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수출, 우는 내수’
상반기 국내 IT시장은 이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수출은 반도체와 휴대폰 등 주요 품목을 앞세워 사상 최대 호황을 누렸다. 반면 내수는 탄핵 정국과 총선과 같은 정치적 혼란은 젖혀놓더라도 통신·금융·공공·기업의 IT 투자가 잔뜩 움츠러든 데다 개인 소비도 위축되면서 업계 모두 힘들게 보냈다. 시리즈로 올해 IT산업 각 부문 결산을 통해 하반기 IT시장을 전망해본다.
◇내수와 수출 선순환 구조 끊겨=금융연구원은 최근 수출 증가→투자확대→고용창출→내수활성화의 경제 선순환 구조가 단절됐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부품과 설비의 수입의존도가 높은 IT업종이 수출을 주도한 데다 공장의 해외 이전이 가속화하면서 수출이 내수 활성화에 거의 기여하지 못한다는 진단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상반기 가전제품과 휴대폰의 수출 급증으로 인해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지만 내수시장만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상반기 각 백화점의 가전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감소하거나 1%대의 소폭 성장에 그쳤다. 가전매장의 철수를 검토할 정도다.
휴대폰업체의 경우 상반기 번호이동성 특수로 인해 한 때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호조를 보이기도 했으나 이달 영업정지의 여파로 하반기엔 다시 수출만 호조를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
투자도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와 같은 디스플레이 대기업을 제외하곤 잔뜩 위축됐다.
내수 경기에 영향이 큰 통신서비스투자만 해도 해도 KT그룹, 파워콤 등을 제외한 대부분 업체가 애초 계획에 미달했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다 보니 기업들도 IT비용 지출을 대폭 줄였다. 서버시장은 올 1분기에 지난해 4분기에 비해 10% 가까이 축소됐으며 2분기에도 비슷한 양상이어서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하다.
◇과당 경쟁과 업계 구조조정 가속화=내수 침체는 업체들의 출혈 과당 경쟁과 구조조정을 더욱 부채질했다.
가입자 포화 직전인 통신서비스시장은 번호이동성제도 도입을 계기로 서로 뺏고 빼앗기는 혈전을 벌였다. 수익성도 덩달아 악화돼 이동전화사업자들은 ‘클린 마케팅’에 합의하기도 했다.
경쟁에서 탈락하는 업체도 날로 늘어났다. 올 상반기에만 3개의 중소 휴대폰업체가 부도를 냈으며 중견업체인 세원텔레콤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대기업은 세계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며 성장세를 이어갔지만, 중견·중소업체는 중국 이후 마땅한 전략 시장을 찾지 못한 데다 금융기관의 자금 지원이 줄어들면서 상반기에 크게 고전했다.
통신서비스에 이어 통신기기, 디스플레이 등의 IT업계 전반에서 인수합병(M&A) 논의가 본격화했다.
◇하반기가 관건=희망도 보였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휴대폰 등 IT핵심 품목의 수출이 늘어나면서 관련 부품소재업체들의 경쟁력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디스플레이 드라이버 IC 전문업체인 리디스테크놀로지의 나스닥 직상장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소프트웨어와 게임 등 디지털콘텐츠 산업도 점차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기 시작했다. 게임업체들은 상반기 내내 해외 진출을 시도해 중국, 동남아, 북미 지역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
중국의 ‘생산 허브 전략’에 대응해 내놓은 ‘R&D 허브 전략’도 일부 결실을 거뒀다. 인텔, IBM, 프라운호퍼, 카네기멜론 등 기업과 연구소, 대학을 망라해 R&D센터를 유치했다. U코리아 및 IT839 전략, 과학기술체제 혁신, 중소기업 경쟁력 제고 등 IT정책도 진일보했다.
문제는 하반기 내수 회복이다. 하반기에 수출 여건이 악화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내수 회복이 늦어지면 우리 IT산업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하반기 정책 방향을 내수 살리기에 집중해야 함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신화수기자@전자신문, hsshin@