐작이 간다”고 말했다.
류경동기자@전자신문, nina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